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06) _ 2월 15일
“선진국과 선진국민이 되려면”

최근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한인사회의 원로 언론학자이며 실무 언론인 출신이신 김삼오 박사께서 인문학적 교양서적 한권을 출판하셨습니다. 책 제목은 “선진국이 되겠다면 선진 매너와 에티켓부터 배워야지” 입니다.
이 책은 Prologue와 후기를 제외하면 모두 25개의 실제적 삶과 연계된 실용적 문화와 생활철학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의식구조를 지닌채 서방과 영미문화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한국인들의 매너와 에티켓이 주요 화두입니다. 필자는 진정한 선진화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을 넘어서 “자유민주의 가치”라는 바탕 위에서서,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녀왔던 습관화된 우리의 매너와 에티켓을 반성하고 새롭게 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고 일러줍니다.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있고, 일상화 되어 있는, 각종 권위의식, 차별의식, 서열의식, 집단주의, 지역감정, 연줄의식, 출세주의, 배타주의, 지적억압, 체면문화, 지나친 감정표현, 보편적 가치와 상식 무시하기, 불공정한 사회풍조와 그 씨스템 등을 실제적 예를 들어가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잡기장은 이 책 가운데 처음 10개의 글 중에서 옮겨와 다듬어 본 것들입니다.
* 그간 우리의 국제화와 선진화란 1인당 국민소득과 생산시설이나 생산량 같은 경제와 물량지표를 잣대로 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에 걸맞게 사람도 사회도 국제화되고 선진화 되어야한다.
* 아무리 거창한 과업도 가까운 데서 출발해야한다. 매너와 에티켓이다. 영어 에티켓의 우리말은 예의일 테고, 매너는 그 보다 범위가 넓은 구성원들의 행위양식이다.
* 갑질은 나쁜 매너이고 애써서 보낸 편지에 답장 조차하지 않고 묵살해 버리는 것은 나쁜 에티켓이다. 이런 것은 인권존중 사상의 부재와 그 의식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선진 서방국가들이 일찍 자리매김한 자유민주주의다.
* 강한 직위의식과 뿌리 깊은 관존민비사상, 명함을 헤푸게 돌리는 사회, 서민주의 사회의식의 상실, 권위주의, 여전히 관운 운운하는 사회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넓고 깊게 남아있다.

* 나이나 직위나 성별에 차이를 두지 않고 그냥 그대로 이름을 부를수 있는 퍼스트 네임 (first name) 호칭 사회가 되어야한다. 회장님, 총장님, 장군님, 부장님, 과장님, 선생님, 원장님, 사모님, 목사님, 신부님 이라고 하면서 ‘님’자를 붙이는 사회풍조가 살아지고 그냥 아저씨, 아줌마로 불러도 스스럼 없이 통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나 올까?
* 나이를 가지고 대접을 받으려고 해서는 않된다. ‘젊은 놈’은 꼭 먼저 인사를 해야하고 나이 많은 사람은 늘 인사를 받은 후에 답례를 해야 하는가?
* 집단주의적 습성을 어서 털어버려야 한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수많은 집단주의적이며 국수주의적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많은 종친회, 동창회, 향우회를 비롯하여 Korean이란 접두어를 붙인 단체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인다. 경우에 따라 이런 것들은 일종의 패거리문화를 만들기도하고 끼리끼리로 인한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한다. 회식문화도 털어버려야 할 것 중 하나이다. ‘호주는 심심한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난 지옥’ 이라는 농담 같은 말은 어서 살아져야한다.
* 냄비근성도 마찬가지다. ‘빨리 빨리’는 결코 자랑이 아니다. 실적을 위해 밀어붙이면 인권이 망가지게 된다. 사실 서방사회의 기다릴줄 아는 사회분위기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믿음이 없으니 기다릴 수가 없고 빨리 빨리를 외치게 된다. 이런 것은 다 군대식 능율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 기분 (Kibun)과 눈치 (Nunch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 민족이라고 한다. 우리는 눈치를 잘 봐야 성공하고 출세한다고 한다. 이걸 극복해내지 않으면 우린 선진국, 선진국민 – 아직 한참 멀고 멀다고 하겠다.
* 우리 사회는 ‘무엇을 아느냐’ 보다는 ‘누구를 아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 ‘언제 결혼 할 거냐?’ ‘애는 언제 낳을거냐?’ 이런 걸 물어보는 것도 상대방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성희롱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우린 아무리 친해도 호주사람들에게는 물을수 없는 것들을 별로 친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쉽게 물어보곤 한다.
* 영어에서는 상대방이 그 누구이든 ‘you’ – ‘당신’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국인들 사이에선 그게 않된다. 이것도 서열의식과 권위주의, 계급의식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 ‘Ladies and gentlemen’ 을 우리는 ‘신사 숙녀 여러분’ 이라고 순서를 바꾸어서 번역한다. 이런 것도 다 그 밑바닥에는 남녀 차별의식이 있다는 표시가 된다.
* 군사부일체 사상은 어서 극복해내야 할 권위주의의 잔재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지적억압이나 목사와 교인 사이의 종교적 상하의식도 어서 끝을 내야한다. 우리도 ‘스승의 날’이 없는 사회, 목사도 편안하게 이름을 부를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수 있을까?
(추천도서: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 매너와 에티켓부터 배워야, 김삼오 지음, 바른북스, 2020)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