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냄비는 사랑냄비
“땡그랑~땡그랑…자선냄비를 끓여주세요” 2015년 12월 1일 오전 11시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모시고 ‘자선냄비 시종식’이 열렸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준비하는 12월의 첫날, 올해도 ‘자선냄비’가 ‘사랑냄비’가 될 것을 기대하여 본다.
미국의 기부천사
자선냄비의 유래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성탄 즈음에 배 한 척이 난파되어 난민이 생기자 조셉 맥피 사관이 이들을 돕기 위해 주방에서 쓰던 큰 쇠솥을 꺼내 모금활동을 시작했고, 이 모금활동이 오늘날의 자선냄비로 이어지게 되었다. 2015년 11월 30일 미국 미네소타 주 로즈마운트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익명을 요구한 커플이 50만 달러의 수표를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부부가 수표를 넣고 갈 때, ‘로스바운트 소방관’들이 자선냄비 봉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소방관들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수하면서 액수를 확인하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50만 달라, 한국 돈으로 거의 6억이나 되는 돈이다. 구세군은 수표에 쓰여 있는 이름을 추적하여 연락을 취하였으나, 그가 익명을 요구하였기에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저희들은 받은 은혜를 돌려주는 것뿐입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1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 구세군에서 도너츠와 커피를 나누어 주셔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저 역시 젊었을 때에 구세군에서 주는 물품으로 끼니를 연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먹고 살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어 남을 도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대접 받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긴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려 있었다.
한국의 기부천사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은 1928년 12월 15일이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흉년과 가뭄, 뒤늦게 쏟아 부은 홍수피해로 양곡추수가 실패한 해였을 뿐 아니라, 1929년에 불어 닥칠 세계적인 경제공항과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의 조짐이 있었던 해였기에 더욱 추웠다. 이후 자선냄비는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돕는 상징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2011년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등장했다. 명동 자선냄비 통에 ‘신월동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짤막한 편지와 함께 1억원을 기부하였다. 신월동 주민은 매년 손으로 직접 쓴 편지와 함께 4년째 매년 1억씩 기부하였다. 편지 내용은 매번 조금씩 다르지만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기부한다는 내용이다. 2012년 편지 내용은 이렇다. “평생에 부모님은 이웃에게 정도 많이 주시고 사랑도 주시고,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호강 한번 못하시고 쓸쓸히 생을 마감하여 고인이 되셨습니다.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작은 씨앗 하나를 구세군님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숲 속에 띄워 보냅니다. 2012년 12월 신월동 주민이” 익명의 기부천사인 ‘신월동 주민’의 꼬리가 너무 길었던 것일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5년 만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이상락씨이다. 그는 타일 가게를 하고 있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닌, 마음이 아주 부자인 사람이다.
시드니의 기부천사
시드니의 ‘츄롤라 쇼핑센터’에 자선냄비를 설치했다. 구세군 교인은 물론이고 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는 여러 목회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12월 12일,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는 딸의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했다. “4시간 봉사 했는데 제법 모였습니다. 그런데 좀 힘드네요”, “좋은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합니다.” 봉사를 마치고 송목사는 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하여 잰 걸음으로 쇼핑센터를 빠져나갔다. 아직까지 시드니에는 미국이나 한국 같은 엄청난 기부천사는 없다. 하지만 해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곳이다. 오래전 이야기다.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던 아저씨가 아이에게 수표 한 장을 주면서 자선냄비 통에 넣으라고 했다. 아이는 쪼르르 달려와 내게 주는 것이었다. 500불이었다. 엄청난 액수라 돈을 준 사람에게 확인하여 보았다. “정말 자선냄비 통에 넣는 것 맞습니까?” 그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수증을 발급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마저 마다하며 아이를 데리고 갔다. 은행에 입금하면서 ‘혹시 부도수표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지만, 은행직원은 웃으면서 흔쾌히 받아 주었다. 올해는 또 어떤 에피소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봉사하는 시간이 몹시 기다려진다.
1865년 구세군은 ‘동부런던’의 할렘가에서 시작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교회는 기득권 중심의 교회로 변질되었다. 기독교가 가진 자의 종교로 전락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아픔은 더욱더 깊어 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구세군 창립자 ‘윌리엄 부스’는 ‘소외된 자’, ‘억눌린 자’, ‘가난한 자’들을 섬기기로 결단했다. 구세군은 창립자 정신에 따라 ‘한 손에는 빵, 한 손에는 성경’,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표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영육구원’을 위하여 오늘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
김환기 사관(구세군 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