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관심의 편향 (사랑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
신문을 보던 남편이 아내에게 말을 건넵니다. “성관계가 사람을 젊어지게 한대. 30분이면 4킬로미터를 뛰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네. 또 7~8년 젊어 보이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성관계를 두 배 더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던 아내는 자신이 읽고 있던 책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한 구절을 보여줍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샤워나 목욕이 섹스보다 더 큰 기분 전환 효과를 준다고 해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정보를 접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관심의 편향 (Attentional Bias)’입니다. 사람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관심 있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체스 선수들의 시선 움직임을 추적했습니다. 선수들이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실제로는 눈이 익숙한 패턴과 기존 전략이 있는 지점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익숙한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은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자신이 익숙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의 편향은 부부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남편은 성관계가 주는 친밀감과 만족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그것이 관계의 중요한 요소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아내는 일상의 피로 속에서 작은 휴식과 재충전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출산 이후 육아와 가사에 지친 아내에게는 ‘쉼’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서로의 필요가 다르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관점만을 고집하는 데 있습니다. 남편은 “왜 나의 필요를 이해해주지 않을까”라는 서운함을 느끼고, 아내는 “이렇게 힘든데 그것을 모른다니”라는 억울함을 느낍니다. 결국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 치료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십시오. 아내들이여, 남편의 필요에 민감해지십시오.”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상대방의 행동 뒤에 있는 ‘필요’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표면적인 갈등만을 반복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때로는 자녀에게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내의 관심이 온전히 아이에게만 향해 있을 때, 자신이 관계에서 밀려난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어떻게 아이를 질투하느냐”고 비난하기보다, “지금 내 남편의 어떤 필요가 채워지지 않고 있는가”를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 역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내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아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육아와 가사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지속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 노동입니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관계적 요구도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 남편은 의도적으로 ‘자유의 시간’을 선물해야 합니다.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고 어색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선택이 관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됩니다. 어떤 아버지들은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양육에서 한 발 물러서 있지만, 그 선택이 오히려 아내를 더 지치게 만들고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편향된 관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의식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시선을 둘 것인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에 따라 관계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상대방과 연결되지 않는 관심에 머물러 있다면, 부부 관계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관심과 필요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끈기가 있다면, 관계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자유 시간을 허락하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남편의 필요에도 더 따뜻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남편 역시 자신의 필요를 이해해주는 아내를 통해 기쁨을 경험하며, 더 기꺼이 아내의 쉼을 지지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자주 부르던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은 움켜쥐고 잡으려 하면 작아지고, 나누고 흘려보내면 커진다.”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붙잡으려 할수록 사랑은 점점 좁아지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나누려 할 때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행복한 부부 관계는 거창한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나의 관심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 그리고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편향에서 한 걸음 벗어나 배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서로의 관심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자라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겉은 괜찮아 보여도 마음은 아플 수 있다
사람의 정신 건강을 판단할 때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기준으로 삼는다. 단정한 옷차림, 또렷한 눈맞춤, 안정된 행동. 이런 요소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단서다. 우리는 그 단서를 통해 상대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때로는 안심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판단이 너무 쉽게 ‘결론’이 된다는 데 있다. 겉이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내면도 괜찮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신호를 놓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깊은 혼란과 고통을 견디고 있다. 반대로 외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은 오히려 단단하고 안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결국 겉모습은 하나의 ‘참고 자료’일 뿐, 사람의 마음 전체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이 정도면 알아주겠지”, “이렇게 하면 전해지겠지”라고 기대하지만, 마음은 추측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기대는 쉽게 오해를 낳고, 관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특히 다문화 사회에서는 세대와 문화의 차이까지 더해져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선한 의도가 오히려 상처로 돌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청년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정신과 약의 영향으로 일상이 꿈속처럼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든 상태였다. 몸은 무겁고 집중은 어려웠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그를 다시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기대와 책임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루를 버티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결국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한 후에야 비로소 이해받을 수 있었다. “하루가 꿈속 같아요”라는 한마디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마음을 드러낸 중요한 신호였다.
이처럼 겉모습에 근거한 판단은 현실과 어긋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단서’로 보되 ‘결론’으로 삼지 않는 태도다. 이유 없이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관계에서 물러나고,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는 그 신호를 서둘러 해석하기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가족 안에서도 이런 신호는 자주 나타난다. 어느 날 딸이 사람들을 피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는 천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함께하던 친구들과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 그리고 아직 새로운 관계를 찾지 못한 외로움이 그 안에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감정의 결과였다.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짧게 통화를 마치려던 순간, 목소리에 담긴 무거움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신호로 다가왔다. 잠시 멈추고 이야기를 더 나누자, 그 무게는 점차 풀렸고 통화가 끝날 즈음에는 한결 밝아진 기색이 느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은 쌓이기 쉽고, 그것은 누군가가 들어줄 때 비로소 흘러나온다. 마음은 해결책보다 ‘들어주는 시간’을 먼저 필요로 한다.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 안에는 외로움과 불안, 좌절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정을 쉽게 판단하기보다, 그것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도 특별히 약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기에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조언보다 ‘함께 머물러 주는 태도’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충분히 들려졌다고 느낄 때, 스스로 회복할 힘을 다시 찾는다. 충분히 듣지 않은 상태에서 건네는 말은 쉽게 공허해지지만, 이해받고 있다는 경험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내 기준’으로 상대를 해석하기 쉽다. “나는 이렇게 느끼니까 너도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은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깊이를 잃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고 표현된다. 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출발점이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필요한 것은 지시가 아니라 이해다. “왜 그랬어?”라는 질문보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라는 질문이 더 깊은 대화를 이끈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바꾸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다.
결국 관계의 깊이는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는가에 달려 있다. 겉모습은 시작일 뿐 결론이 아니다. 마음은 묻고, 듣고,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겉은 괜찮아 보여도 마음은 아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천천히 판단하고, 더 깊이 물어야 하며, 더 오래 들어야 한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