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선각자 임세흥 교장과 덴마크의 그룬트비히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서부터 해방 이후까지, 빈곤과 문맹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농민들을 계몽하고 농촌을 부흥시키려고 하였던 많은 선각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심훈의 소설인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이다. 소설 속에 채영신은 감리교 전도사이자 농촌 운동가였던 최영신(1909-1935)을 본보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최영신은 교육자이며 경기도 화성군 샘골(안산시 본오동)이라는 마을에서 봉사한 농촌운동가이다.
필자가 봉직하였던 여주 대신고등학교의 고 임세흥 교장(1905-1968)이 그와 같은 삶을 실천하다가 가신 분이다. 이분은 해방 전에 만주의 봉천(현재 심양)에서 중학교 교장 겸 식물연구소에서 약용식물을 연구를 하던 교육자겸 식물학자이다. 그는 여주 대신면 후포리에 성결교회에서 운영하던 사설학교를 인수하여 농업고등학교로 승격 시키며 농촌개혁의 역군을 길러내려고 헌신 하신 분이다.
그가 이상적인 모델로 삼은 것은 덴마크의 그룬트비히(Nikolaj Grundvig 1783-1872)이다. 성직자이고 교육자이며 시인이기도 하였던 그룬트비히는 덴마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국민 들이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국민고등학교라는 학교를 세워 ‘밖에서 잃은 것 안에서 찾자’고 외치며 교육과 농촌운동을 통해 덴마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룬트비히의 삼애운동(三愛運動)이라고 하여 알려진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자 둘째, 나라를 사랑하자 셋째, 자연(흙)을 사랑하자” 라는 구호가 있다. 임세흥 교장도 그룬트비히의 구호를 본받아 학교 교훈을 ‘하나님을 사랑하자. 우리 민족을 사랑하자. 우리 학교를 사랑하자’로 정하고 학생집회 시에는 이 교훈을 힘차게 외치게 하였다. 독실한 교회 장로이기도 하였던 그는 새벽마다 뒷산 마루에 꿇어 앉아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 소리를 기도하였으며 그의 기도 소리는 마을 사람들의 잠과 정신을 일깨우는 메시지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한의사이기도 하였던 그는 6.25전쟁이후 의료시설이 거의 없던 농촌에서 한방치료로 많은 질병을 치료 하였고 그 당시 전통적인 동의보감 등의 의존한 한방이 아니라 과학적인 약용식물 연구에 근거한 한방(韓方)으로 불임, 중풍, 등 난치병에 가까운 질병을 치료한 사례가 나오면서 유명 하여졌고 전국에서 약을 지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는 수시로 일반인들에게 약용식물 특강을 하여 각처에서 수강자들이 모여 들었으며 약용 식물 분류학자들에게도 크게 주목 받았었다. 그는 약용식물만 잘 개발하여도 개인은 물론 농촌도 일어 설 수 있다고 주장 하였으며 현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동양한의대에서 강의도 하고 자매결연을 통해 공동으로 약초연구를 하였다.
최근에 갖가지 건강에 좋다고 거론되고 있는 약용식물들을 보면 그 당시에 그가 내세웠던 식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달변가이기도 하였던 그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부자가 된 듯 하게 들뜨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갖춘 분이었다. 벼농사 위주의 농업을 탈피하고 특용작물을 통한 농업을 하여야 농촌이 발전하고 그 중에 약초 개발이야 말로 농촌을 부흥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의 자택에 앞뒤의 텃밭에는 약초로 꽉 차 있었는데 그가 서거한 후에 앞 밭에 심겨져 있던 두충(杜沖)이라는 나무가 탁월한 약효가 있다는 매스컴의 보도로 나무 수집가에게 고가로 매매 된 일이 있었다. 식물도 자원이고 농민들이 관심만 가지면 가난도 극복하고 살기 좋은 농촌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 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후생(厚生-행복하고 넉넉한 삶)이라는 특유한 교과 과정을 마련하고, 농촌사회의 의식 개혁, 특용작물재배, 덴마크의 협동조합 운영 등을 내용으로 한 강의를 하였으며 이 시간은 학생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임세흥 교장은 자신의 건강은 돌볼 겨를도 없이 1인 3,4역의 고된 나날을 보내다가 1968년 6월 급환으로 서거 하였다. 당시 임세흥 교장은 덴마크엘 가 본 일도 없었지만 그곳을 지상낙원의 나라라고 하였다. 최근의 나라별 행복지수 발표 하는 것을 보면 덴마크가 1-2위의 최상급의 행복한 나라로 평가 받는 것임에 틀림없다. 수 십 년 전에 다른 나라가 농업을 팽개치고 공업이나 상업 등으로 경제 구조를 만들어 갈 때 농업을 주축으로 해서 나라를 일으키게 하였던 덴마크의 선각자들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실증 시킨 것이다. 한 치의 거짓이 통하지 않는 농업이 정직한 사회를 만들고 협동조합의 상부상조 정신이 갈등이 없는 평화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덴마크에서 모델을 찾으려고 한 선각자 임세흥 교장의 원대한 뜻을 새삼 되새겨 본다.
박광하 (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