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51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11월의 어느 날
2014년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하게 보냈다. 바로 난방텐트 때문이다. 호주에 와서 난방텐트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올해 처음 사용했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텐트 안은 보온이 잘되어 훈훈하고 적당한 습도가 유지 되어 잔기침이 심한 하람이도 심한 감기 없이 올 겨울을 무사히 지낸 것 이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유난히 많이 아팠다. 어느 날부터인가 눈물이 줄줄 나서 알고 보니 눈물샘이 막혀 버린 것이다. 밤마다 청소 일을 하면서 먼지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 때문에 눈물샘이 막혀 오른쪽 눈두덩이 가 퉁퉁 부어버린 것이다. 안약도 넣어보고 전문의를 만나 진료도 받았는데 쉽게 회복되지가 않았다.
또 얼마 전에는 가운데 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더니 건드리지도 못할 만큼 심해져 연필도 잡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었다. 피멍이 든 것처럼 손가락은 퍼렇게 변해 버려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주변에서 이 정도면 병원에 가서 칼로 째야 한다고 해서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또 무거운 것을 자주 들다 보니 어깨는 항상 아픈 상태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어깨가 욱신거린다고 하는데 너무 진통이 심한 날은 끙끙 앓아누워 버린다. 손등은 약품 때문에 거칠어져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듯 건조하게 일어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꽤 심각한 상태였었다. 그런데 물론 아직 회복 중에 있지만 그래도 큰 병원에 가지 않고 슬금슬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만 되도 정말 감사할 일 아닌가. 호주에서 아프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래저래 골치가 지끈지끈하니 말이다.
흰머리가 무수히 생긴 것 외에 두 달 남은 2014년은 여전히 나에게 바쁜 시간이었다. 한 달이 마치 하루인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조금은 아쉬운 감도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가끔은 속도 상하고 분명 힘들 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뻔해 보이는 거짓말을 해서 얄밉기도 했고 보자마자 반말을 시원하게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거나 하는 등 가지각색 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 덕분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자녀로 살기 위해 또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남기위해서는 똑바로 행동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함을 배웠다. 교회의 직분을 이름대신 부르면서 세상 속에 더 안 좋은 모습으로 낙인 되어 버리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일들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하람이에겐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특별했을 것인데 바로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조금 센치하지만 열정 있는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평생 갈 만한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다. 덕분에 우리도 친구 부모들을 함께 만났는데 아마 처음으로 교회를 벗어난 사귐이 아니었나 싶다. 모두 정감 있는 분들이라 뵐 때 마다 편안하고 재미나다. 아직 밤마다 가끔씩 쉬야실수도 하고 영어도 한국말도 제대로 안 되는 말썽꾸러기 아들 하람이. 하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고 학교에 갔다 온 날은 밥도 잘 먹고 잠도 푹 자서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걸 확실히 믿고 밤마다 기도를 잊지 않기에 (물론 1분도 안 되는 초스피드 기도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비가 무지막지 하게 내리는 다 늦은 저녁.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센 비바람이 창문을 무섭게 두드리지만 하람이와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고 놀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문득 열어본 냉장고에 작은 사과 2알, 덜 익은 키위 3개, 블루베리 작은2통이 보인다. 비록 양은 조금이지만 다양한 과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그 참에 집을 한번 쭉 둘러보니 목사님이 주신 책꽂이 선반에 가지런한 책들이며, 집사님이 챙겨 주신 정수기, 아는 청년이 기증해준 화장대에 조금 낡았지만 아직은 잘 돌아가는 통돌이 세탁기 등등 아…나는 올 한해 참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구나 싶다.
11월의 며칠을 보낸 지금 이 시점에서 아쉬운 점도 많지만 그것에 비해 감사할 일이 더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정말 감사합니다. 심지어 부족한 하람맘의 글을 이제까지 편안하게 읽어주신 당신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