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년 3월 19일, 중세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역사가 · 사상가 · 정치가 이븐 할둔 / 이븐 칼둔 (Ibn Khaldun, 1332 ~ 1406) 별세
이븐 할둔 또는 이븐 칼둔 (Ibn Khaldun, 1332년 5월 27일 ~ 1406년 3월 19일)은 중세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역사가 · 사상가 · 정치가이다.

– 이븐 할둔 / 이븐 칼둔 (Ibn Khaldun)
.출생: 1332년 5월 27일, 튀니지 튀니스
.사망: 1406년 3월 17일, 이집트 카이로
.본명: Abd Ar Rahman bin Muhammed ibn Khaldun
.영향을 준 인물: 무함마드, 이븐 시나, 가잘리, 이븐 루시드, 파라비, 아리스토텔레스
.학력: Ez-Zitouna University, 알 카라윈 대학교
‘이븐 할둔’ (Ibn Khaldun)은 튀니지에서 태어나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에서 활약하였으며 카이로에서 사망하였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알려져 있다.
방대한 사서’일반 역사’의 제1부를 이루고 있는’역사 서설’은 독자적인 역사철학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회학의 선구적인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아랍 사회의 총체와 그 역사적 전개의 양상을 고유한 방법론으로 분석함으로써 그것의 구조와 변화의 법칙성을 서술하였으며 또한 이것은 사회학적 방법의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생애 및 활동
스페인 세비야에서 튀니스로 망명한 명문 할둔가문 출신이다. 튀니스의 하프스 왕조을 섬겼으며, 이후 마린 왕조, 나스르 왕조, 베쟈야의 하프스 왕조 지방정권 등 지중해 세계의 이슬람 정권의 궁정을 돌아다녔다.
처음 하프스 왕조에서는 비서관으로 임명되었지만 그 지위에 만족하지 못했고, 마린 왕조에서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투옥되는 등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다. 3번째로 일하게된 나스르 왕조에서는 무하마드 5세의 총애하는 신하가 되어, 카스틸리야 왕국의 외교사절로 임명되는 등 중용되었으나, 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재상 이븐 알하티브와 알력이 생겨,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4번째로 일하게된 지방도시정권인 베쟈야는 예부터 알고 지내던 하프스 왕조의 왕자의 좋은 대우를 받게되어 집권하여 중용되었으나, 연이어 일어난 전란속에서 베쟈야정권은 괴멸되고, 전사한 술탄을 대신하여 적인 자이얀 왕조 군대에게 도시를 넘겨주었다. 이렇듯 이븐 할둔의 정치가로서의 인생은 유랑생활의 연속이었고, 이것이 후에 학자로서 그의 사상체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베쟈야를 떠난 후 그는 정치무대에서 물러난 후, 1375∼1378년에는 알제리의 오랑 지방의 콸라트 이븐 살라마 마을에 칩거하면서 학문연구의 길에 매진했다. 서아시아 이슬람사의 체계화를 시도하여, 아랍족 · 페르시아인 · 베르베르족 등 시대의 개시와 경과의 실례와 기록인 ‘이바르의 책’ (Kitab al-‘Ibar)이라는 제목의 세계사를 완성하였다.
이 가운데서 베르베르의 여러 종족사는, 이 민족의 기원 · 계통 · 변천 등을 서술한 최초의 문헌으로서 중요시 된다. 이 저서의 권두 (卷頭)에 실은, 역사 서설 (歷史序說)로 통칭되는 ‘무깟디마’ (Muqaddimah)는 사회의 형성과 변화의 사정·법칙을 고찰하였고, 문화사의 근본적인 여러 문제에 해답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으로서 세계적 명저이다.
이같은 명저서로 인해 학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쌓게되어, 1382년 이집트 카이로 이주하여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였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의 신임을 얻어, 다수의 학원에서 교수직을 역임했고, 마리크파의 대법관 (大法官)에 임명되었다.
그 후 쿠데타에 관여한 것이 이유가 되어 정치적으로는 실각되었으나, 학자로서의 명성은 쇠퇴하지 않았다. 티무르가 시리아원정에 나서 다마스커스를 포위하였을때, 그 명성을 듣게된 티무르에 의해 주둔지에 초대되어, 뛰어난 변설로 좌중을 압도하였다. 티무르로부터 정중한 대우와 예우를 받은 이븐 할둔은 다시 이집트로 귀환한 후 여러번 대법관을 맡았고, 6번째 취임 직후 병을 얻어 죽었다.

○ ‘무깟디마‘에 대하여
‘무깟디마’는 아랍, 베르베르족 출신 역사가 이븐 칼둔이 1377년에 저술한 책이다.
이븐 칼둔의 서문으로도 알려져있다.
이 책은 초기 인류사에 관해 기록하였다.
몇몇 현대 사상가들은 이 책을 역사철학, 사회과학, 사회학, 인구통계학, 역사학, 문화사, 사회 다원설, 생태학, 다원설, 경제학을 다루는 최초의 서적으로도 본다.
또 ‘무깟디마’는 이슬람 신학, 정치철학 그리고 생물학, 화학영역도 다루고 있다.
‘무깟디마’는 사전적으로 ‘머리글’, ‘서문’을 뜻한다.
1377년, 이븐 칼둔은 ‘충고의 서’라는 세계사에 관한 책 (총 7권)의 서문으로 ‘무깟디마’를 썼다.
○ 평가
북아프리카 튀니스 출신인 이븐 할둔은 젊은 시절 역량을 인정받아 20세에 관직에 진출한다. 이후 스페인, 마그레브 지역 왕조에서 관리로 일하며 소용돌이치는 권력에 부대끼는 인생을 살았다. 그는 스페인, 마그레브 지역에 산재한 도시-튀니스, 페스, 그라나다 등-를 오가며 그곳에 건립된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문명이 완성한 방대한 인문지리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40세에 은퇴해 친구 집에서 집필에 몰두하던 이븐 할둔은 말년에 이집트 카이로로 거처를 옮겨 <역사서설>을 출간한다. <역사서설>은 이슬람 문명이 쇠락하면서 잊혀졌으나, 19세기 유럽인들이 이슬람 문헌에 경탄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븐 할둔은 자립을 모색하던 1950년대 이슬람 지식인들에게 특히 사랑받았다. 그들은 이븐 할둔을 ‘쓰라림 속에서도 운명론 속으로 도피하지 않은 정치가’ ‘비합리적 세상에서 합리주의를 살려 관찰과 조사에 헌신한 대학자’ ‘진부한 말 대신 아사비야, 움란처럼 명료한 역사사회 언어를 개척한 선구자’로 받들었다.
역사학계 거장이었던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서설>에 대해 “독자적인 역사철학을 구상하고 형상화했는데, 그것은 이제껏 어느 곳, 어느 때, 어느 누구에 의해 논의된 것보다 위대한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 저서
– 한국어로 번역된 책
김정아 옮김, 무깟디마 1~2, (서울: 소명출판, 2012)
김호동 옮김, 역사서설: 아랍, 이슬람, 문명, (서울: 까치글방, 2003) — 영미권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다우드 (Nessim Joseph Dawood)의 영어 축약본 (1967)을 중역.
金容善 옮김, 이슬람 思想, (서울: 三省出版社, 1976) — 역사서설 (무깟디마).
– Bibliography
Kitāb al-ʻIbar wa-Dīwān al-Mubtadaʼ wa-l-Khabar fī Taʼrīkh al-ʻArab wa-l-Barbar wa-Man ʻĀṣarahum min Dhawī ash-Shaʼn al-Akbār
Lubābu-l-Muhassal fee Uswoolu-d-Deen
Shifā’u-s-Sā’il
ʻAl-Laqaw li-s-Sulṭān
Ibn Khaldun. 1951 التعريف بإبن خلدون ورحلته غربا وشرقا Al-Taʻrīf bi Ibn-Khaldūn wa Riħlatuhu Għarbān wa Sharqān. Published by Muħammad ibn-Tāwīt at-Tanjī. Cairo (Autobiography in Arabic).
Ibn Khaldūn. 1958 The Muqaddimah : An introduction to history. Translated from the Arabic by Franz Rosenthal. 3 vols. New York: Princeton.
Ibn Khaldūn. 1967 The Muqaddimah : An introduction to history. Trans. Franz Rosenthal, ed. N.J. Dawood. (Abridged).
Ibn Khaldun, 1332–1406. 1905 ‘A Selection from the Prolegomena of Ibn Khaldūn’. Trans. Duncan Macdonald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