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한 아이를 키워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내며…
내 아이 하나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평생을 집안에서만 있고 다른 사람과 접촉이 없다면 어떻게 가능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내 아이 하나만 잘 키운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전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방영 초부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아마도 스물 하나 지안(이지은 분)과 마흔 다섯 동훈(이선균 분)의 설정이 거부감을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 으로 인하여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유명 방송인은 초기에 “이 드라마를 아름답다.”라고 호평한 이유로 거센 항의를 받았고 결국 사과를 하는 글을 올려야만 했습니다. 사람은 경험과 위치에 따라서 각각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 또한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신문에서는 ‘나의 아저씨’에 대하여 ‘기득권 아재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여성에게 친밀하게 불리고픈 남자들의 자의식이나 여성 비하적인 대사들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학적 폭력 등을 지적하며 아저씨들이 사회에서 핍박받는 소수자라는 전제가 불편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주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차별, 연령차별의 대사가 곳곳에 드러나고 가학적 폭력,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설정이 위험한 상상을 불러올 충분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런 염려와 다르게 전개 되었고 종영후에 새로운 평가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스로 페미니즘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여성 평론가는 “여성주의자의 시선에 이 드라마는 시종일관 불편하기만 했을까? 동훈과 후계리 사람들이 보여준 ‘따뜻한 감싸 안기’가 중년 아재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로만 느껴졌을까? 나는 페미니즘을 자아정체성 일부로 갖고 있는 여성이다. 남성보다 여성에 감정 이입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고, 젊은 여성을 성적 판타지로 대상화하는 시선을 거부한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와 거부감에 동조하지 못한 채 ‘나의 아저씨’ 열혈 시청자가 되고 말았다.”라고 말하며 이 드라마를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드라마가 불편하다고도 합니다. 주인공 지안의 삶의 무게에 숨이 막힌다고도 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응입니다. 고분고분한 구석은 조금도 없는 냉담한 표정의 지안이 우리 삶으로 들어오면 누구라도 불편할 수 있고 피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파견 말단직인 지안이 주는 껄끄러움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일부러 냉담해짐으로써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전략’으로 읽어낸 시선도 있습니다. 지안에게 안쓰러운 연정을 느끼는 동훈과 산동네 밤길을 지안과 동행한 후계리 사람들 그리고 불륜의 치부를 밝히면서까지 지안을 변호한 윤희(이지아 분)의 시선도 그렇습니다.
이 드라마의 특징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나의 아저씨’는 특정 주인공에만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나의 아저씨’는 시청자들이 등장 인물들의 마음 속을 넘나들도록 유도를 합니다. 주변 인물들의 마음 속에 한 번씩 들어갔다가 나와야만 할 것 같은 심리적 흐름을 만들어 갑니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 ‘저럴 수 있겠다’는 이해를 얻게 합니다. 출가한 애인을 그리워하는 정희(오나라 분),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원망하는 상훈의 아내(조애련 분), 후계리 사람들에게 남편을 빼앗긴 듯 늘 허전한 윤희, 장남 역할을 못한다며 미안해하며 훌쩍이는 상훈(박호산 분), 영화 감독의 꿈을 접고 청소 일을 하는 기훈(송새벽 분), 자식 걱정에 늘 고단한 동훈의 어머니(고두심 분), 심지어 지안에 대한 연민을 폭력으로 드러내던 광일(장기용 분)까지 언젠가 나도 한번 살아본 듯하게 저들의 삶에 동화가 되어 갑니다.
주인공 지안이 오열하는 장면에서 가장 크게 공감을 얻어냅니다. 이것만은 꼭꼭 감추고 싶은 지안의 과거가 동훈에게 드러난 순간입니다. “나라도 죽였어. 나라도 내 식구 건드리면 가만 안 둬”라는 동훈의 목소리는 지안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결국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게 만듭니다. 그동안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시간이 얼마나 가혹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며 상처를 두려워하며 스스로 쌓은 담장의 그늘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감추고 싶었던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밝혀져야 하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 얻을 수 있는 후련함과 흡사합니다.
처음으로 사랑의 돌봄을 경험한 지안은 다시 태어나면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이곳 후계리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후계리는 뭔가를 잃어가는 연약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영역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결핍이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돌아오는 곳이고 상처 입은 연한 살갗이 서로를 알아보는 곳입니다. 베푸는 자와 수혜자의 경계가 따로 없으며 서로가 베풀며 서로가 수혜자로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후계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울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지안에게 울음을 돌려주는 안내자인 것 같습니다. 후계리는 이제야 지안이 제 나이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곳입니다.
‘나의 아저씨’ 종영 자막에 ‘우리는 모두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문구는 보는 사람들이 먼곳에 있는 시청자가 아니라, 그곳에 함께 있었던 후계리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괜찮은 사람’이란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좋은 사람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매순간 온전히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구조기술사 동훈의 말처럼 내력이 외력보다 강하면 견딜 수 있듯, 저마다 적당히 나쁜 외력보다 적당히 좋은 내력이 더 커지길 바랄뿐입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회복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후계리는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커피샾 안쪽에서 들려오는 동훈의 목소리를 따라가서 다시 만난 지안과 동훈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 가다보면 반드시 그분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얻게 합니다.
“연락 주세요! 제가 밥살게요!”라는 지안의 말에 “악수 한 번 하자.”는 동훈의 말은 더 이상은 누구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아닌, 이젠 어엿한 한 명의 성인이 된 지안의 모습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가 아닌, 남녀간의 사람 이야기를 주제로 만든 드라마 한 편이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남의 얘가 아닌, 우리 얘로 봐야하는 관점을 성숙하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와 메시지 컬리지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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