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12월 4일, 영국의 평론가 ·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1795 ~ 1881) 출생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1795년 12월 4일 ~ 1881년 2월 5일)은 영국의 평론가 · 역사가이다.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혁을 제창하여 19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의상철학》,《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과거와 현재》 등이 있다.
–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출생: 1795년 12월 4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클페찬
.사망: 1881년 2월 5일 (85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국적: 영국
.직업: 역사학자, 작가
.주요저서: 의상철학, 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과거와 현재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철학자, 사학자 및 비평가로 이름을 남겼다.
대자연은 신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 형식, 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경험론 철학과 공리주의에 도전했다.
또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개인보다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엘리트의 역할을 중시하는 사회유기체설을 주장했고, 이에 기반한 신헤겔주의적 자유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총장이었으며, 유명한 저서로는 《영웅숭배론》, 《프랑스 혁명》 등이 있다.
전기 작가로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올리버 크롬웰을 다룬 책도 알려져 있다.

○ 생애 및 활동
칼라일은 스코틀랜드의 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르거(Burgher) 교회의 성도였으며 강한 칼빈주의의 신앙이 칼라일에게 영향을 크게 주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그 후 독일 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괴테·실러 등의 작품을 영국에 소개하였다.
1826년에 Jane Welsh와 결혼하였다.
1838년 《의상 철학》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당시 영국 사회의 산업 만능 사상에 대한 낭만적인 구제책을 제시했다.
이후 칼라일은 1834년 런던으로 이사를 간다. 그는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3권으로 이뤄진 《프랑스 혁명사》를 저술한다.
이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에게 초고를 빌려주었다가 하녀가 불쏘시개로 태우는 바람에 다시 저술하였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혁명은 지배자들의 악정에 대한 천벌이며 영웅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1841년 《영웅과 영웅숭배》에서는 영웅은 우주의 질서를 깨달아 성실로서 대응한 용기 있는 자라고 논하고 역사에서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였다.
1839년의 《차티즘》과 43년의 《과거와 현재》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생활을 동정하면서도 올바른 영웅의 지배와 중세와 같은 질서있는 경제생활만이 유일한 구제수단으로 보고 보통선거와 자유방임경제를 비판하였다.
물질주의와 공리주의에 반대, 영혼과 의지의 힘을 존중한 그의 세계관은 반민주주의적 견해로 그 시대의 주요 흐름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 영웅 숭배론
그의 대표작인 《영웅 숭배론》 (1841, 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에서 성실하고 용기있는 영웅적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들을 존경 해야 하며, 영웅을 알아보고 존경하기 위해서는 안목을 갖춘 작은 영웅들이 필요하므로 영웅들로 가득한 세계에서만 진정한 영웅 숭배가 가능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폈으며, 이에 따른 역사에서의 개개인의 역량을 중요시했다.
칼라일이 말한 영웅은 성실성과 통찰력을 구비한 인물이지 파시스트 같은 독재자를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 파시스트 추종자들에 의해 이 영웅숭배론이 ‘총통숭배’와 동일시 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칼라일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칼라일이 말하는 진정한 영웅은 진실성과 성실성을 가진 인물로서 그는 윌리엄 세익스피어, 존 녹스, 마르틴 루터, 올리버 크롬웰, 루소, 나폴레옹 등을 인류의 영웅으로 꼽았다.
– 말년
이후에도 많은 강연을 하고 저서를 저술하다가 아내 Jane의 사망(1866년)뒤에는 글도 거의 쓰지 않았으며, 1881년 2월 5일에 사망하여 에클페칸 묘지에 묻혔다.
○ 영향
20세기 역사가 브린턴 (Crane Brinton)은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로 존 스튜어트 밀과 칼라일을 꼽았다. 칼라일을 배제하고서는 19세기 영국 문학사도 영국 사회사도 설명할 수 없다.
괴테는 칼라일이 아직 문인으로 이름을 떨치기 전인 1827년에 그의 특유의 통찰력으로 ” 칼라일은 대단히 중요한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19세기 전반기의 젊은이들에게 칼라일의 저작들은 계시와도 같은 권능으로 받아들여졌고 “칼라일은 나의 종교”라는 말까지 떠돌아 다녔다.
칼라일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돼지 철학’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산업사회의 비정한 인간관계를 ‘금전 관계 (Cash nexus)’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엥겔스 등을 비롯한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구이기도 했다.
문학비평가 루카치는 칼라일을 ‘사회주의 비평의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 학문과 사상
대자연은 신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 형식, 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경험론 철학과 공리주의에 도전했다. 또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개인보다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엘리트의 역할을 중시하는 사회유기체설을 주장했고, 이에 기반한 신헤겔주의적 자유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총장이었으며, 유명한 저서로는 《영웅숭배론》, 《프랑스 혁명》 등이 있다. 전기 작가로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올리버 크롬웰을 다룬 책도 알려져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딱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종교적 회의주의와 자유주의에 기반해 영적인 믿음이 해체되는 추세에는 반감을 느껴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합리적인 영적 믿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에서 나온 대자연과 상징-의복 철학이 이러한 종교학적 사유의 결과로 나온 이론들이다.
그는 매우 엘리트주의적이고 엘리트와 대중의 상호 의무를 바탕으로 하는 집단주의적인 사회를 바랐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영웅들은 마땅히 숭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중세 시대의 기독교와 같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에 이러한 영웅들, 그러니까 엘리트 계급이 위치해야 한다. 엘리트 계급은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며 사회를 진보시키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한편 대중을 보살피면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러한 사상의 일환으로, 칼라일은 모든 대중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교육받고 도덕적인 엘리트적 귀족 계급에 의해 지배받고 엘리트와 민중이 상호의 의무를 다하는 유기적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가 건설될때 개인은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논리를 펼쳤다. 19세기 후반부터 유행한 신헤겔주의적 자유주의는 그가 주장한 ‘의무가 잘 수행되는 집단적 사회 안에서 개인은 가장 자유롭다’는 이론에 기반해 있고, 당대의 한국이나 일본 등 여러 신생국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유방임주의를 모든 것을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도록 놔두는 ‘음울한 과학’이라며 혐오했으며, 노동계급을 구원하는 한편 국가와 사회에 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업의 영웅’으로서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도 도덕적 지성을 갖춘 이들이 ‘노동의 기사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이후 역사가 점점 쇠퇴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문명은 죽음과 재탄생을 거치며 순환한다고 보았다. 영웅사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역사를 쇄신할 위대한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에서 탄생한 것이다.
역사학자로써 역사가 몇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영웅사관을 19세기 동안 널리 퍼트린 장본인이다. 이런 영웅사관은 20세기에 허버트 스펜서에게 비판받을 때까지 ‘대중적으로’ 주요 역사학 조류로 받아들여졌지만, 학문적으로는 자유주의와 개인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역사주의나 휘그 사관[2], 이후에는 과학적 역사학을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 사관에 의해 신비주의적이고 비합리주의적이라며 비판받았다.
이러한 보수적이고 집단주의적 사고로 인해, 1,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선구자라고 지목되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 비판
영웅사관과 엘리트주의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심지어 우월한 인간들이 더 열등한 인간을 보호하는 노예제도가 자유방임주의보다 훨씬 낫다고 주장해,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자유주의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반대로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미국 남부인들로부터는 말그대로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또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로도 당대부터 이미 악명이 높았다. 근대 자유주의와 산업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엘리트 귀족 계급을 추종한 칼라일은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저택이 웰링턴 공작과 같은 영웅적 엘리트 계급들이 거주하는 집과 거의 비슷한 높이를 가졌다는 것을 보고 매우 분노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로스차일드 같은 ‘도둑'[3]들을 싸그리 청소해버려야 한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고 한다. 그는 유대인 자본이 밀집한 하운드스디치(Houndsditch) 거리와 같은 곳들을 거론하며 ‘냄새나고, 인류의 부와 진보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유대인들이 사는 곳’으로 표현했으며, 반대로 자신과 같은 앵글로-색슨계 영국인들에 대해서는 ‘용감하고 진실하며 인류를 진보로 인도하는 노르드인’으로 표현하며 대놓고 인종주의적, 대독일주의적 사고를 드러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와 나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후반 독일에 그의 작품이 알려진 이래 독일 지성계에서 칼라일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원회귀론이나 위버맨쉬 이론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인종주의나 대독일주의적 사고, 영웅주의, 집단주의, 반자유주의적 사상은 독일 극우세력에게 흡수되어 나치로 이어진다.
– 인용구
일반인들에겐 그의 이름이나 작품보다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혹은 인도는 포기할 수 있으나 셰익스피어는 포기할 수 없다.)” 란 말로 유명하며, 이 유명한 구절은 바로 《영웅숭배론》에 나온다. 하지만 이는 매우 와전된 것으로, 원 문장은 다음과 같다.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
(직역)-‘인도 제국은 어떤속도로든,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실제로 인도는 1947년 인도 자치령, 1950년 인도 공화국 성립으로 독립했지만 셰익스피어는 영어가 소멸하지 않는 한 영국의 유산으로 존속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전래되어 오고 있으니 맞는 말을 한 셈이다.

○ 저서
주요저서로는 《의상철학》,《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과거와 현재》 등이 있다.
*Works
(1829) Signs of the Times. The Victorian Web
(1833–34) Sartor Resartus. Project Gutenberg
(1837) The French Revolution: A History. Project Gutenberg
(1840) Chartism. Google Books
(1841) 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 Project Gutenberg
(1843) Past and Present. Project Gutenberg
(1845) Oliver Cromwell’s Letters and Speeches, with Elucidations, ed. Thomas Carlyle, 3 vol. (often reprinted). Online version. Another online version.
(1849) “Occasional Discourse on the Negro Question”, Fraser’s Magazine (anonymous), Online text
(1850) Latter-Day Pamphlets. Project Gutenberg
(1851) The Life of John Sterling. Project Gutenberg
(1858) History of Friedrich II of Prussia. Index to Project Gutenberg texts
(1867) Shooting Niagara: and After. Online Text
(1875) The Early Kings of Norway. Project Gutenberg
(1882) Reminiscences of my Irish Journey in 1849. Online text
(1892) Lectures on the History of Literature
- Unauthorized lifetime editions
“Thomas’ Carlyle’s Ausgewählte Schriften”, 1855–56, Leipzig. Translations by A. Kretzschmar. Abandoned after 6 vols.

- Authorised lifetime editions
Uniform edition, Chapman and Hall, 16 vols, 1857–58.
Library edition, Chapman and Hall, 34 vols (30 vols 1869–71, 3 additional vols added 1871 and one more 1875). The most lavish lifetime edition, it sold for 6 to 9 shillings per volume (or £15 the set)
People’s edition, Chapman and Hall, 39 vols (37 vols 1871–74, with 2 extra volumes added in 1874 and 1878). Carlyle insisted the price be kept to 2 shillings per volume.
Cabinet edition, Chapman and Hall, 37 vols in 18, 1874 (printed from the plates of the People’s Edition)
- Posthumous editions
Centennial edition, Chapman and Hall, 30 vol, 1896–99 (with reprints to at least 1907). Introductions by Henry Duff Traill. The text is based on the People’s edition, and it is used by many scholars as the standard edition of Carlyle’s works.
Norman and Charlotte Strouse edition (originally the California Carlyle edi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2006. Only 4 volumes were issued: On Heroes (1993), Sartor Resartus (2000), Historical Essays (2003) and Past and Present (2006). Despite being incomplete, it is the only critical edition of (some of) Carlyle’s works.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