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31)
아그네스 마리온 (메니) 캠블 (1886. 9. 9-1930. 6. 9)
한국명: 감민의(甘敏義)선생, 진주 1911-22
메니 캠블은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법률자문이었던 캠블씨(J. M. Campbell)의 딸이며, 해외선교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었던 알렉스 캠블 목사(Rev. Dr. Alex Campbell)의 손녀였다. 아그네스는 1886년 큐(Kew)에서 태어났고 루이턴(Ruyton)과 장로교여학교(PLC), 멜번 대학과 교사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녀는 학생기독교운동(SCM)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데일스포드 대회(Daylesford conference)에서 삶의 변화를 체험하였고 해외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탁월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장로교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중등교육 과정을 위한 선교사로 한국으로 가기 전,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다. 한국으로 가는 도중 상해에서 북경으로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자매를 방문했고 1911년 11월 17일 한국에 도착했고, 진주에는 11월 21일에 도착했다.
그 후 2년 동안 캠블은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가정심방, 학습반 교육, 두 차례의 시골순회여행을 하였다. 그녀는 근처 마을에서 비 기독교인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인도했고 여성학습반 등에서 도왔다. 1913년 11월 진주 여학교에 기숙사가 열리면서 캠블은 사감을 맡았고 1914년 4월에 진주여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15년에 넬리 스콜스의 건강이 악화되자 캠블은 스콜스의 순회전도 활동을 대체했고, 스콜스가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시골 여성들을 가르쳤다. 캠블의 감독을 통해 학교는 발전했고 새로운 8학년 과정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1916-17년 휴가를 마친 후에 메니 캠블은 진주에서 교육활동의 책임을 맡았고, 1922년 휴가 때까지 진주여학교의 교장으로 있었다. 그녀는 탁월하게 좋은 선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교사개발에 에너지를 쏟았고 학교는 크게 성장했다. 그녀의 교육활동은 학교를 넘어서 자신이 책임자로 있었던 진주 여자 주일학교에까지 미쳤다. 그녀는 매주 하룻밤을 다른 교사들의 수업준비를 돕는데 사용했고, 또한 여성들과 소녀들을 위한 야간학교의 책임을 맡았고 유치원을 감독했다. 그녀는 지역 여자 성경반들을 가르치는데 자기 몫을 다했고, 진주시 밖에서 열리는 한 곳의 주일학교에도 시간을 할애했다.
1922년 캠블은 서울의 기독교서회(CLS)의 직원으로 초청을 받았으나 병으로 그 자리에 갈 수 없었다. 그녀는 그해 5월 건강이 악화되어 호주로 돌아왔고, 건강이 호전되지 않아 1924년에 선교사 직을 사임했다.
메니 캠블은 질병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1930년 6월에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