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목회단상

“인간자유의 의지는 환상인가?”
크래스카스와 알보가 다시 묻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Samuel Lebens가 발제한 논문을 가지고
정원일 목사가 요약한 문장을 통해
다른 관점에서 비평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서신학은 철학적 관점, 조직신학적 관점,
그리고 교리적 관점이 아니라
순수한 성서신학 관점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과정에서
성서비평 방법들을 통전적으로 적용하여
21세기 성서학자들의 주장을 한 번 뒤새김하겠습니다.
어떤 성서비평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정원일 목사가 정리한 마무리도 질문으로 끝난것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가 없는가”보다,
구약성서 자체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입니다.
역사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크레스카스, 알보, 어거스틴, 루터, 칼뱅
모두는 성서를 읽었지만,
각자의 시대적 철학과 논쟁 속에서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논쟁 자체가
곧 구약성서의 원래 관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1.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질문 자체가 헬라철학의 질문인가?
크레스카스는 결정론을, 알보는 자유의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비평학은 먼저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유의지(free will)’라는
철학적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었는가?”
대부분의 현대 구약 성서학자들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고대 히브리인은 존재론(Being), 자유의지(Free Will)
결정론(Determinism)같은 형이상학보다
언약(Covenant)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말했습니다.
즉,”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보다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는 존재인가?”
가 성서의 질문입니다.
2. 역사비평의 비판
역사비평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본문이
여러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생명을 택하라.”는
바벨론 포로 이후 공동체를 향한 설교입니다.
철학 강의가 아닙니다. 국가가 무너지고
“다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살아라”는 공동체적 호소입니다.
따라서 알보가 “이것은 자유의지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후대 철학적 해석입니다.
성서 본문 자체는 국가 공동체의 회복을 말합니다.
3. 문학비평의 비판
창세기 2~3장은 자유의지 교과서가 아닙니다.
문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유혹받는 존재입니다.
아담은 선택했지만
뱀, 여자, 욕망, 수치, 두려움 등이 모두 함께 작용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순수한 자유 또는 순수한 결정
중 하나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항상 관계 속 존재입니다.
4. 사회학비평의 비판
사회학비평은
“왜 자유의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는가?”를 묻습니다.
크레스카스 시대 유대인은 박해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말하며
민족의 신앙을 지키려 했습니다.
알보 시대는 강제 개종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인간은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두 사람 모두 철학보다
민족 생존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5. 어거스틴의 문제
어거스틴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죄, 타락, 의지의 무능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구약은 인간을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보다 언약을 깨뜨리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에스겔 18장은
각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진다고 말합니다.
6. 루터의 문제
루터는 [의지의 속박]에서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논쟁 상대는 에라스무스였습니다.
이는 종교개혁 시대의 논쟁입니다.
구약 전체가 말하는 인간 이해는 아닙니다.
7. 칼뱅의 문제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예언서를 통해
끊임없이, “회개하라, 돌아오라,
생명을 선택하라”라고 외칩니다.
만일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었다면
예언자의 외침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은 칼뱅 신학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긴장입니다.
8. 21세기 구약성서신학의 관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구약학자들은
인간을 자유의지의 존재보다
관계적 존재(Relational Being)라고 이해합니다.
대표적으로 Walter Brueggemann은
구약을 언약과 공동체의 신학으로 읽었고,
John Goldingay은 인간을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응답하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냐 결정이냐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공동체, 정의, 자비, 언약의 신실함입니다.
9. 구약성서가 제시하는 인간 이해입니다
구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
언약 안의 존재
공동체적 존재
회개할 수 있는 존재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존재 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인간 존재 전체의 한 요소일 뿐,
성경의 중심 주제는 아닙니다.
10. 통전적 비평의 결론입니다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볼 때
크레스카스, 알보, 어거스틴, 루터, 칼뱅은
모두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지만,
모두 일정한 한계를 지닙니다.
크레스카스는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의 응답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알보는
언약과 책임을 강조했지만,
자유의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과정에서
성서본문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어거스틴은
플라톤적 존재론의 영향을 받아
원죄와 의지의 무능을 강조하면서,
구약성서의 회개와 회복의 역동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루터는
은혜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능동적 응답을 제한하는 긴장을 남겼습니다.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체계화했지만,
예언자들의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초청과 인간 책임의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21세기 구약성서신학은
이 논쟁을 자유의지 대 결정론이라는
이분법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적 관계,
공동체적 책임,
역사 속에서의 응답을 중심으로 읽습니다.
구약성서는 인간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는 절대적 자율적 존재도,
모든 것이 예정된 운명의 희생자도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회개하며
정의와 생명을 선택하도록
초대받은 언약의 존재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핵심 질문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응답하며,
그 응답이 공동체와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입니다.
이 점에서 자유는
단순한 철학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생명과 정의를 선택하는
언약적 책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 THE 2026 BELFER ORATIONThe Great Synagogue, Sydney / 2026년 7월 1일 / 강연자: Rabbi Dr. Samuel Lebens의 논문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상인가?”에 대한 반론의 글입니다.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