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월 13일,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의 바이올린 연주자 나단 밀슈타인 (Nathan Mironovich Milstein, 1904 ~ 1992) 출생
나단 미로노비치 밀슈타인 (Nathan Mironovich Milstein, 1904년 1월 13일 / 율리우스력 1903년 12월 31일 ~ 1992년 12월 21일)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의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 나단 밀슈타인 (Nathan Mironovich Milstein)
.본명: 나탄 미로노비치 밀슈테인 (로: Nathan Mironovich Milstein)
.출생: 1904년 1월 13일, 러시아 제국 오데사
.사망: 1992년 12월 21일
.성별: 남성
.국적: 미국
.직업: 바이올린 연주자
.종교: 유대교
.상훈: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그래미상, 존 F. 케네디 센터 명예상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여겨지는 밀슈타인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솔로 바이올린 작품과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들을 해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오랜 경력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80대 중반까지 높은 수준에서 공연을 했으며, 손이 부러지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은퇴했다.

○ 생애 및 활동
밀슈타인은 1904년 1월 13일, 러시아 제국 오데사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 거주하고 있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7명의 자녀 가운데 넷째 아이로 태어났다.
7세 시절에 그는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스승이기도 한 저명한 바이올린 선생인 표트르 스톨야르스키와 함께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29년 밀슈타인은 레오폴드 스토코우스키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 데뷔를 했다.
그는 결국 뉴욕에 정착하여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는 런던과 파리의 거주지를 유지하면서 유럽 전역을 반복적으로 여행했다.
그와 동행했던 주요 피아노 연주자는 폴란드계 미국인인 아르투르 발삼 (1906년 ~ 1994년)으로, 거의 반세기 동안 그와 함께 공연을 했다.
밀슈타인은 바이올린을 위한 많은 작품들을 편곡했고 많은 협주곡을 위해 카덴차를 썼다.
1968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1975년에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연주를 통해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1987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존 F. 케네디 센터 명예상을 받았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파가니니의 이미지는 엷어져 가고 바흐만이 남게 된다. 이후, 개인적 불행이나 고통은 없는 듯했고 그의 귀족적 품위는 그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고통이 있었다. 거장으로서의 경력을 단축시킬 정도로 극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밀슈타인은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완성되려면 적어도 육칠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빛나고 향기롭고 풍부한 톤을 내면적으로 갖추어나가면서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또한, “날마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금언처럼 음악적 수련에서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사람이었고 레코딩마다 다른 차이를 보여주었다.
레퍼토리상으로는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에 집중되어 있다.
언젠가 로베르트 바흐만이 그에게 현대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바 있는데 밀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과거 50년 동안은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못했다고 본다. 음향 효과일 뿐이고 음악은 없다. 현대음악 연주 중에 가끔씩 바이올린을 두들기거나 하는 짓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스트라디바리가 아니고 냄비를 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스트라디바리는 그런데 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용도로 더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83세 때의 연주회를 끝으로 무대에서 물러난 밀슈타인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가르쳤고 스위스 취리히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1992년 12월 21일, 그가 여든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르 몽드 드 라 뮈지크는 이렇게 애도했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낭만적 전설이 밀슈타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다고 평가할만한 두 차례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녹음과 골드마르크의 협주곡, 생의 마지막까지 음악에 대해 가졌던 그의 생각의 편린이라도 더듬어 볼 수 있는 ‘The Last Recitla’ 음반이 대표작이라 할수 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정교하고 감정적이며, 기교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않았고, 그는 바이올린의 소리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려고 노력했으며, 자신의 연주를 ‘노래’ 라고 표현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