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의 신학논단

귀환 이후, 다시 떠나는 오디세우스
웅장한 서사시로 전해 내려온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가 영화로 다시 태어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죽음과 유혹, 표류와 고난을 지나 마침내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다. 오랜 세월 자신을 기다린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고,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자신의 집을 차지한 아내를 괴롭힌 구혼자들을 처단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의 긴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디세이아』 제11권에서 저승에서 만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에게 귀환 이후에도 다시 떠나야 할 길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구혼자들을 처단한 뒤 노를 어깨에 메고,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땅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 두 번째 여행을 실제로 그려내지 않고 오디세우스에게 남겨진 미래의 예언으로 열어 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The Odyssey》는 호메로스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예언을 마지막 장면으로 가져온다.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이타카를 떠나 서쪽으로 항해하고 아들 텔레마코스가 새로운 시대를 이어가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 페넬로페는 말한다. “문명은 다시 일어설 거예요.” 그러자 오디세우스의 마지막 말이 이어진다. “어둠에 잠긴 세상 위로 새로운 새벽은 다시 밝아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은 또다시 잊힐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희망의 응답이 아니다. 인간이 과거의 전쟁과 비극을 잊을 때 그것을 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경고이며, 기억을 통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미래에 대한 책임의 고백이기도 하다.
첫 번째 여행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 길에는 전쟁과 승리, 생존과 귀환이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첫 여행은 전쟁과 생존을 지나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었다. 그러나 귀환 뒤에는 구혼자들에 대한 복수가 시작되고, 그 복수는 다시 유가족들의 보복을 불러온다. 호메로스의 책에서는 또 다른 피의 복수가 시작되려는 순간, 제우스의 딸이자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개입해 싸움을 멈추게 한다. 호메로스는 이를 통해 진정한 영웅의 마지막 과제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에서 책 11권에서 가져온 마지막의 떠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이제 그는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전사가 아니다. 자신이 지나온 전쟁과 죽음과 폭력의 기억을 짊어지고 떠나는 사람이다. 젊은 오디세우스의 여행에는 명예가 있었다면, 늙은 오디세우스의 여행에는 기억과 책임이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무엇을 이루고 얻을 것인가를 향해 나아갔지만, 말년의 그는 자신이 지나온 전쟁과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며 길을 떠난다.
어쩌면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여행도 이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평생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여행한다. 성공이라는 항구를 향해 나아가고, 온갖 지혜를 발휘하며 가정과 재력, 명예를 되찾기 위해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 우리 역시 그렇게 어렵게 얻은 것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도착하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자신이 차지했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을 내려놓고,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다시 걸어가야 할 때가 온다. 그것은 때로 은퇴의 모습으로, 때로 죽음이나 이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항로에서 수많은 떠남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가 아들에게 미래를 넘겨주고 다시 떠나는 모습이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과거를 버리고 떠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억하기 때문에 떠난다.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기억하고, 자신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을 기억한다. 오디세우스의 다시 떠남은 또 하나의 모험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화해하고, 자신 안에 남아 있는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떠나며,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는 여행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이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내려놓고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는 순례자의 여정과도 닮아 있다.
제11권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에게 귀환 이후에도 “다시 떠나야 할 길”이 남아 있다고 예언한다. 그러나 『오디세이아』는 제24권에서 복수의 악순환을 멈추고 화해와 평화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영화는 그 예언을 이어 받아 귀환과 복수, 화해와 평화 이후의 ‘다시 떠남’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 놓는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깊은 여행은 먼 곳에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행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내려놓고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다시 떠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긴 여행 끝에 우리가 마침내 도착해야 할 곳은 어느 도시나 왕좌가 아니라 화해와 평화이며, 과거의 상처와 복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내적 자유, 그 길은 새로운 자신을 재발견해 가는 순례의 길이다.

이상택 목사
(아이오나 콜럼바 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