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4년 4월 25일, 스웨덴의 물리학자·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 1701 ~ 1744) 별세
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 1701년 11월 27일 ~ 1744년 4월 25일)는 스웨덴의 물리학자·천문학자이다.

– 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
.출생: 1701년 11월 27일, 스웨덴 웁살라
.사망: 1744년 4월 25일 (42세), 스웨덴 웁살라
.국적: 스웨덴
.학력: 웁살라 대학교
.직업: 물리학자, 천문학자
스웨덴의 물리학자, 천문학자이다. 섭씨온도를 만든 인물이다.
웁살라에서 출생하여 웁살라 대학 교수가 되었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의 협력자들과 북극의 오로라를 316번이나 관측하였다. 웁살라에 천문대를 건설하여, 초대 천문대장이 되었다.
또, 물의 빙점과 비등점 사이를 100 °C로 나누는 섭씨 온도(°C)를 제창하였다.
저서에 <지구 형상 결정에 관한 관측>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안데르스 셀시우스는 1701년 11월 27일 스웨덴 웁살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1730년부터 웁살라대학교의 교수로 지내면서 1741년 천문대를 건설했다.
북극의 오로라를 관측하는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긴 건 온도 체계를 만든 일이다.
17~18세기만 하더라도 온도를 재는 믿을 만한 체계가 없었다. 온도를 대충 느끼거나 측정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지금 몇 도인지 숫자로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온도 체계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특정 온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고정점’으로 삼는 일에서 출발했다. 많은 학자가 다양한 온도를 고정점으로 두자고 주장했다. 이중에선 지금 듣기에 이상한 주장도 많았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치멘토 아카데미는 ‘여름철 가장 심한 더위’를 고정점으로 삼자고 했다. 하지만, 가장 심한 더위는 매년 바뀌니, 고정점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의사인 호아침 달렌스는 버터의 녹는점을, 만유인력을 고안한 영국의 아이작 뉴턴은 체온을 주장했다. 버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체온을 잰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온도가 변하기 때문에 둘 다 고정점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1742년, 셀시우스는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을 고정점으로 정하고, 그 사이를 100개의 단위로 나누어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기압이 일정하다면,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은 어디서든 일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셀시우스는 처음에 물의 끓는점을 0도, 어는점을 100도로 정했다는 거다. 역사학자들은 셀시우스가 추운 스웨덴에 살아서 영하의 온도를 측정하는 경우가 더 잦아서 그랬다고 추정한다.
셀시우스가 죽은 이듬해인 1745년, 친구였던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이를 뒤집어서 현재와 비슷한 온도 체계로 만들었다. 이후로 널리 퍼진 섭씨 체계는 현재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쓰이고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섭씨 (°C)와 다른 온도 체계인 화씨(F)가 사용되고 있다.

- 주요 생애 및 업적
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 1701 ~ 1744)는 스웨덴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섭씨온도 (°C) 체계를 고안한 인물이다.
.섭씨온도 고안: 1742년 물의 어는점을 0°C, 끓는점을 100°C로 정하고 그 사이를 100등분하는 온도 체계를 제창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처음에 끓는점을 0도, 어는점을 100도로 설정했으나, 사후에 동료들에 의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뒤집혀 표준화되었다.
.천문학적 기여: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천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웁살라 천문대를 건설하고 초대 대장을 지냈다.
.과학적 탐구: 북극 근처에서 오로라를 수백 번 관측하고, 지구의 모양이 양 끝이 납작한 타원형임을 증명하기 위한 프랑스의 위도 측정 원정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섭씨’ 명칭의 유래
한국에서 사용하는 ‘섭씨 (攝氏)’라는 명칭은 그의 성인 셀시우스 (Celsius)를 중국식 한자로 음차한 ‘섭이사 (攝爾思)’에서 유래했다. 즉, ‘섭씨 성을 가진 분의 온도 체계’라는 뜻이다.

○ 저서
주요 저서에 <지구 형상 결정에 관한 관측>이 있다.
De novo in fluviis norlandiarum piscandi modo (in Latin). Uppsala: Johan Höjer, änka. 1738.
“Observationer om twänne beständiga grader på en thermometer” [Observations about two stable degrees on a thermometer]. Kungliga Svenska Vetenskapsakademiens Handlingar (Proceedings of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in Swedish). 3: 171–180. 1742.
*안데르스 셀시우스의 <지구 형상 결정에 관한 관측> (De observationibus pro figura telluris determinanda, 1738)
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의 <지구 형상 결정에 관한 관측 (De observationibus pro figura telluris determinanda, 1738)>은 18세기 과학계의 가장 큰 논쟁 중 하나였던 ‘지구의 모양’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핵심적인 과학적 성과다.
이 관측과 관련 원정은 아이작 뉴턴의 이론을 뒷받침하며 지구가 극지방이 납작한 타원체 (편평타원체)임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역사적 배경과 원정 목적
18세기 초,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지구가 자전축 방향으로 긴지 (장타원체, 카시니 주장) 혹은 납작한지 (편평타원체, 뉴턴 주장)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다.
.원정: 1736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이 논쟁을 종식하기 위해 두 개의 원정대를 보냈다. 하나는 적도 부근 (페루/에콰도르)으로, 다른 하나는 극지방인 스웨덴 라플란드 (토르네오)로 파견되었다.
.셀시우스의 역할: 스웨덴 출신의 천문학자였던 셀시우스는 피에르 루이 모페르튀이 (Pierre Louis Maupertuis)가 이끄는 라플란드 원정대의 핵심 전문 천문학자로 참여했다.

– 관측 및 측정 내용 (1736년~1737년)
셀시우스와 원정대는 1736년~1737년 북극권에 위치한 토르네오 (Tornio) 계곡에서 엄동설한의 악조건을 견디며 측량을 수행했다.
.위도 1도 측정: 자오선을 따라 위도 1도의 길이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뉴턴의 이론이 맞다면 극지방에서 위도 1도의 길이는 적도 부근보다 더 길어야 했다.
.결과: 라플란드에서 측정된 1도의 길이는 프랑스에서 측정된 값보다 확연히 길었다. 이는 지구가 극지방에서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다는 것을 실증했다.
– ‘지구 형상 결정에 관한 관측’ (1738)의 내용
셀시우스는 원정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뉴턴 이론 입증: 이 연구를 통해 카시니의 장타원체 설을 뒤집고, 뉴턴이 제안한 편평타원체 (oblate spheroid)설이 정확함을 확인했다.
.기타 성과: 셀시우스는 이 원정 기간 동안 라플란드의 북극광 (오로라)을 관측하여 자침 (나침반 바늘)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등 자력에 관한 초기 연구도 수행했다.
– 역사적 의의
.과학적 논쟁 종식: 이 원정과 셀시우스의 관측 결과는 지구 형상에 대한 오랜 논쟁을 마무리 지었다.
.스웨덴 과학의 발전: 이 원정의 성공으로 셀시우스는 큰 명성을 얻었으며, 1741년 웁살라에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천문대를 설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지구의 모양: 결과적으로 지구는 적도가 불룩하고 극이 납작한 ‘오렌지 모양 (oblate)’임이 밝혀졌다.
안데르스 셀시우스는 온도계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18세기 지구의 크기와 모양을 밝혀낸 중요한 지구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