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인간의 가치와 가격
사전적인 의미로 [가치]는 현실세계에 대한 인간의 실천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의식적인 관계가 축적된 결과로서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과 대상의 관계를 통해 정착된 가치는 인간의 사고와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그들의 존재조건·욕구·이해관계 등을 보여주는 개념이 된다. 따라서 가치의 내용은 변화되는 의식구조를 반영하면서 시대적·사회적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으로 가치는 도덕/미(美)/경제/정치/문화 등 각각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정의로 규정되어 여러 가지 측면의 사회적 의식과 이해관계를 표현한다. 세상에는 가치, 특히 윤리도덕적 가치라는 말만큼 중요하면서도 다양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치문제는 평생 안고 가면서 물음을 가져야 할 연구 대상이다. 그래서 필자는 통전적으로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물음을 가지고 시작하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가치의 기준은 인간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과 경험으로 결정되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가치는 인간 가치에서 집중되기 때문이다.
소위 정신분석가라고 하면 인간의 심층 심리를 쉽게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어서 쉽게 이해하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양지 뒤에 음지가 있듯이 ‘선명한’ 분류법 뒤에는 어둡게 가려진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시대를 살고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입장과 가치에서 평가할 때 생기는 간격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인간 심리와 행동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고려할 때 겉으로 드러난 객관적(?) 사실만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판단해서 그 사람의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자료에 근거한 철저한 작업을 신중하게 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직접 만나서 깊은 대화를 장기간 나누지 않은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정신분석의 현장에서는 늘 강조한다. 어느 잘아는 정신분석학자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삼 년간 일주일에 네 번씩, 한 번에 거의 한 시간 동안 만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눈 피분석자에 대해서도 어느 날 깜짝 놀랄 정도로 그 사람을 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지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 사실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심리학’의 창시자인 하인츠 코헛의 전기를 써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던 찰스 스트로지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날부터 책을 출간한 그날까지 거의 20년간 코헛은 늘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고…… 내 마음속의 그는 여러 번 변신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목표를 좇는 것과 같다.” 그러니 사람을 제대로 알고 평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 했다”는 것이다
아주 어린아이는 ‘좋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엄마를 ‘좋은 엄마’ 아니면 ‘나쁜 엄마’로 가른다.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섞여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함이다. 나이가 들면 둘로 보이던 엄마가 ‘좋은 점들’과 ‘나쁜 점들’이 고루 섞여 있는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를 살았던 역사 속의 인물들도 큰 인물 같았지만 허약했고, 견디려 했지만 못 견딘 사람들이었을지 모른다. 좋은 기대와 달리 종종 나쁘게 변절해버린 그들에게 우리는 분노하기도 한다. 이원론적으로 흑과 백처럼 구분하기보다는 이야기의 형태로 그 사람들이 살아온 족적을 깊이 있게 연구해서 남기는 것이 후대에 교훈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성경을 삶의 길잡이로 삼은 기독교인들도 성경 안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성경은 언제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성경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왜냐하면 등장인물 중심의 성경이해는 언제나 <인간가격>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 올바른 시각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언제나 성경은 <하나님중심>의 성경 이야기에는 <인간의 가격>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에 복음의 핵심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 16) 만약에 인간을 하나의 가격을 치면 구원받을 만한 존재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격은 인간을 가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가치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피조물이요 언제나 죄인이다라는 두 가지 명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가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을 가격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통해서 한 인격의 가치로 보시기 때문이다.
앙천이타(仰天而唾)라는 말이 있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뜻이다 필부필부로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누가 누구를 차별하며 평가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가치가 인간의 가격으로 전락하는 작금의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늘 인간의 가치인가? 아니면 인간의 가격인가? 라는 명제 앞에 도전을 받고 있다.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