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9월 11일, 마하트마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 ~ 1948)가 비폭력 무저항 운동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 시작
1906년 9월 11일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가 비폭력저항운동인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를 공식 선포한 날이다.
같은 해 8월 간디가 머물고 있던 남아프리카에서는 인도인들이 지문을 등록하고 증명서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차별법이 제출됐다.
이 법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히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의 한 극장에서는 9월 11일 대중 집회가 열렸다.
간디는 이때 연설을 통해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 즉 대중 불복종을 투쟁을 위한 방법으로 채택하게 됐다.

–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의 정의 및 세 가지 원칙
일반적으로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는 ‘시민적 불복종 운동’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한국에서는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번역된다.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 산스크리트어 ‘사티야그라하’)는 마하트마 간디에 의해 시작된 비폭력 저항 운동의 철학이다. ‘사티아’는 진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며, ‘아그라하’는 노력, 열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티아그라하라는 말 자체는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티아 – 진리; 정직 및 평등, 개방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아힘사 – 타인에 대한 상해 불가
.타파시아 – 자발적인 자기 희생
–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의 전개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894 ∼ 1914년에 간디가 아프리카 남부에서 현지 인도인 노동자들의 공민권 획득투쟁을 하던 중이었다.

점포 · 공장 등의 전면적 작업정지인 하르탈이나 영국과의 비협력 등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는 이 투쟁은 20세기 초의 B.G.틸라크, B.C.팔 등의 민족파 지도자들의 ‘수동적 저항’ 운동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간디는 이것을 근본적인 사상으로 삼아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했는데, 간디의 지도와 투쟁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 ∼ 22년과 세계공황에 인도가 휩쓸린 때였다.
1930∼34년 2차로 전개된 사티아그라하는 농민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파급되어 거의 모든 계급 ·계층의 사람들을 규합했다.
1차 세계대전 종료 후인 1919년 봄, 영국 정부의 독립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때 400명의 인도인이 영국군의 무자비한 발포로 학살당하면서 운동은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