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대제 (Friedrich II, 1712 ~ 1786)의 ‘반마키아벨리론’ (Anti-Machiavel)
《반마키아벨리론 (Anti-Machiavel)》은 프로이센 왕이자 볼테르 후원자인 프리드리히 대제 (독: Friedrich II, 1712년 1월 24일 ~ 1786년 8월 17일)의 18세기 수필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16세기 책인 군주론에 대한 반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프리드리히가 왕이 된 지 몇 달 후인 1740년 9월에 처음 출판되었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이 작품은 격동하고 반항적인 젊음 이후, 그리고 프로이센의 왕위 계승 직전 프리드리히의 인생의 전환점에서 제작되었다. 물론 프레데릭은 오래 전에 마키아벨리를 읽었다.
1730년대 후반에 그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볼테르와의 제휴와 임박한 순위 변경이 프로젝트에 가장 확실히 기여했다.
프리드리히가 1738년 초에 이 프로젝트에 대해 반추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볼테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다.
그의 간략한 작업의 초안은 1739년 말까지 완성되었다.
프리드리히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국가주의에 대한 부분적이고 편향된 견해를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는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정치가라는 계몽주의의 이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리드리히는 왕이 신하의 건강과 번영을 유지하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마키아벨리는 왕의 사악한 행동이 그의 신하들에 의해 받아들여짐에 따라 재앙으로 끝난 왕족의 책략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리고 첫 번째 아이디어를 지지하기 위해 프리드리히는 마키아벨리가 그가 묘사하고 칭찬하는 수많은 악의적 요인의 나쁜 끝을 무시하거나 경시한 수많은 사례를 지적한다.

○ 개관
반마키아벨리론 (Anti-Machiavel)》은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 (프리드리히 대왕)가 세자 시절에 집필하여 왕위 계승 직후인 1740년 9월에 출판한 정치 철학 수필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서인 《군주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군주의 도덕적 의무와 신민에 대한 봉사를 강조한 계몽주의적 군주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집필 동기
프로이센의 왕세자 시절 (훗날 프리드리히 대제)이 1740년에 발표한 《반마키아벨리론 (Anti-Machiavel)》의 핵심 집필 동기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 정치관을 비판하고, 계몽주의에 기반한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군주관’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집필 동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반박과 도덕적 군주관 정립권모술수 비판: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현실 정치론을 ‘지배자의 폭거’로 규정했다.
.국가 제일의 공복: 군주는 군림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국가와 백성에게 봉사하는 ‘최고의 공복(지방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와 도덕의 결합: 정치는 정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법치에 기반해야 함을 강조했다.
– 집필 배경과 볼테르와의 협력
인생의 전환점: 격동의 청년기를 보낸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를 앞두고 군주의 자질과 국가 통치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던 시기에 작성되었다.
철학자와의 교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와의 깊은 친분이 집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프리드리히가 프랑스어로 초안을 쓰면 볼테르가 이를 교정하고 출판을 도왔다.
– 핵심 사상: “군주는 국가 제일의 공복”
도덕과 정치의 결합: 마키아벨리가 “목적을 위해 악행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프리드리히 2세는 정치와 도덕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맞섰다.
신민을 위한 봉사: 군주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자가 아니라,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국가 제일의 공복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복리의 우선: 군주 개인의 야망이나 영광을 위한 무분별한 전쟁을 비판하고, 세금 경감과 법적 정의를 통한 공공의 이익 실현을 주장했다.
– 역사적 의의와 ‘역설’
계몽전제군주의 모델: 이 책에 담긴 철학은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한 후 단행한 사법제도 개선, 종교적 관용 정책, 산업 육성 등 다양한 계몽주의적 개혁의 모태가 되었다.
현실 정치에서의 모순: 역설적이게도 프리드리히 2세는 왕위에 오른 후 프로이센의 생존과 영토 확장을 위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후대의 역사가들로부터 “글은 반 (反) 마키아벨리로 쓰고, 행동은 가장 철저한 마키아벨리주의자처럼 했다”는 비판과 평가를 동시에 받기도 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