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우리 가족도 당신을 용서한다”
찰스턴 교회 사건을 보며
체포 당시의 당당함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체포 당시에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과 광적인 미소에 여유로움까지 보였던 ‘딜런 로프(21)’의 모습은 온대간데 없었습니다. 축 처진 어깨와 숙여진 고개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조금은 느낀 것 같았습니다. 방호복 차림을 하고 뒤에 서있던 경찰의 모습과 죄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로프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비슷한 니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는 죄인으로 누구는 죄인을 지키는 경찰로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위의 모습은 지난 19일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 총기 난사 사건의 피의자인 딜런 로프(21)에 대한 약식 재판이 열린 노스찰스턴 법원의 모습입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인 로프가 화상을 통해 재판에 나서자, 이 사건으로 숨진 흑인 9명의 유족들은 방청석에서 피의자에게 직접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이 분노를 표현할 수 있을까?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희생자 ‘미라 톰슨’의 남편인 ‘앤서니 톰슨’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우리 가족도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은 우리의 용서를 참회의 기회로 삼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의 눈빛은 ‘이것이 다란 말인가!’ 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를 죽인 사람에게 어떻게 용서를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 주변의 사람들은 그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용서의 메시지는 그 어떤 분노와 욕설보다도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한 것 같았습니다.
놀라운 일은 계속 되었습니다. ‘용서 릴레이’가 계속된 것입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펠리시아 샌더스’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였다” 라고 하면서 “내 몸에 있는 살점 하나하나가 모두 아프고 나는 이전처럼 살아가지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하겠다”며 힘겹게 말을 이어 갔습니다. 손톱을 자르다가 살점이 조금만 찝혀도 아픔을 참을 수 없는데, 살점 하나하나가 모두 아프다는 표현은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심정이 애절하게 전해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라는 더러움을 용서라는 사랑으로 치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네이딘 콜리어’는 “엄마를 다시 안을 수 없고 함께 얘기를 할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당신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할 것이고 나도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언제 불러도 따스한 이름인 엄마를 다시는 부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자녀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를 잃고 아들을 보내고 엄마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용서의 메시지는 그 어떤 분노의 목소리 보다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울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위싱턴 포스트’ 지는 “로프는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반응했다. 범행 전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2400여 단어 분량의 ‘마지막 로디지아인’이라는 웹 문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유족들의 예상치 못한 용서 메시지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리고 전하였습니다. 또한 ‘월스트리트저널’은 “평범한 재판 현장이 화합과 치유의 생생한 증언장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얼마전 한국의 한 판사가 소년범들을 재판하는 자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와 그들의 부모님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빌게 했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죄의 값을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판사의 소신이 만든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찰스턴에서 흘러나오는 용서의 메시지는 그 어떤 용서의 메시지 보다도 강력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이 다칠까봐 양자로 삼았던 손양원 목사님의 일화가 미국의 찰스턴에서 살아나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용서의 메시지에 대하여 로프의 가족은 “사태가 충격적이고 슬프고 믿기지 않는다”며 사죄하는 마음을 유족들에게 전했습니다. 자식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로 화답하는 피해자들의 태도는 로프의 가족들에게도 큰 감동을 전한 것입니다. 사건 직후 “아직 미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며 분노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하여 “희생자 가족의 반응에서 미국인의 선량함이 묻어나온다. 끔찍한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품위와 선량함이 빛난다”고 말하며 희생자들 가족들의 담대함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엄청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을 용서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로프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떨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건 목격자인 ‘실비아 존슨’은 18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로프는 “나는 이 일을 해야 한다. 당신들은 우리 여성들을 강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차지했다. 당신들은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로프의 말에 대하여 ‘하이디 베이리치’ 미국 남부빈곤 법 센터 정보조사 국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이런 발언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꺼내는 전형적 주제라고 소개하며 “흑인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지만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백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흑인 남성들이 백인 여성들을 강간한다는 발언도 흑인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 섞인 미국의 옛날이야기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로프는 자라온 환경 가운데 흑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로프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도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 성향이 단적으로 나타났는데 그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는 오른쪽 가슴에 과거 극단적 인종차별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운용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의 국기를 누벼놓은 검은 색 점퍼를 입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자동차에는 남부연방기가 새겨진 번호판을 달고 다니기도 했으며 소수 백인이 다수 흑인을 지배하는 사회를 동경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로프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이스트오버라는 매우 작은 마을에서 살았는데 거의 전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습니다. 로프는 그 지역에서 학창 생활을 했으나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고 현재 직업도 없으며 학창 시절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했던 ‘외톨이’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학창시절 로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말은 “로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며 마약을 하는 이상한 아이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고교 동창생은 로프에 대하여 “‘알약 투입기’로 여겨질 정도로 (향정신성 의약품의 하나인) ‘자낙스'(Xanax) 같은 약을 아주 많이 먹어댔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돌봄이 필요했던 젊은 백인 청년은 사랑 받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영웅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놀라운 용서의 메시지를 배웠던 곳이며 교회였습니다. 이번 참사가 벌어진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는 1816년 설립돼 내년 20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교회이며 흑인 기독교사와 흑인 인권 운동사에서 중요한 상징성이 있는 교회입니다. 1822년 흑인 노예들이 반란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교회 공동 창립자 등이 붙잡혀 처형되고 나서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 다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1872년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며 다시 폐쇄 위기를 맞았으나 1891년 재건축해 미국 국가사적지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찾아와 예배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교회가 있는 도시인 찰스턴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와 원작소설의 주요 무대로 유명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번 교회를 없애려고 하였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선 교회를 지키신 것입니다.
담임목사를 잃은 교회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무차별 총기 난사 후 처음 맞는 주일예배에 교인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고 교회 주변에 모여든 추모객들도 #charlestonunited(하나 된 찰스턴)이라는 피켓을 들고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다 함께 피켓을 들고 유가족을 위로했으며 이들은 “혐오는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없고 오히려 더 강하게 한다”며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는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각 시대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발전되어 왔습니다. 가족을 허망하게 떠나 보냈습니다. 그것도 성경 공부를 마치고 즐거운 교제를 나누던 순간 괴한의 총격으로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날의 성경공부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성경 공부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전하는 용서의 메시지는 그 어떤 성경 공부의 위력보다도 강력했습니다. 머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닌, 가슴과 삶으로 증명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우리 가족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옮긴 위대한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눅가복음 6: 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