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 산타마르타 근처 시에나가에서 일어난 바나나 학살 (Banana Massacre) 발발
바나나 학살 (Banana Massacre, 스: Masacre de las bananeras)은 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 산타마르타 근처 시에나가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이다.

1928년 콜롬비아의 UFC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근무, 주 6일 근무, 급여 현찰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콜롬비아군은 파업 노동자들을 총으로 진압했고, 이 파업은 ‘바나나 학살’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바나나 플랜테이션에서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면서 노동조합이 벌인 한달간의 파업을 끝내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가 군대를 보내 진압하기로 결정한 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 (최소 47명부터 최대 약 2000여명까지 추정됨)이 군당국의 발포에 의해 살해됐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바나나 학살을 묘사했다.
바나나 회사였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United Fruit Company)’는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여, 헌법의 효력이 중단시키고, 파업진압에 군을 동원했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파업 및 항의 차원에서 시에네가 시 광장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모였다.
5분 안에 구역을 깨끗이 비우라는 명령을 받은 콜롬비아 군인들이 기관총으로 민간인들을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날 미국 대사는 콜롬비아 군인들이 1,00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1870년, 로렌초 도우 베이커 (Lorenzo Dow Baker)라는 미국인이 자메이카에서 산 바나나 160송이를 저지시티에 매각해 한 송이에 2달러씩 이득을 보았다.
15년 후 그는 앤드류 프레스턴 (Andrew Preston)이라는 다른 미국인과 함께 보스턴 프루트 컴퍼니 (Boston Fruit Company)를 창설했다.
한편 보스턴 프루트 컴퍼니가 세워지기 14년 전, 마이너 C. 케이스 (Minor C. Keith)라는 미국인 사업가가 코스타리카 국철의 건설권을 따냈다. 돈을 더 많이 벌고싶었던 케이스는 철로를 따라 바나나 나무를 심어 팔았다.
베이커, 프레스턴, 케이스가 만난 것은 1899년의 일이었다. 베이커와 프레스턴의 보스턴 프루트와 케이스의 철도회사가 합쳐져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처음으로 냉동장치가 달린 배로 식료품을 수송하였으며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만들기 위해 최초로 바나나를 연구하기도 하였다.
열대 기후의 태양빛을 반사시키기 위해 선체를 흰색으로 칠한 유나이티드 프루트의 상선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기 세계일주를 벌인 미 해군 함대의 별명을 따 대백색함대 (Great White Fleet)라고 불렸다. 이 대백색함대의 규모는 1930년에는 95척으로 급증하였다.
1928년 콜롬비아의 UFC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근무, 주 6일 근무, 급여 현찰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콜롬비아군은 파업 노동자들을 총으로 진압했고, 이 파업은 ‘바나나 학살’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바나나 학살
‘12시가 가까워 오자, 3,000명이 넘는 노무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역 앞 공터로 몰려나와 설 자리도 없어 옆길로 밀려 들어갔다. 줄지어 늘어선 기관총을 둘러싼 군인들이 길목을 모두 막고 버티고 있어 빠져 나갈 수도 없었다.’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 2014)의 1967년작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바나나농장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계엄령이 발동됐던 상황. 해산 명령이 떨어졌어도 군중은 역전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두 번째 경고에도 자리를 지켰다.
이어지는 마르케스의 소설.
‘14개의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처음에는 굳어버린 듯 아무런 반응도 비명이나 한숨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한쪽에서 찢어져 나온 죽음의 비명이 신비한 침묵을 깼다. 아아아악, 어머니! 지진처럼 진동하는 목소리, 화산 같은 숨소리, 홍수의 성난 부르짖음이 군중 한가운데서 폭발해 단숨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중략) …무자비한 군대는 무릎을 꿇은 여자와, 그 여자가 있던 곳과, 높고 가뭄에 찌든 하늘과…너저분한 터전을 깡그리 쓸어내렸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하나인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가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나 고향인 세군도에 돌아와 중얼거린다.
‘아마 3,000명은 될 거야’. ‘뭐가요?’. ‘죽은 사람들 말입니다. 역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었을 겁니다.’
어디까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가로 평가되는 마르케스가 ‘백년 동안의 고독’에 집어넣은 학살 장면은 ‘몽환적 묘사’ 같지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콜롬비아 북부의 바나나 농장 밀집지역인 시에나가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1928년 10월 6일 콜롬비아 정부군은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3,000여명에게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역사는 이를 ‘바나나 학살 (Banana Massacre)’이라고 기억한다.
다만 사망자 수는 소설과 일치하지 않는다.
콜롬비아 정부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발표했다가 ‘군인 1명 포함 9명 사망’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망자는 46명’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배경과 전개, 파국에 이르기까지 깊이 개입했다고 의심 받던 보고타 주재 미국 대사관은 학살 이튿날 본국에 ‘콜롬비아 정부군 병사 한 명과 시위대 500~600명이 죽었다’는 전문을 쳤다.
미 대사관은 1월 중순에 보낸 전문에서는 ‘사망자가 1,000명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콜롬비아 역사학자들의 추산 역시 제각각이다.
사망자가 800명에서 3,000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정이 상존한다.
마르케스는 최대치를 소설 속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백년 동안의 고독’ 말미를 이렇게 맺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