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2)
에이미 스키너(?-1954. 7. 9)
한국명: 신애미(愼愛美) 선생, 거창 1914-16, 1927-28; 마산 1916-20; 통영 1921–40
에이미 스키너(Amy G M Skinner)는 비치워스(Beechworth)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나 거기서 자랐다. 그녀가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멜번 대학 일학년 때 학생자원운동(SVM)의 회원이었던 친구들의 영향을 통해서였다. 그 후 수 년 동안 선교사로서 가야한다는 확신이 증가했고, 학생기독운동 대회들 안에서 확고해졌다. 그녀는 자원자 서원 카드에 서명했다. 그녀는 PWMU에 지원했고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일정한 훈련을 받은 후에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에버리와 함께 여행을 떠났고 1914년 9월 9일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거창에서 언어를 배우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났다. 그녀는 1916년 4월까지 소녀들을 위한 작은 학교의 책임을 맡았고 마산의 맥피 선교사가 휴가를 떠난 사이 의신 여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학교에서 실재로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녀는 1920년 휴가를 떠날 때까지 교장 직을 수행했다. 그 시기에 그녀는 또한 야간학교의 책임을 맡았고, 지역 여성 주일학교와 어린이 주일학교를 도왔고, 여러 차례의 지역 방문을 하면서 사역회에서 가르쳤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스키너는 통영에 배속되어 교육사업의 책임을 맡았다. 그 후 19년의 대부분을 통영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여성들, 소녀들, 유치원 어린이들을 위한 다면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그녀는 유치원을 지도하면서 그것이 훌륭한 전도기관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교회로 인도하였다. 그녀는 또한 준 초등학교(sub-primary school)의 교장, 낮에 학교에 올 수 없는 소녀들과 여성들을 위한 야간학교의 교장으로 섬겼고, 시골학교의 교사들을 훈련시켰다.
그녀는 여성 프로그램들을 운영했고, 여성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많은 여성들이 교회의 세례교인이 되도록 준비시켰다. 그녀는 산업학교를 보살피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 했는데 그 학교는 1935년에 동래로 이사했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수예품 등의 생산품을 만들어 팔아 자활할 수 있게 하고, 오후에는 공부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왔다. 그녀는 5년 과정의 성경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지도자들을 준비시키는 과정을 운영했다. 게다가 그녀는 연간 사경회에서 가르치고 전도부인들을 지도하면서 통영 선교지부의 전도사역에서 한 몫을 담당했다.
에이미 스키너는 한국에서 26년을 섬긴 이후에 1940년에 휴가를 떠났고 전쟁이 발발하여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섬기는 기간 동안 줄 곳, 그녀는 경제적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자신을 내어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독신 여성사역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1944년 뉴헤브리데스로 갔고 빌라에 있는 이리리키 지역 학교(the Iririki District School)에서 6년간을 가르치며 소녀들의 교육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또한 뉴헤브리데스 교회의 여성 프로그램도 발전시켰다.
스키너는 1954년 7월 9일에 멜번에서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