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땅속 생물 이야기(1)
필자의 고향인 여주는 남한강이 관통하며 강변 좌우로 기름진 충적토의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는 지역이다. 인류의 문명이 강가에서 꽃 피웠듯 남한강 주변에도 역사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1976년에는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에서 기원전 500~6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탄화된 볍씨가 발굴돼서 학계[學界]의 비상한 관심과 조명을 받은바 있다. 서울대박물관 고고학팀은 1972-1976년까지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의 청동기 시대 유적지 조사사업을 펼친바 있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전 500~600년의 탄화된 볍씨가 발굴됐으며, 이 “여주 흔암리볍씨”는 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다. 또한 쌀 수확도구인 크기 14㎝ 가량의 반월형석도(청동기시대에 곡식의 낟알을 거두어들이는데 쓰던 도구) 5개도 발굴했다. 당시 주거지에서 발굴된 무늬없는 토기 안에서 새까맣게 엉켜 있는 곡식 낱알이 발견됐다. 채취된 곡물은 감정결과 쌀, 겉보리, 조 임이 판명됐고 이중에서 쌀의 품종은 크기가 작은(4.0×2.5㎜) 미발달 상태의 북방계 종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수 천년 전부터 이 고장에서 농업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강변의 비옥한 충적토와 높은 산이 별로 없어서 일조시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여주쌀은 진상미로 바쳐졌으며 여주는 이를 홍보하며 타지역 쌀 보다 값을 비싸게 팔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농사는 땅으로부터 결실을 얻게 되는 것이기에 여주쌀이 뛰어나다면 여주의 토질이 우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
좋은 흙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고 좋아 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흙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고 좋아 지는 것이 아니다. 흙은 암석으로부터 날씨와 식물의 집요한 공격 속에 느리고 고된 과정을 겪고 만들어진다. 흙이 1센티미터 쌓이는데 대략 200년에서 400년은 걸린다. 좋고 건강한 흙은 무기물 세계와 유기물 세계가 융합해야 탄생된다. 초창기 지구에는 흙도 식물도 없었지만, 암석과 비, 바람, 햇빛, 얼음의 공동 작업으로 최초의 광물성 흙이 탄생했다.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에 최초 개척자가 죽어 영양소를 더하게 되고, 이후 새로 태어난 세대의 유산이 된다. 이것을 먹고 사는 식물과 식물의 뿌리 그리고 이들과 공생하는 다양한 생물들의 도움으로 흙은 더욱 빠르게 형성 되는 것이다. 지구의 생산자[Producer]는 식물이다. 식물은 햇빛과 무기물질로 영양분을 만들어 살아가고 자손을 번식한다. 질소는 우리 공기의 4분의 3을 차지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생물은 거의 없었다. 초창기 지구에서 번개에 의해 생긴 질소를 식물이 이용하였지만, 이후 질소를 이용할 수 있는 세균과 방선균이 나타나 질소를 고정하게 되면서부터 식물뿐만 아니라 그것을 먹는 동식물들이 더욱 번성하게 된다. 식물들은 질소를 얻기 위해 세균들과 공생하고, 식물뿌리는 균사와 결합해 당과 에너지를 주는 대신에 질소와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물과 무기물을 얻는다. 식물뿌리는 자라면서 다양한 성질의 흙속을 여행한다. 호밀은 넉 달 동안 뿌리가 1500개, 600킬로미터이상 되는 길이로 자라고, 뿌리털까지 포함하면 1만 킬로미터가 넘고, 접촉한 흙도 650제곱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식물은 흙속에서 무기물을 캐내어 땅 위에 사는 동물들이 18가지 영양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식물은 흙에 있는 영양소를 먹으며 살아가고, 죽은 뒤에는 자신의 모든 원소를 흙에게 돌려준다. 이 과정에 분해자[Decomposer]가 개입한다. 그 중 토양의 미생물과 동물들이 생물의 잔해들을 단순한 화합물로 분해하여 유기물을 흙에 보탠다. 분해자 중에는 다른 분해자가 소화시킨 유기물을 더 좋아하는 녀석도 있어, 유기물은 수 차례 뱃[배-abdomen]속을 순례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분해자의 똥 분해자, 즉 분생 생물은 다른 토양 동물들이 배출한 똥을 소화시키고, 이렇게 더 잘 소화된 부식질은 흙에 있는 동안 흙의 특성에 큰 영향을 준다. 부식질은 신선한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중간 단계로서 칼슘이나 칼륨 같은 식물 생장에 꼭 필요한 여러 양이온군과 결합해서 이들이 흙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는 구실을 함으로써 흙의 성질에 영향을 준다.
생태계[Ecosystem]에서 무기환경[無機環境],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다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중에 소비자이자 분해자에 해당하는 땅속 생물에 관해서 살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생산자인 식물과 먹이그물로 연결된 생물들은 흙 1제곱미터에서도 그야말로 소우주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 생물들을 동물과 원생동물들 세균과 방선균 층으로 개체수의 크기별로 배열하면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일리노이주립대학 곤충학과 교수인 제임스 B. 나르디(James B. Nardi)는 그의 책 ‘흙을 살리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들’에서 흙 1제곱미터의 소우주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척추동물 한 마리, 달팽이와 민달팽이 100마리, 애지렁이와 지렁이 3000마리, 곤충과 다지류, 거미, 좀붙이 5000마리, 윤형동물과 완보동물 1만 마리, 톡토기 5만 마리, 진드기 10만 마리, 선형동물 500만 마리, 원생동물 100억 마리, 세균과 방선균 10조 마리가 흙 1제곱미터에 살고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우주가 아니다. 흙속에 사는 생물들의 눈에는 흙 1제곱미터 속이 우주이다. 넓디넓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나 1mm도 안 되는 작은 미생물이 땅속에서 그 주변을 살피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생태계의 구성요소가 각자 제 역할을 하며 평형이 잘 유지되어야 하는데 최종소비자에 해당하는 인간이 균형을 깨며 공멸의 위기를 불러 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선충(nematode)
생명체가 존귀한줄 모르고 함부로 대하며 학대 하던 어린시절의 악동 짓이 늦게서야 후회된다. 철이 난 것일까? 풀 밭에 작은 벌레가 바삐 움직이는 것만 봐도 대견스럽고 행여나 다치지 않을까 조심하기에 이르렀다. 필자의 마을 주변의 숲속이며 풀밭, 땅속에서 크고 작은 온갖 생명체가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생태계가 균형을 유지 하는 환경이라는 생각에 포근한 감이 든다. 집 앞의 숲 속만 해도 개구리가 있고, 뱀이 눈에 뜨이며, 밤에는 서쪽새가 울고, 호주의 고슴도치인 에키드나, 야생칠면조, 수많은 새떼들이 흔하게 눈에 뜨이니 자연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도 땅 속이 살아 있다. 며칠 전 호박 심을 구덩이를 파는데 지렁이가 쏟아져 나오고 살이 포동포동 찐 굼벵이까지 나와서 흐믓해 하며 조심스럽게 땅 속으로 밀어 넣어 준 일이 있다. 땅속 생물이라면 지렁이를 연상하며 지렁이가 토양환경을 바꾼다는 것쯤은 알고 들었을 것이지만 지렁이 말고도 온갖 생물이 땅속에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뉴욕에 있는 코넬대의 생태학자 데이빗 피멘텔(David Pimentel)에 따르면, 비옥한 흙 1㏊(가로세로 100m)에는 지렁이와 절지동물 각 1000㎏, 원생동물 150㎏, 조류 150㎏, 박테리아 1700㎏, 균류 2700㎏가 들어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생물 종류의 분포량을 무게로 표시하는 것은 땅속 생물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관찰하면 건전한 땅속은 물속이나 지상 못지않게 생물 집단의 서식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지렁이는 워낙 커서 누구의 눈에나 쉽게 뜨이지만 선충처럼 작은 미생물은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런 선충이 목장 흙 1㎡에 1천만 마리가 산다고 한다. 선충(nematode)은 실모양의 벌레라는 뜻으로 선충으로 분류되는 벌레는 수천 종에 이른다. 약 40%는 토양에 살고, 40%는 수중에 나머지 10%씩들은 동물이나 식물에 기생하며 산다. 선충[線蟲]이라고 하면 잘 모를 것이지만 회충에 관해서는 웬만큼 알려져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충 때문에 한국인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서 국가적인 사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기도 했었다. 회충도 선충류에 속한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회충[蛔蟲]은 선형동물의 회충과에 속하며 학명은 Ascaris lumbricoides 이다. 그런데 선형동물이 회충처럼 사람이나 동물 몸에 기생하는 것도 있지만 수중이나 흙속에서 많이 산다. 선형동물의 몸은 원통형으로 가늘고 길며, 체절이 없다. 몸 표면은 키틴질로 덮여 있는데, 보통 매끈하거나 가시 또는 사마귀 모양의 돌기, 주름이 있거나 곰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몸에 있는 근육은 종주근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종주근의 수축ㆍ이완 작용으로 파동 모양의 운동을 한다. 소화관은 몸을 따라 길게 뻗어 있으며, 끝 부분에는 항문이 있다.
측선관이라는 기관으로 배설을 하며, 호흡기와 순환기가 없다. 선형동물도 워낙 종류가 많아서 그 크기를 일률적으로 말 할 수는 없으나 1mm미만인 것이 많으니 사람 눈에 뜨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작디작은 생명체지만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은 다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캄캄한 땅속에서도 원하는 곳을 거침없이 비집고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섭취하고 성장하며 자자손손 번식하니 무엇이 부러우랴… 이들 선형동물 족속들은 땅속뿐 아니라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땅속처럼 여기는지 생체속을 유유히 비집고 다닌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