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8)
프레더릭 제임스 토마스 목사(1884. 6. 7-1963. 7. 4)
한국명: 도별익(都別益) 목사, 거창 1916-22
프레드 토마스(Rev Frederick James Thomas)는 멜번의 외각 토마스타운(Thomastown)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과수원에서 일했고 그후 콥덴(Cobden)의 한 가게에서 일했다. 그는 그곳에서 기독교면려회(Christian Endeavour)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주일학교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가 목회의 소망을 느끼게 된 곳도 그곳이었다. 그는 한동안 국내선교사역에 참여했고 그 후 오몬드 칼리지에 들어가 훌륭한 학생임을 증명했다. 그는 졸업하던 해에 해외선교의 소명을 느꼈고 당시 앤드류 아담슨 목사의 후임을 찾고 있었던 청년연합회(the Fellowship Union)에 지원하였다. 그는 선교사로 임명되었고 멜번의 스코츠 교회(Scot’s Church)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는 1915년 10월 2일에 브른스윅(Brunswick)에 살던 엘시 힐(Elsie Hill)과 결혼했다. 그들은 1916년 3월초 한국에 도착했고 거창으로 배속되어 거기서 1922년까지 봉사했다.
한국 있는 6년 동안, 프레드 토마스는 점점 늘어가는 많은 수의 시골교회들을 돌보았고 거창 순회지역의 5개 교회의 동사목사로 일했고, 선교지부의 행정 일에서 자기 몫을 담당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1922년에 한국에서 은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부분적으로는 어린 딸의 건강 때문이었고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빅토리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섬기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선교사 동료들과 해외선교위원회는 그의 결심을 재고하도록 설득하고, 토마스 부부가 한국에 없어서는 안될 유능하고 가치 있는 선교사라고 확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토마스는 호주에 귀국한 이후 커구냐(Kergunyah), 데본포트(Devonport), 스킵턴(Skipton), 테코마(Tecoma), 퀸스클리프(Queenscliff), 그리고 왈란(Wallan) 교회들에서 목회를 했다. 그는 깊은 신실함과 조용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1963년 7월 4일에 테코마 교회에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