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아름다운 청년의 발에서 배운다
– 호주 오픈 테니스 4강에 우뚝선 정현 이야기
호주에서 시청하던 호주 오픈 테니스 경기를 잠시 방문한 한국에서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시청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승승장구하는 정현 선수 덕에 한국의 방송사에서도 급하게 방송 스케줄을 잡은 것입니다.
짧은 한국의 일정이라 빡빡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정현의 4강 경기는 무조건 시청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찍 들어와 배달된 치킨을 앞에 두고 온 가족이 경기를 시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현의 기권패로 끝이 났습니다.
부상이 아쉬웠습니다. 8강전까지 하드코트에서 5경기를 치르면서 양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피멍까지 들었던 것입니다. 왼발은 생살이 삐져나온 상태였고 부상 정도는 이미 경기 전에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집이 난 정도가 아니라 양 발바닥이 피멍투성이였고 16강, 8강전이 끝나고 하루 종일 연습도 못 하고 쉬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정현은 32강전 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잘 걷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조코비치와의 16강전도 진통제를 먹고 경기를 했는데 현지 멜버른의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았을 때, 호주 쪽 의사가 “고통 정도를 1~10이라고 할 때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15”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을 정도입니다.
26일 저녁 호주 멜버른파크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4강전에서 세계 58위 정현(22·한국체대)이 그랜드슬램대회 남자단식 19회 우승에 빛나는 로저 페더러(37·세계 2위·스위스)를 맞아 마지막 투혼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1세트를 게임스코어 1-6으로 내준 뒤, 2세트 게임스코어 2-5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합니다. 2세트 게임스코어 1-2에서 서브 게임을 빼앗긴 정현은 게임스코어 1-4가 된 뒤 치료를 위해 경기 중단을 요청(메디컬 타임)합니다. 양말을 벗고 칭칭 감은 붕대를 뜯어낸 뒤 치료를 받는 정현의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경기가 잠시 뒤 재개돼 2-4로 추격했지만 2-5로 뒤진 상황에서 9번째 게임 도중(30-30) 주심(체어 엄파이어)한테 경기에 못 뛰겠다고 밝혔고 경기 시작 1시간2분 만에 기권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정현은 경기 뒤 공식 인터뷰에서 “다섯 경기를 하고 올라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 32강전에서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를 물리치고 16강전에서 전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를 넘었으며 8강전에서는 이름부터 테니스 선수(?)인 테니스 샌드그런(27·미국)을 연파하고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4강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자이언트 킬러’ 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승에서 만난 페더러는 이날 1세트에서부터 역시 황제의 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속 190㎞를 넘나드는 서브로 에이스 4개(정현 1개)를 기록했고, 자신의 샷으로 포인트를 따는 ‘위너’는 14개로 정현(4개)을 압도했습니다. 첫 서브가 들어갔을 때 승률은 100%(6/6)였으며 무엇보다 리턴 때 반박자 빠른 샷으로 황제는 ‘자이언트 킬러’를 압도했습니다.
페더러는 경기 뒤 “첫 세트 정현이 잘해 부상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나 2세트에 움직임이 느려져 뭔가 부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현이 앞으로 톱10 안에 들 것이 확실하다”고 칭찬했습니다. 지난해 호주오픈과 윔블던 남자단식에서 우승해 재기에 완벽히 성공한 페더러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대회 남자단식 2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게 되었습니다.
페더러와 우승을 다툰 세계 6위 마린 칠리치(30·크로아티아)는 작년 7월 윔블던 결승에서도 맞붙었습니다. 그때 칠리치는 0대3 완패했었습니다. 중간에 의사가 달려와 메디컬 타임아웃까지 썼지만 발바닥 물집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칠리치는 의자에 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고 경기 전 물리치료사가 서른 시간 넘게 매달렸으나 허사였다고 했습니다. 칠리치는 “물집이 아파서 운 게 아니라 이렇게 큰 경기에서 발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 못해 운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정현도 이번 호주오픈 준결승에서 발바닥 물집 때문에 기권했습니다. 그의 발바닥 사진은 성냥갑만 한 빨간 생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대변인은 “물집 밑에 또 물집, 그 밑에 또 물집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같은 곳에 세 겹으로 부르튼 물집이 생살을 파냈습니다. 단식 테니스 코트는 좌우 폭이 8.23m 입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전속력 왕복달리기하듯 격렬한 역동작을 몇 시간 반복하면 젊은 발바닥도 배겨 내질 못합니다. “테니스는 팔이 아니라 발로 하는 운동”이라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행군 훈련이나 산악 등반 때 물집과 싸움을 벌입니다. 군대에서 열 시간 정도를 걸으면 발가락 전체에 물집이 잡혀 발톱이 물집 위로 둥둥 뜨기도 합니다. 이 고통은 손톱끝을 쑤시고 들어간 가시와 같고 육신 전체에 고통을 느끼게 하는 치통만큼이나 크게 느껴집니다.
예정에 사진으로 본적이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 발 사진도 충격이었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발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습니다. 백조처럼 무대를 둥둥 떠다녔던 그녀는 토슈즈 안에 무시무시한 발가락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숭고(崇高)했습니다. 또한, 피겨 여왕 김연아, 축구 전설 박지성, 빙속 여제 이상화, 체조 요정 손연재 같은 여러 스타 발 사진을 볼 때마다 숙연해졌습니다.
한국에 잠시 나와보니 몇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분노였습니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에서 분노가 느껴졌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님과의 짧은 대화에도 “국민은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엉망이라서…” 라고 호주 교포인 저에게 한탄을 하셨습니다.
2002년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엄청난 기쁨에 잠긴적이 있었습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내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엄청난 발들이 축구화에 숨겨주고 엄청난 일을 했던 시기였으며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4강의 기쁨을 누리며 분노가 사라지고 기대와 감격이 충만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영국이나 호주만큼 인기가 있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정현의 4강 신화가 2002년의 기대와 감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를 흘러 보내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기쁨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발을 아낌없이 희생한 정현 선수의 모습을 보며 지금 나의 발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지고 있을지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길이 아름다운 것처럼 정현의 발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정현의 발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와 ‘메시지 스쿨’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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