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잡종강세가 넘치는 세상
150여 년 전에 멘델이 발견한 유전법칙은 고전유전학이 되었지만 그의 이론은 수정되지 않은 채 지금도 유효하다. 멘델은 완두콩 재배를 통해 완두콩의 형질을 나타내는 현상에서 이 위대한 법칙이 존재 한다는 것을 밝혀 낸 것이다. 1822년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 가난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이 일이 자연과학의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후 수도원의 작은 농장에서 완두콩을 재배하며 면밀한 관찰을 통해 일정한 법칙에 의해 완두의 여러 가지 형질이 유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면밀한 관찰은 과학지식생성에 기본적인 첫 걸음이다.
멘델은 관찰력이 타고난 것 같다. 관찰을 통해서 가설을 도출하고 가설이 타당한지를 실험을 통해서 확인하며 법칙과 이론을 확립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의 실험은 그 계획의 교묘함과 실험의 정확성, 자료 처리법이 탁월한 점, 논리가 명쾌한 점 등 생물학 사상 가장 뛰어난 실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멘델의 실험방법은 현재 과학학습시간에 ‘관찰→가설 설정→실험→법칙 수립’ 의 기본 패턴(pattern)을 통해 과학지식을 생성시키는 모델로 삼고 있다. 멘델은 흰 꽃만 피우는 순종 완두와 붉은 꽃만 피우는 완두를 교배시킨 씨를 심으면 완두콩이 모두 붉은 꽃만 피우게 되고, 키가 큰 완두와 작은 완두의 다음 대는 큰 완두만 나오는 것 등의 관찰 분석을 통해 우열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형질이 다른 두 품종의 교배에서 다음 대에 나타나는 형질을 우성이라고 하고 나타나지 않는 형질을 열성이라고 한 것이다.
당시의 멘델이 발견한 이 우열(優劣)법칙은 주목 받지 못 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과학자들도 멘델의 연구 결과가 부동의 법칙임을 확인하며 유전학의 원조로 재조명되기에 이르게 되었고, 육종학 확립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농업혁명의 맹아(萌芽)가 되었다. 멘델의 우열의 법칙에서 잡종 1대에 발현하는 형질이 인간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형질이 아니고 대립하는 형질을 누르고 나타나는 형질일 뿐이지만 이를 응용하는 육종학에서는 열매가 많이 달리는 형질, 맛이 좋은 형질, 병충해에 강한 형질, 꽃의 빛깔이 더 아름다운 형질 등 인간 구미에 맞게 잡종 1대를 만들어 응용하게 된 것이며 이를 잡종강세(雜種强勢)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열의 법칙이 확인되기 이전부터 잡종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였다. 암말과 수당나귀 사에서 태어난 노새는 생식 능력은 없지만 몸이 튼튼하여 아무것이나 잘 먹고 병에 걸리는 일이 적으며 당나귀는 키가 작지만 덩치가 말만 해서 일을 잘하니 잡종강세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잡종강세 육종법으로 종자를 생산하고 돼지 같은 가축에서도 잡종강세 육종법으로 육질이 우수한 돼지를 육성하여 양돈을 하고 있다. 꿀 채취 능력이 우수한 잡종 벌로 양봉을 하고, 양질의 누에고치를 짓는 잡종 누에가 육성되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교민들이 한국의 종묘상에서 구입해온 씨앗으로 텃밭 농사를 하는데 잡종강세를 이용한 1대 잡종 씨앗이라 1회용인 것을 모르고 텃밭에서 채종한 씨앗을 심었다가 낭패를 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인기 있는 청양고추씨도 제주산 토종 고추와 한국고추보다 훨씬 매운 태국산 고추의 1대 잡종이라 순수한 청양고추의 후손은 생겨 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잡종강세는 농업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문화 전반에 걸쳐 서도 그 위력을 발휘 하고 있다. Mobile phone은 수많은 IT(Information Technology)기술이 축적된 잡종강세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음악, 영화, 연극, 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잡종의 위력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게 되었다.
21세기를 하이테크(High-tech), 하이브리드(Hybrid) 시대라고도 표현한다. 하이브리드를 혼용, 잡종 등으로 번역되는데, IT의 거의 모두가 잡종이 이룬 업적이다. 잡종음악의 한국인 선구자 된 가수 임형주가 있다. 임형주는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팝(Pop)과 오페라(Opera)의 잡종 음악인 팝페라(Popera) 창법으로 불러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안겨준 일이 있다. 오페라에 대중적인 팝 스타일을 가미해 부름으로써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창법이며, 팝페라(Popera)는 잡종음악이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것이다. 세계의 인종도 순수한 단일 인종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우리나라도 백의민족, 단일 민족을 한민족의 긍지로 가르쳤으나 근거도 희박 할 뿐 더러 이제는 더 이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글로벌, 지구촌화 된 오늘날, 국제결혼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은 정책적으로 농촌의 노총각을 국제결혼으로 짝을 찾아주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정서는 국제결혼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동안 “튀기”라는 비속어로 국제결혼의 자녀들에게 차별과 조롱으로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으나 이제는 과감히 편협한 관념을 떨쳐 버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
멘델이 완두콩에서 발견한 우열의 법칙이 오늘날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잡종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을 부인 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여러 가지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세계 각처의 수많은 민족들이 어울려 살며 잡인종, 잡종문화, 잡종학문, 잡종기술의 우수성이 총집합한 결과로 보고 있다. 호주도 잡종천국이라고 봐야 한다. 인종이 그렇고 음식이, 의상이, 상점이 잡종으로 넘쳐난다. 잡종은 다양성의 발현이며 구각(舊殼)의 탈피(脫皮)이다. “우리가 남이가[사투리]?”의 관념으로 가득한 개인이나 집단일수록 구태의연(舊態依然) 후진성을 면하지 못 하게 되어 있다. 좁은 국토에서 지역주의는 우성인자의 발현이 아니라 열성인자의 누적으로 자멸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통일 독일은 현재 대통령과 수상이 동독 출신들이다. 독일의 대학은 교수 임용도 본교 출신은 타 대학을 거쳐 와야 채용 한다고 한다. 자기 것에 집착은 퇴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생물선생님이 한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학교 구내 이발관에 일본인 여자 이발사 있었는데 그 아들이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며 주먹깨나 쓰는 팔방미인(八方美人)의 상급생이었다. “000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F1(잡종1대)이기 때문에 저렇게 우수 한 것이다. 너희들도 결혼 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지역도 멀고 관련이 없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잘난 자식을 둘 수 있다.” 선생님은 선견지명(先見之明)하셨다.
박광하 (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