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 7월 27일, 프랑스 혁명가 장폴 마라를 암살한 샤를로트 코르데 (Marie-Anne Charlotte, 1768 ~ 1793) 출생
마리 안 샤를로트 코르데 다르몽 (Marie-Anne Charlotte de Corday d’Armont, 1768년 7월 27일 ~ 1793년 7월 17일)는 프랑스 혁명 당시 정치가인 장폴 마라의 암살자이다.

– 마리 안 샤를로트 코르데 다르몽 (Marie-Anne Charlotte de Corday d’Armont)
.출생: 1768년 7월 27일, Ligneries
.사망: 1793년 7월 17일, Place de l’Hôtel-de-Ville – Esplanade de la Libération
.묘지: Madeleine cemetery
.부모: Jacques-François de Corday d’Armont
.저서: Woman in France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프랑스 혁명 당시 온건파였으며 9월 대학살 이후로 혁명에 반감을 느껴 자코뱅의 거두 장폴 마라를 살해한 인물이다.
프랑스 미술가인 폴 보드리와 자크 다비드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마라의 암살 이후에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후세에 그녀의 미모로 인해 “암살 천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거리에는 그녀의 덧없음을 사랑한 남성들도 많았다고 한다.

– 생애 및 활동
3대 고전 시인 중 한 사람인 피에르 코르네유의 자손인 가난한 귀족의 딸로,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1768년 7월 27일에 태어났다.
13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독서를 좋아하고, 루소 등 읽는 조용한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플루타르코스의 ‘대비 열전’이나 조상 코루네유의 저서를 좋아했다 한다.
곧 혁명 정부에 의해 수도원이 폐쇄되자, 샤를로트는 고모인 브르트비유 부인에게로 몸을 의탁했다.
혁명을 과격하게 추진하는 자코뱅파를 혐오했고, 자코뱅파와 정쟁에서 패한 지롱드파를 옹호하게 된다.
1793년 6월 산악파의 독재체제가 완료된 이후로는 혁명에 의혹을 느끼게 된다.
특히 루이 16세의 처형을 두고 지롱드파와 평원파같은 온건 세력은 급진 자코뱅 산악파가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근소한 차이로 루이 16세의 처형이 확정된다.
이 와중에 혁명의 양대 산맥인 두 정당은 서로 등을 돌려 원수가 되어버린다.
지롱드파를 비롯한 온건파는 혁명의 수레바퀴가 살육과 피로 점철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고 과격파의 수장인 장폴 마라를 처단할 음모를 세운다.

칸 시에 체류하는 동안 파리에서 경쟁에 패해 도망 온 페티욘과 바르바루 등의 지롱드파 의원과 접촉한 뒤 프랑스를 위해 마라의 암살을 계획했다 (의원들은 마라가 중병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암살을 선동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샤를로트 자신도 후에 재판에서 공범이나 배후의 존재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단독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1792년 9월 2일부터 7일까지 엿새 동안 진행된 9월 대학살 동안 ‘감옥에서’ 살해된 ‘혁명의 적’들만 해도 1,200여 명에 이르렀다.
한편 코르테는 파리에서 도망친 지롱드 당원들의 연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이런 상황이 종식되기 위해서는 독단적으로 마라를 해치워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9월 대학살의 책임이 마라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1793년 1월의 루이 16세 처형도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여겼다.
사태가 이대로 흐르도록 놓아둘 경우, 프랑스가 혁명파와 반혁명파 사이의 잔혹한 내전에 휩싸이게 되리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1793년 7월 9일, 고모 집에서 파리로 단신 상경했다.
7월 13일, 인민을 위해 문호를 항상 열어둔 장폴 마라를 찾아가 그들에 대한 음모가 있다고 말하면서 곁에 다가왔다.

평소 부스럼같은 피부병 때문에 목욕요법 중인 마라를 목욕탕에서 만났다.
당시 마라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코르데는 마라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자신의 주소를 적지 않는 실수를 해서 마라의 답장을 받지 못했고 마라의 집 앞에서 “나는 자유라는 명분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불행합니다. 인민의 벗, 시민 마라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불행한 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소란을 피웠다.
욕중에서 집무를 보던 마라는 그 소리를 듣고 코르데를 집안에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코르데는 마라에게 접근해 외국 군대와 손을 잡고 현 혁명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반동 세력의 명단이 적혀 있다는 위조된 명단을 마라에게 내밀고 마라가 그것을 읽는 순간, 숨겨둔 식칼로 무참히 찔렀다.
마라는 욕조에서 위조된 반동세력의 명단을 듣다가 샤를로트가 숨겨 온 식칼에 심장을 찔려 절명한다.
사건 직후 그녀는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어 간단한 재판을 받았다.
코르데가 마라를 괴물이라고 주장하자, 혁명재판소는 자신이 핍박받고 있다는 주장만으로 코르데를 집안에 들여준 마라의 인간적인 행동을 보고도 어떻게 마라를 괴물이라고 비난할 수 있냐고 질의했다.
이에 코르데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다른 이들에게 그가 괴물이라면, 나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는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현장에서 체포된 샤를로트는 7월 17일, 혁명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그날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 주요 생애 및 영향
샤를로트 코르데 (Marie-Anne Charlotte de Corday d’Armont)는 프랑스 혁명기의 인물로, 공포정치를 주도하던 급진파 정치가 장폴 마라 (Jean-Paul Marat)를 암살한 핵심 인물이다.
그녀의 삶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핵심 요약은 다음과 같다.
- 주요 생애와 배경
출생과 가문: 1768년 7월 27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가난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극작가 피에르 코르네유의 후손이기도 하다.
정치적 성향: 혁명 초기에는 혁명을 지지했으나, 자코뱅파의 과격화와 폭력성에 반발하며 상대적으로 온건파였던 지롱드파를 지지하게 되었다.
- 장폴 마라 암살 사건 (1793년)
암살 동기: 자코뱅파의 지도자 장폴 마라가 선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고 유혈 사태를 부추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라 한 명을 죽이면 프랑스에 평화가 올 것이라 믿었다.
거사 과정: 1793년 7월 13일, 파리로 상경하여 피부병 때문에 욕조에서 집무를 보던 마라를 찾아갔다. 그녀는 지롱드파의 음모가 담긴 명단을 넘겨주겠다는 구실로 접근한 뒤, 숨겨온 칼로 마라의 가슴을 찔러 살해했다.
최후: 현장에서 즉시 체포된 그녀는 혁명재판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행위가 정의로운 일이었음을 주장했다. 암살 나흘 뒤인 1793년 7월 17일, 24세의 나이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 역사적 평가 및 영향
암살 천사: 처형되기 직전까지도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아 후대에 ‘암살의 천사 (l’ange de l’assassinat)’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술적 모티프: 마라의 죽음은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유화 《마라의 죽음》으로 남겨졌으며, 코르데 역시 수많은 회화와 문학 작품의 주인공으로 다루어졌다.
예상치 못한 결과: 그녀는 평화를 위해 마라를 죽였으나, 오히려 이 사건은 자코뱅파가 반대파를 더욱 잔혹하게 숙청하는 공포정치 (La Terreur)의 기폭제가 되었다.

– 에피소드
처형 당일, 사형 집행인 샤를 앙리 삼손이 그녀의 손을 팔을 뒤로 묶으려 하자, 샤를로트는 “마라를 죽인 후 묶여 있었지만, 매우 난폭하게 묶여 손에 상처가 생겼어요. 그렇게 되지 않게 장갑을 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삼손이 “괜찮아, 난 전혀 아프지 않게 묶는 수가 있다”라고 대답하자 미소를 지으며, 얌전히 포승줄을 받았다고 한다.
처형장으로 향하는 호송 차량에 동승한 삼손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녀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더욱 강하게 매료되었다. 분명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럽게 의연할 수 있는 지 믿을 수 없었다.”
단두대에서 샤를로트의 목이 잘리자 삼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그녀의 목을 들고, 뺨을 때렸다.
구경꾼들은 이 행위에 분개하고 샤를로트의 뺨이 붉게 물들며 분노의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삼손은 제자를 즉시 해고했다.
혁명의 열기가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뒤, 적잖은 예술가들이 코르데의 삶과 죽음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나 보드리의 ‘샤를로트 코르데’ 같은 회화 작품 외에도, 코르데의 삶은 소설, 연극, 오페라, 대중가요에까지 흔적을 남겼다.
코르데가 마라를 죽일 때 입었던 드레스와 보닛 모자는 그녀의 이름을 따 ‘코델리아(cordelia)’로 불릴 정도로 유행이 되었다.
노르웨이 출신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도 장폴 마라를 죽이는 샤를로트 코르데의 모습을 그렸다.

○ 저작
프랑스 혁명기 장 폴 마라를 암살한 샤를로트 코르데 (Charlotte Corday, 1768~1793)는 정식 문학·학술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행동 동기와 정치적 신념을 담은 정치적 선언문과 편지 등 기록물이 유일한 저작으로 전해진다.
- 주요 기록 및 문서 목록
법과 평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Adresse aux Français amis des loix et de la paix): 마라를 암살하기 직전 작성한 3페이지 분량의 정치적 선언문이자 유서. 자신의 행동이 폭정과 무법 천지가 된 프랑스를 구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는 내용이다.
지인 및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 체포 후 재판 과정 및 처형 전까지 지인이나 가족에게 자신의 결백과 소신을 설명하기 위해 쓴 서한들
- 작품
프랑스 혁명 시기 장폴 마라를 암살한 샤를로트 코르데는 직접 예술 작품을 창작한 화가가 아니다. 다만 그녀는 격동의 역사적 사건 (마라 암살)의 주인공으로서 19세기 미술가 폴 보드리의 회화 작품에서 주요 피사체로 묘사되었다.
.샤를로트 코르데를 다룬 주요 회화 작품
샤를로트 코르데 (Charlotte Corday, 1860년작) : 작가는 폴 보드리 (Paul-Jacques-Aimé Baudry)로 마라를 암살한 직후 욕조에 쓰러진 마라와, 창가에 서서 결연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샤를로트 코르데의 모습을 담은 19세기 학술파 회화다.
.연관된 유명 역사화
마라의 죽음 (La Mort de Marat, 1793년작) : 작가는 자크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로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해 욕조에서 숨을 거둔 장폴 마라를 영웅적으로 그린 혁명기 대표작이다. 직접 코르데의 전신이 그려지지는 않았으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그녀가 남긴 암살의 편지가 그림 속 마라의 손에 들려 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