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 기도

걷는 기도 (21)
당신의 숨결이 아직 식지 않은
새벽 안산자락길 위에서
양지와 음지의 경계를 걷습니다
(시편 63:1)
햇살이 먼저 닿은 곳에는
이미 꽃들이 한 계절을 마치고
조용히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사야 40:6-8)
그러나 음지 아래,
아직 이름도 불리지 않은 봉오리들은
어둠의 품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자신의 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3:1)
사람의 삶도, 누군가는
양지의 속도에 맞추어
먼저 피고 먼저 지며
세상의 박수 속에
잠시 머물다 떠나고, 누군가는
음지의 시간을 견디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깊은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자신의 존재를 익혀갑니다
우리는 종종
양지 아래에서 이미 지나간 계절을
뒤늦게 부러워하고
음지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조급히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조금 늦은 시절
모두가 지쳐 고개를 숙일 때
음지에서 늦게 핀 그 꽃 하나가
세상을 다시 숨 쉬게 하듯
인생은 빠름으로 완성되지 않고
시간으로 증명되지 않게 하시니
(갈라디아서 6:9)
양지든 음지든
각자의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절이며
결코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오직 ‘자기의 순간’임을 알게 하소서
그래서 오늘도
새벽의 길 위에서 배웁니다
피지 못한 시간이 아니라
아직 피고 있는 시간이며
늦은 것이 아니라
깊어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빌립보서 1:6)
그리고 언젠가
아무도 보지 않는 한켠에서
가장 고요하게
가장 찬란하게
음지에서 피는 시간에
당신을 그렇게 만나게 하소서.
(시편 139:15-16)
*20260414 서대문구 안산자락길에서
匍越의 [걷는 기도] 중에서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