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해석학자, 폴 리쾨르 (Paul Ricœur, 1913 ~ 2005)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해석학자, 그리스도교 사상가. 1913년 프랑스 개혁교회 가정에서 태어나 렌 대학교를 졸업한 후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가브리엘 마르셀의 ‘금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5년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수용 기간 중 후설의 『이념들』 Ideen을 번역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가르치며 박사 학위를 준비하다 1950년 소르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소르본 대학교 교수, 낭테르 대학교 교수를 거쳐 1970년 시카고 대학교로 옮겨 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1991년까지 가르쳤다. 2005년 파리 근교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이데거, 가다머와 함께 해석학의 주요 전통을 형성한 학자로 평가받으며 의미를 회복하려는 해석학과 표면적 의미를 의심하는 해석학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을 자신의 방법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살아있는 은유』 La Métaphore vive와 3권짜리 『시간과 이야기』 Temps et récit를 통해 은유와 서사 이론에 기여했으며 『악의 상징』 Symbolique du mal에서는 인간이 악의 문제를 이해하려 해온 방식을 탐구하기도 했다.
주요 저술로 『악의 상징』 La Symbolique du mal (문학과지성사), 『해석에 대하여』 De l’interprétation (인간사랑), 『해석의 갈등』 Le Conflit des interprétations (한길사), 『텍스트에서 행동으로』 Du texte à l’action (아카넷), 『시간과 이야기』 Temps et récit (전3권, 문학과지성사), 『타자로서 자기 자신』 Soi-même comme un autre (동문선) 등이 있다.
“해석학은 신탁이나 기적을 풀어내는 전문 기술자가 도맡을 일이 아니다. 무슨 ‘푸는 재주’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해석은 ‘이해’라고 하는 큰 문제를 따진다. 뛰어난 해석치고 신화나 우의, 은유 또는 유비 등 당시에 사용하던 이해방식을 빌리지 않은 경우는 없다. 이처럼 해석 (본문의 주석)이 이해 (기호의 뜻을 밝힘)에 달려 있다는 것은 옛날부터 인정되어 왔다. 해석학이라는 낱말 속에 당연히 그 점이 들어 있었다. 서양의 해석학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페리 헤르메니아스’라는 말에서 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헤르메네이아’는 알레고리에 제한되지 않고 뜻이 있는 모든 담론에 적용되었다.” 『해석의 갈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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