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케임브리지 독일사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원제: 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Germany
마틴 키친 / 시공사 / 2001.11.15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역사 시리즈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의 하나인 이 책은 독일 역사의 시작부터 통독까지의 독일 역사 전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정 주제나 시대를 분석하기 보다는 시대순으로 서술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골고루 조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0여 컷 이상 되는 컬러 사진과 그림, 본문과 관련된 지도는 내용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루터와 구텐베르크, 그리고 바흐와 괴테와 같은 지적이고 교양 있는 인물들을 길러 낸 나라가 왜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는 왜 어려움을 겪었는지, 국가사회주의에 무릎을 꿇었던 나라가 어떻게 다시 유럽 연합을 만들어 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는지 등 독일 역사에 얽히고 설켜 있는 모순점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접기
책속에서
독일의 회화가 16세기 중반부터 급격하게 퇴조하게 된 주요 요인은 경제적인 면 때문이다. …음악은 종교 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칼뱅은 음악이 성욕을 자극한다고 생각하여 음악을 혐오했으나 루터는 음악적 재능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귀한 능력이라고 여겨 음악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다.

○ 목차
- 독일 역사의 기원
- 오토 왕조에서 잘리어 왕조까지
- 호엔슈타우펜 왕조와 중세 말의 독일
- 종교 개혁
- 반동 종교 개혁과 30년 전쟁
- 18세기
- 개혁, 복고, 반동
- 독일의 통일
- 독일 제국
- 바이마르 공화국
- 국가사회주의 독일
- 1945년 이후의 독일
- 독일의 재통일
○ 저자소개 : 마틴 키친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사학과 교수. 근대 독일과 제국주의, 파시즘,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국제 관계 등 폭넓은 연구를 통해 많은 저서를 발표했으며 인문학장상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캐나다 왕립 학회와 왕립 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제국과 그 이후 대영 제국과 영연방 국가의 사회사>,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나치독일>, <불길 속의 세계 유럽과 아시아의 제2차 세계 대전 약사>, <양차 세계 대전 사이의 유럽>, <냉전의 기원> 등이 있다.
– 역자: 유정희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독일근대사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바이마르 독일의 여성 봉급 생활자’, ‘독일 부르주아지의 재해석’, ‘나치 독일의 가족과 인구정책’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18세기 독일의 인문학자들은 게르마니아 지역을 서유럽과는 다른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곳이라고 믿었다. -19쪽
하인리히 3세는 즉위 초기에 동쪽 지역 문제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1034년 폴란드의 공작 미즈코 2세가 사망하자 그것은 혼란에 빠졌고 공작의 미망인과 아들 카시미르는 독일로 피신했다. 1038년 헝가리의 왕 이슈트반 1세가 세상을 떠나자 헝가리에서도 폴란드에서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50쪽
1124년 영국의 헨리 1세와 동맹을 맺은 하인리히 5세는 프랑스와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왕위를 물려받은 예정이던 윌리엄 왕자가 탄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윌리엄의 쌍둥이 누이인 하인리히의 아내가 영국 왕실의 계승자가 되었다. -64쪽
중세 초 유럽에는 위생 관념이 없었다. 옷이 한 벌뿐인 농부는 옷을 빨 수도 없었다. 성직자들은 목욕을 나쁜 것으로 보았다. … 기사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목욕하고 옷은 낡아 찢어질 때까지 빨지 않았다고 한다. -90쪽
독일의 회화가 16세기 중반부터 급격하게 퇴조하게 된 주요 요인은 경제적인 면 때문이다. … 음악은 종교 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칼뱅은 음악이 성욕을 자극한다고 생각하여 음악을 혐오했으나 루터는 음악적 재능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귀한 능력이라고 여겨 음악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다. -122쪽

18세기에는 출산율이 크게 증가했다. 여성들이 매우 어린 나이에 결혼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가임 기간이 상당히 길어졌던 것이다. …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미혼모를 대중들 앞에서 매질하는 엄한 벌을 내림에도 불구하고 사생아 출산율이 매우 높았다. -153쪽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빌헬름 1세가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가슈타인으로 직접 찾아가 2주 후 열릴 예정인 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빌헬름 1세와 함께 가슈타인에 머물던 비스마르크는 왕에게 그것을 거절하라고 설득했으나 왕은 망설였다. … 모욕을 느낀 왕은 비스마르크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 전역에 연방 의회 의원들에 대한 보통 선거를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오스트리아에 대응했다. 2월까지만 해도 지독한 보수주의자였던 인물이 8월이 되자 1848년의 자유주의자로 변신했던 것이다. -226쪽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의 성공적인 선전 무대였다. 1933년 나치 정권을 올림픽을 유치해 전 세계에 새로운 독일을 보여 주고 싶어했다. 거친 폭력과 인종 차별은 매력적이며 활기 넘치는 국제 도시 베를린의 면모 뒤에 교묘히 감추어졌다. 독일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이들이 사는 나라요, 번영하고 사회 복지 제도가 잘된 나라로 비쳤다. 경기는 매우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경기장과 숙소는 화려했고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국가사회주의는 뒷전으로 물러났고 정치 구호들은 사라졌으며 흔하던 스바스티카도 보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잠시나마 안도했다.

웅장한 개막식 또한 나치의 정치적 승리였다. 몇 달전 히틀러는 라인을 점령했으나 프랑스 팀은 경기장에 입장하며 히틀러에게 인사했다. 각국 왕들과 왕실 관계자들, 대통령들, 정치인들은 경기보다는 독일의 위대한 구원자 히틀러를 보기 위해 왔다. 제3제국 고위 관리들은 외국 귀빈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괴벨스는 1,000영 명을 초청해 이탈리아식 만찬을 베풀었다. 괴링은 내무부 정원에 18세기 농촌의 완벽한 모형을 만들어 손님들과 몇 시간씩 말을 탔고, 저녁엔 전체가 크림색인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는 영국 주재 독일 대사임명을 자축하기 위해 달렘의 별장에 700여 명을 초대하기도 있다.
그러나 연회는 나치 관료들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로 끌어올려 주었다. 그들은 연회를 통해 귀족들과 금융인, 실업가, 영화 배우, 운동 선수. 신흥 재력가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대해 뛰어난 글을 남긴 독일 주재 프랑스 대사 프랑수아 퐁세는 이렇게 술회했다.
“그렇게 예의 바르고 멋진 사람들이 살인자들이자 고문관이며 전쟁광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히틀러는 올림픽 내내 평화를 사랑하고 국제 정세를 잘 이해하는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군대와 산업계에 43년 이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올림픽 경기는 나치 독일의 승리였다. 독일 팀은 금메달 33개, 은메달 26개, 동메달 30개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이 2위를 했다. 이변은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영국이 캐나다를 누르고 우승한 것이었다. 가장 큰 충격은 베를린 올림픽 영웅이 금메달 3개를 획득한 흑인 제시 오언스라는 것이었다. 오언스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우승한 계주 팀에 속했다. 그는 천재적 재능과 밝은 인품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나치 인종주의자들은 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히틀러도 오언스와 악수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인종주의 성향을 고수했다. — 306쪽

○ 출판사 제공
“오늘날 독일인들의 농담에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행운이 있다. 하나는 늦게 태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서독에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히틀러에게 악용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과 참담한 동독 역사의 희생물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이 행운이라는 말로 탈바꿈을 했으리라.
- 씁쓸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독일의 역사.
독일의 역사는 한마디로 모순적이고 어둡다.
국내외 도서관과 서점의 독일사 분야에서도 히틀러와 제3제국에 대한 서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만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철저한 나라도 없으련만 나치의 그림자는 여전히 독일의 역사에 깊이 드리워져 있으며 독일인들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독일이 그러한 역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건 왜일까?

- 정체성조차 없었던 독일
유럽의 빈민층인 게르만족으로 골격을 갖춘 독일은 생성부터가 다른 라틴계들이 지배하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와는 사뭇 달랐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독일은 오랫동안 퍼즐 조각을 붙여 놓은 것같이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따라서 제국은 느슨한 연합체였고 제국을 대표하는 수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 내에는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해 왔다.
따라서 “누가 독일인인가?” “어느 지역을 독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늘 독일인들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히틀러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독일이라는 우수한 ‘인종 사회’에서 이질적이고 열등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하는 것으로 보고,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대참사를 저질렀던 것이다.

- 독일 정신, 강한 민족성
계몽사상에 기반을 둔 서구의 사고방식과 달리 독일인들은 무인 정신을 숭배하며 관념론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근대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인해 독일 사회에는 권위주의와 군국주의, 더 나아가서는 나치즘이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 경제와 정치의 불협화음
독일은 근대적인 경제 발전이 근대적인 정치 체제나 사회적 가치관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러면 왜 독일에서는 경제적인 근대화가 근대적인 사회 규범과 정체 체제를 동반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바로 근대화를 이루어간 주체가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이들이 아니라 정부 관리였고, 독일의 근대화는 국가가 주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에 기존의 전근대적인 지배층을 해체시키지 못한 불완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일의 경제는 당시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인 영국에 버금가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나, 독일의 정치는 민주적인 체제가 그 뿌리를 같이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역사 시리즈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의 하나인『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독일사』는 독일 역사의 이러한 주요 쟁점들을 하나씩 짚어 나가면서 독일의 복잡한 과거를 일목 요연하게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사진과 그림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딱딱하고 지루한 독일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근대 독일과 제국주의, 파시즘,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국제 관계 등 폭넓은 연구를 한 저자 마틴 키친 (Martin Kitchen)은 이 책을 통해서 “루터와 구텐베르크 그리고 바흐와 괴테와 같은 지적이고 교양 있는 인물들을 길러 낸 나라가 왜 국민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는 그렇게 심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국가사회주의에 무릎을 꿇었던 나라가 어떻게 다시 유럽 연합을 만들어 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는지 등 독일 역사에 얽히고설켜 있는 모순점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 특징
1) 독일 역사의 시작부터 통독까지의 독일 역사 전반을 서술하고 있다.
국내외 도서관이나 서점을 둘러보아도 통사적으로 씌어진 독일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로 사건 나열 위주의 역사서술이거나 아니면 특정한 시기나 주제에 국한된 역사책이 즐비하다. 이 책은 한 학자에 의해 단행본 형식으로 쓰여진 독일 통사(通史)로, 독일이 가지고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와 독일의 현대사를 하나의 정리된 관점에 의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역사학 분야에서 명망을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으로, 깊이와 신뢰가 있는 내용이라는 점을 자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자 마틴 키친이 독일인이 아닌 까닭에 독일이라는 나라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2) 독일 민족국가의 성립 및 전개 과정 등 독일의 실체를 독일 역사 속에서 수미일관되게 추적하고 있다.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갖지 못했고 또 현대에 와서는 뒤늦게 형성된 독일 민족국가가 심한 굴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을 비교적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3) 독일 생성 이전의 유럽 고대사와 중세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있으며 독일 제국이 생성된 이래로는 동유럽과 서유럽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서술하고 있다.
유럽 통합의 이념과 실제가 이미 상당한 구체성을 띤 오늘날의 상황에서 독일의 역사를 유럽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4) 인물들의 활약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독일이 여러 차례의 파국과 질곡을 통해 이루어진 나라인만큼 그 파란을 잠재우고 혁명을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역사 안에서 그 인물들의 활약상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5) 특정 주제나 시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독일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하되, 정치사적 연대기뿐만 아니라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를 골고루 조명하고 있다.
독일 역사 자체가 정치사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국한하지 않고 독일의 사회사, 문화사, 경제사를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6) 200여 컷 이상 되는 컬러 사진과 그림, 본문과 관련된 지도로 역사적 내용에 이해를 돕는다.
책 전체를 수놓은 컬러 사진은 독일이라는 나라를 마치 옆에서 들여다보는 것같이 사실감을 더해 준다. 그리고 역사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독일 역사에 생경한 사람들에게는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7) 중요한 인물과 장소, 사건, 문학 작품 그리고 주제들을 선별하여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독일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나 장소, 사건, 사상을 특이한 형식으로 조명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