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호주지회 발족해 특별강연회 및 간담회 개최
유준웅 지회장, 박광일 사무총장 임명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이상철 위원장) 호주지회(유준웅 회장, 이하 본회)가 지난 6월 24일(토) 리드컴 커뮤니티센터(3 Bridge st Lidcombe)에서 발족해 총회 및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를 위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한국본부에서는 최은범 고문, 이상철 위원장, 박정희 국장이 함께 했다.
이날 행사는 송상구 목사(본회 부회장)의 사회로 국민의례와 유준웅 회장의 내빈 소개 및 인사말이 있었다. 유준웅 회장은 “일천만 이산가족과 세계에 흩어진 750만 가족을 합하면 이천만 이산가족이 있으니 이천만 이산가족시대에 맞는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이산가족을 위한 해외 최초 간담회를 마련했으니 많은 건설적인 토의가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이어 이성철 위원장은 인사말에 앞서 유준웅 회장과 부회장단(송석준 부회장 외) 및 박광일 사무총장과 임원단에게 위촉장을 전달했으며, 인사말을 통해 “호주의 이산가족을 위로하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한국과 해외 지회가 합력해야 한다”며 “이산가족의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을 넘어 도의적 차원의 인권문제다. 13만이 이산가족상봉을 신청했으나 그중 2천명이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미 일리노이주는 5월 12일이 이산가족의 날이다. 이런 적극적인 접근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석준 전 한인회장(본회 부회장, 현 시드니한국정원건립추진위원장, 전 시드니한인회)은 축사를 통해 “이산가족의 문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본회를 통해 이런 아픔이 치유되는 기관이 되기를 바란다”며 한국정원건립도 잘 추진중이라고 축사했다.
이어 소프라노 최명순 여사, 크로마하프팀, 테너 최웅규, 솔리데오합창단(지휘 임형선)의 축가가 있었다.
특별강연회에 강연자로 선 최은범 고문(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고문)은 6.25세대로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 본인도 이산가족임을 소개하며, 이산가족 사업의 배경과 정의 등을 안내하며, 이산가족 상봉의 절박함의 당의성은 “첫째로 여전히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이 많다. 이산가족 3차 상봉까지 있었는데 100명씩 선별해 2015년까지 20회, 2000명이 만났다. 이산가족 12만중 제비뽑기로 2000명만 만남의 기회를 주어진 것이다. 11만8천은 여전히 만나지 못했다. 만나도 오히려 후련치 못하다. 둘째로 고령으로 매년 4천명 사망해 20년 안에 다 돌아가실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셋째로 이산가족 2세와 3세의 정체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어서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 넷째로 이산가족사업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인도주의 문제로 이해해야한다. 나아가 인도주의를 넘어 인권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유엔인권위에도 이산가족의 법적 권리를 촉구하고 보고해 진행중이라고 소개하며 강연을 마쳤다.
이어진 간담회에는 “왜 이산가족이 일천만이 되었는지”, “이산가족상봉이 민간인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 후 모든 순서를 마친 후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특별기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호주지회를 발족하며
“2천만 이산가족시대를 제안하면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호주지회를 발족하며 드리는 인사말씀과 제안
한 평생 살아가며 한 두가지 어려운 일에 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일을 나홀로 겪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함께 겪는 아품과 괴로움은 생이별의 아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별도 이별이지만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본인은 1.4 후퇴 당시 12살로 황해도 사리원에서 육로를 거처 도보로 피난길에 올라 남한으로 왔다. 1971년 고국을 떠나 올해로 50여년 고국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온 이민자로 80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마지막 바람이 있기에 이 글을 쓴다.
피난시절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을 남겨 두고 3일 내지 일주일이면 돌아오리라 약속하고 떠난 세월이 70여년 이제 그 많은 친인척과 친구 지인들은 살아생전에는 만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제 남아있는 식구들과 만난다고 해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위로의 추도를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제 이산의 아픔을 겪어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본인은 이산의 아픔을 달래며 50여년 전에 이민을 떠나 제2차 이산을 이루고 있다. 이민자의 이산은 고국이나 타국에서 식구와 친지들과 소식을 전하며 살다 만날 수도 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도 있는 이산이 바로 이민자들이었다.
월남한 많은 사람 중에는 고국에서 불가능한 북한의 가족과 상봉을 위하여 고국을 떠나온 사람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본인은 일천만 이산가족이 이제는 고국을 떠난 많은 이산가족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워 나가는 체제로 북한 이산가족 일천만과 이민자 750만의 이산가족을 합하여 2천만 이산가족 시대로 나가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을 떠나 사는 많은 동포들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이산가족을 이르고 살고 있다 기러기가족을 포함한 가족이 흩어져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이산의 아픔을 공유하는 새 세대가 이루어져서 북한의 이산가족과 각처에 흩어진 이민자와 고국의 이산가족이 함께 어울려 2천만 이산가족이 새 세대를 열어 통일로 가는 길잡이가 되어 제3국에서도 이산 상봉의 날을 기대 해본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지정하여 매년 년례 행사를 치르도록 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일천만이산가족협의회와 이북7도민회 그리고 재외동포재단이 함께 힘을 합쳐 국회와 정부에 건의하기를 바란다.
일천만이산가족 호주지회장 유 준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