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프랑스 땅에 세워진 ANZAC 전쟁 기념관
지난 4월 24일(Anzac Day 전날) 프랑스 북부에 있는 Vilers-Bretouneux(인구 4,128명)라는 조그마한 아름다운 농촌마을에 큰 행사가 있었다. 호주에서는 말콤 턴볼 수상과 전 토니 아버트 수상 및 많은 관광객들이 식장에 참석했고, 프랑스 측은 Edouard Philppe 수상과 군 관계요원 및 지역대표들이 참석했다.
100년전 이날에 많은 호주군 들의 희생으로 독일 군으로부터 탈환한 날이기에 호주와 프랑스가 9천 900만불을 들여 그 당시 호주군 사령관인 Sir John Monash 이름으로 호주군 전쟁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프랑스 수상은 개회사에서 “100년 전 이곳은 프랑스에 섬유공업 지대였으나 독일군에 의해 80% 이상이 파괴 되었고, 복구에만 10년이 걸렸다. 호주 군에 많은 희생으로 이 땅이 수복 되었으며, 특히 호주정부가 이곳에 빅토리아(Victoria School)라는 학교를 지어주어 학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지금도 학교 마당에는 ‘Do not forget Australia’라고 새겨진 명패가 남았다”고 말하고 “우리는 호주군의 희생에 대해 ‘We will never forget Australia’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는 가톨릭교회 3,500개소가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특히 서부 전선지역에 235개 교회가 파괴되었다고 그 당시 처참한 전쟁양상을 이야기했다.
호주의 말콤 턴볼 수상 역시 호주군 희생을 애도하고 양국의 견고한 우정에 감사했다.
세계 1차 대전에 격전지였던 이곳을 포함한 서부 전선(West Front)은 중립국가였던 벨지움을 공격하고 파죽지세로 프랑스를 향해 돌진하는 독일군을 막기 위해 프랑스, 영국, 미국, 호주 등 연합군이 필사의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특히 이 지역에 호주군 사령관 Sir John Monash 장군은 탱크를 앞세운 전투에서 큰 전과를 세워 영국 왕 죠지 4세에게서 작위를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호주에 정착한 가정이라 연합군사령관으로 적격한가에 말도 많았지만 그는 훌륭한 지휘관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호주군은 유럽전선에 33만명이 참전해서 이곳 전투에서만 4만6천명이 희생당했으며, 아직도 실종자만 1.1000명이 된다. 1차 대전 당시 호주는 인구가 490만명에 불과했지만 군대는 41만명이었다. 18세부터 모든 젊은이들이 동원되었다. 호주는 미국처럼 영국과 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니고, 호주도 미국처럼 영국과 대항할 것을 우려해서 영국이 스스로 1901년 1월 1일 독립을 주었다. 다만 영연방국가라는 미명아래 경제, 국방, 외교를 영국이 장악하였다.
호주는 미국만한 대륙(시드니와 퍼스까지 거리는 런던과 모스코바까지 거리)에 독립 당시 인구가 300만명 정도이다. 그 당시 호주인들은 모국인 영국과 무려 1만6천9백83km나 떨어져서 계절이 다르고, 유럽인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거주하면서 고립감과 이탈감을 느끼면서 영국에 사는 영국인보다 더욱 영국적인 전통을 지키려는 사고가 팽패해졌다. 백호주의가 그렇고 영국산 이외는 모두 보호무역이 이뤄졌다.
그러던 호주인에게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자 모국에 기여할 기회가 생겼다. 18세 이상 지원자가 너무 많았다. 이들은 이집트 카이로까지 가서 훈련을 받았다. 영국 당국은 이들 지원병 군대 이름을 호주와 뉴질랜드 군대라는 이름의 약자로 ANZAC부대라 칭하였다. 이들은 첫 번 전쟁으로 1만6천명이 터키 서부 칼리폴리(Gallipoli) 해안에 1915년 4월 25일 아침 4시경에 상륙하여 독일과 연합군인 터키 진지를 공격하게 된다. 이 지역은 연합국인 러시아 군이 연합군과 흑해를 통해 합류하기 위한 통로를 독일과 터키 군이 막고 있어 이를 대항하기 위해 이미 많은 영국 및 연합군리 포진하고 있었다. ANZAC Cove에 상륙한 이들은 처음 터키 기관총 부대를 향한 공격에서 적의 기관총에 의해 단번에 2,000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들의 사망 소식이 종교장관(Minister of Religion)의 가정에 소식을 전하고 호주 신문에 전사자 명단이 발표되자 지원자들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후 ANZAC부대는 연합군과 같이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파견되어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다.
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에 시작해서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간 치룬 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의 사망자 수는 550만명, 부상자 수는 1,280만명이 생겼으며 실종자도 412만명이 된다. 호주군도 6만284명이 전사하고, 부상자는 15만5천133명으로 전투 참전인원에 68%에 달하는 희생자를 배출했다. 연합국 중에서 높은 편이다.
반면 독일측 사망자 433만명, 부상자 830만명, 실종자 363만명으로 기록된 최악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죽어가는 친구를 도와주어 호주가 말하는 소위 ‘Mateship’(전우애)이 생겨나서 인사도 ‘Hello mate’가 되었다. 또한 영국이 아닌, 호주에 애국심도 생겨났다고 역사가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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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백인농부 이민
근래 신문을 보면 좌파나 우파나 모두 이민을 줄이자는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보수 우파로 지목되는 토니 애버트 전 연방 수상은 근래 2017년에 18만9천명의 기술이민 숫자를 8만명 줄여서 11만명이 되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내년(2019년)에 선거를 앞둔 정부는 2만명에 이민자를 줄이기로 하였다.
호주는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년간 호주이민자 수가 600만명이나 된다. 큰 호주를 만들자는 결과다. 이민자중에 75%가 대도시에 집중하고 있어 멜본이나 시드니 지역에는 아파트가 곳곳에 세워지고, 교통을 위한 버스·전철·전차 노선을 만들기 위해 길을 파헤치고 있어 여간 어수선 하지 않다. 인구가 적었던 1970년대 초기는 시드니에서 자동차 속도가 60Km이고 앞차가 조금 늦어도 “크락숀” 소리를 내지 않았다. North쪽은 정말 조용했다. 사람이 많으면 어려가지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그런데 도시 경제 전문가인 미국 하버드 대학 Edward Glaeser 교수(도시 경제 교수)가 근래 발간한 책 ‘The trumph of City’에서 “시드니와 멜본은 인구증가로 인해 무한한 부를 창조할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계에서 인구증가를 크게 걱정하는 나라는 호주 하나 뿐이다. 유럽에 조그마한 나라 벨지움도 인구증가를 위해 노력하는데 미국만한 대륙에 동서에 길이가 런던과 모스코바에 이르는 거대한 나라가 호주인데 인구는 고작 2천5백만 명이다. 호주인들은 인구 증가로 인한 부에 해택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 때문에 생기는 이익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 현재도 과학, 기술, 의료, 수학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민자들이거나 이민자 자녀들이다. 이 분야에 발명특허의 1/4도 이들의 역작이다. 이 분야에서 Ph.D를 획득한 사람들 반수 이상이 이민자나 이민자 자녀들이다. 미국의 과학기술 분야는 이민자들 아니면 운영키 곤란하다. 이민자들이 오면 임금이 낮아지고 집값이 오른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고 있어 그들도 안정이 되면 돈을 싫어하지 않는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집주인에게는 좋은 조건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집값 문제를 유럽,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0개 도시를 비교해 보았는데 호주는 시드니가 멜본보다 30만불이나 50만불 비싸지만 멜본, 브리스베인, 아들라이드는 50개 도시 중에 낮은 편이다. 호주 연방 재무성은 작년에 이민자들 때문에 100억불의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세금을 내고, 집을 사고, 가구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호주의 경제를 성장 시킨 것이라고 한다.
근래 남아프리카 지역에 범죄가 늘어나 백인 농가들이 흑인 갱들의 공격을 받아 안전한 호주로 이민하기를 원한다. 호주 역시 양 기르고, 털 깎고, 과일 따고 하는 농부가 10만명 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남아공에 인구는 5천만명인데 살인사건만 매일 52건(2016-17)으로 연간 1만9천명이 살해당하고, 납치 사건만 매일 4,100명이 되며, 도둑질이나 성추행도 큰 문제이다. 인구는 5천만명인데 흑인 79.2%이고, 백인이 8.9%이며, 나머지는 인도나 인접국가 사람들이다. 그런데 소수에 백인들이 농장을 소유한 숫자는 전체 농경지에 75%에 이르고 있고, 다수인 흑인의 소유는 미약하다. 그래서 사회주의 정부는 보상없이 백인 농토를 빼앗기도 한다.
1991년부터 남아공 백인농부의 호주 이민자는 현재까지 18만1천명이라고 한다. 주로 서부호주 Perth에 많이 정착하고 일부는 시드니에도 정착했다. 이들을 생각해서 이민장관이며 내무장관이기도 한 Peter Dutton은 전 토니 애버트 수상과 더불어 이들 “백인 농부를 받을 수 있는 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하자 외무장관 줄리 비숍은 “백인이라 특별법을 만들 수 없다. 나도 서부호주 출신구(Curtin)에 많은 남아공 사람들이 있지만 다른나라 사람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호주 녹색당 당수인 Dr. Richard Di Natale은 “백호주의가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가 피난민들을 남의 나라 외딴섬 Manus 수용소에서 또는 Nauru 수용소에서 이슬람이란 이유로 얼마나 피난민을 나쁘게 취급했는가? 그런데 부자인 남아공 백인농부를 데리고 오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면 백호주의 부활이 아닌가?”라며 강력히 반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우선 언어가 영어를 사용하고 호주사회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 이민자의 실업률은 2%이며,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남부 유럽 이민자들은 실업률이 4%이며, 중국 이민자들은 6%인데 비해 모슬렘 이민자들이나 피난민들은 22%이상이 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이민자들에게 500시간의 영어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언어 습득이 쉽게 되지 않는 실정이다. 호주에 남아공 백인농부 이민에 대하여 남아프리카 정부는 그들이 다 이민하게 되면 남아공 식량생산에 큰 문제가 있어 이를 제안하는 Peter Dutton 장관을 비난하고 있다.
하명호(SBS 방송인,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