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메디치 스토리 : 부 · 패션 · 권력의 제국
크리스토퍼 하버트 / 생각의나무 / 2001.4.13
300년간 부와 권력의 중심에서 유럽을 움직인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전세계의 돈을 거머쥔 채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고 패션을 선도한 부자 가문, 메디치 가의 권력 이야기. 15세기부터 300여 년에 걸친 서구 유럽 문화가 장대하게 펼쳐진다. 본문은 먼저 지오반디 데 메디치로부터 민중의 지지와 상업 자본의 힘으로 피렌체 공화국의 수장이 된 국부 코지모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권력의 탄생 과정을 다룬다. 뒤이어 통풍 걸린 피에로로부터 위대한 로렌조의 시대까지 메디치 가 영광의 절정이자 피렌체의 황금시대 이야기가 펼쳐진다.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한 메디치 가가 18년 후 화려한 복귀하지만, 가스토네의 죽음 이후 역사 속으로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메디치 가의 권력 속에는 드라마와 유혈극, 로맨스와 미학이 함께 뒤얽혀 펼쳐진다. 거대한 권력, 눈부신 사치, 우아한 취미 그리고 장려한 추락까지 메디치 가의 스펫터클한 흥망성쇠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부록으로 건물과 예술 작품에 대한 주석 및 메디치 가의 계보도를 함께 실었다.

○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권력의 탄생 15세기
제1장 피렌체와 피렌체인들 …27
제2장 메디치 가의 등장 …43
제3장 알비찌 가의 적들 …58
제4장 추방자와 지배자 …73
제5장 대주교와 건축가들 …85
제6장 전쟁과 평화 …103
제7장 예술가와 애도가들 …116
제2부 위대한 메디치 1464~1492
제8장 통풍 걸린 피에로 …131
제9장 젊은 로렌조 …145
제10장 교황과 파찌 …162
제11장 피렌체의 구세자 …181
제12장 이탈리아 나침반의 바늘 …196
제13장 로렌조 : 후원자. 수집가. 시인 …206
제3부 메디치 드라마 1492~1537
제14장 피에로 디 로렌조 데 메디치와 페라라 출신의 수도자 …223
제15장 파문자 …239
제16장 메디치 가의 귀환 …256
제17장 파파 레오네! …273
제18장 로마로의 행진 …288
제19장 포위와 살해 …395
제4부 제국의 몰락 1537~1743
제20장 공작 코지모 1세 …327
제21장 코지모의 후계자들 …346
제22장 페르디난도 2세와 프랑스의 공주 …359
제23장 코지모 3세와 태공 페르디난도 …372
제24장 메디치 가의 최후 …383
부록
건물과 예술 작품에 대한 주
참고문헌
메디치 가 계보도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크리스토퍼 하버트 (Christopher Hibbert)
발표할 때마다 매우 흥미로운 역사 서술의 전범을 보여주는 드문 역사 저술가 크리스토퍼 히버트는 1924년 레스터셔에서 출생했으며 옥스퍼드의 래들리와 오리엘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보병장교로 참전해 두 번이나 부상당했으며 1945년에 전공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새로운 정치인New Statesman>은 그를 ‘전기작가중의 진주’라고 칭했으며, <타임즈 교육 부록The Times Educational Supplement>은 ‘아마도 우리 시대에서 가장 재능 있는 인기 역사가’일 것이라고 평했다.
극찬되는 그의 여러 저서에는 『라글란 공의 파멸』 (1962년 하이네만 문학상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 『윈저 궁정』 『찰스 디킨즈 만들기』 『런던: 도시의 전기』 『용이 일어나다』 『중국과 서양, 1793년-1911년』 『조지 4세』 『에드워드 7세: 초상화』 『인도 폭동: 1857년』 『프랑스 혁명』 『새뮤얼 존슨의 개인사』 『아프리카 탐험』 『가리발디와 정적들』 『로마: 도시의 전기』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개인사』 『피렌체: 도시의 전기』 『넬슨: 개인사』 『조지 3세』 등이 있다.
그는 왕립 문학 협회의 특별 회원이며, 슬하에 2남1녀를 두었고 현재 헨리-온-템즈에 거주하고 있다.
– 역자 : 한은경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어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서울대와 인하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는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기호의 제국』 (모두 김주환과 공역)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1부에서
충고를 한다는 표시를 내지 말고 신중하게 너의 의견을 제안해라. 시뇨리아 궁에 갈 때는 신중하게 행동해서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환되면 그쪽에서 요구하는 바를 행하고 절대로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아야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소송이나 정치적인 논쟁을 피하고 언제나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평화와 전쟁을 결정하고 법을 통제하는 자는 바로 그였다. …그는 이름만 뺀 나머지 모든 점에서 왕이었다. 외국 지도자들도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그와 사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렌체 역사가인 프란체스코 구이치아르디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가진 대단한 명성은 로마의 몰락 이후 당대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시민도 누려보지 못한 것이었다.
2부에서
줄리아노의 피가 마루에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바론첼리는 시체를 뛰어넘어 새 성소로 돌진하면서 노리를 단칼에 죽였고 카발칸티의 팔에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그가 성소의 둔중한 청동문에 다다르기 전에 로렌조가 먼저 뛰어들었고 폴리치아노와 친구들이 간신히 문을 닫았다. ‘줄리아노는? 줄리아노는 안전해?’하고 로렌조가 계속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시가 처한 위험한 상황에서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 나는 여러분의 승인 하에 나폴리로 즉시 항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야말로 적군이 가장 원하는 대상이므로, 본인을 그들에게 인도하면 우리 동료 시민들이 평화를 되찾으리라 믿습니다. … 이 시대의 그 어떤 시민보다 큰 명예와 의무를 지닌 나로서는 내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런 목적으로 나는 이제 갑니다.
3부에서
넌 현재나 과거를 통틀어 교황청에서 가장 어린 추기경이란다. 그러니까 다른 추기경들과 회의할 때면 자만하지 말고 가장 겸손하게 처신해야 한다. …실크나 보석은 네 처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그보다는 고서와 아름다운 책을 수집하고 학식 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 낫다. 초대를 받는 것보다는 초대를 하는 게 좋지만 너무 자주 해서는 안 된다. 평범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많이 해라. … 네가 꼭 지켜야만 할 가장 중요한 규칙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
그들은 멋진 말에 한 젊은이를 앉혀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어떠어떠한 경계선은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 그가 그 경계선 너머로 가고 싶을 때 누가 그를 제어할 수 있는지 나에게 말해다오. 당신이 당신의 주인에게 법을 강요할 수는 없다.
4부에서
그는 방종에 대해서는 무한한 능력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향기를 무척 좋아해서 방 하나를 아예 향수 제조실로 꾸몄다. 또 젊은 남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별장에 그들을 가득 모아놓고 돈을 대주며 도박을 시켰으며, 여장을 하고 식탁에서 시중을 들게 했다. 그는 먹는 것도 아주 좋아해서 식사를 한 번 하고 나면 곧바로 구토제를 먹고 두 번째 식사를 했다.
도시는 이제 가난하고 침울하며 음산하고 우울했다. 여행객들은 거리에 거지와 방랑객, 승려들이 가득 찼다고 말했으며 …이 시의 측은한 처지에 대해 이렇게 한탄했다. ‘피렌체는 과거보다 많이 쇠락했다. 토스카나 지방을 가보면 인적이 너무나 드물어서 한때 그렇게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 이제 이렇게 버려지고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라고.

○ 출판사 서평
드라마와 유혈극, 로맨스와 미학이 함께 뒤얽힌 역사드라마! 거대한 권력, 눈부신 사치, 우아한 취미, 그리고 장려한 추락 전 세계의 돈을 거머쥔 채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고, 패션을 선도한 우아하고도 괴팍한 부자가문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권력이야기
이 점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 마키아벨리
15세기의 메디치 가문 사람들, 특히 국부 코지모와 위대한 로렌조 등이 피렌체와 자기들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미친 마법 같은 힘을 분석해보고자 한다면 정치말고도 교양의 영역에서 당시 그들이 차지한 위치를 알아야 한다. …한 시대를 찬양하거나 질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가졌던 정력적인 독자성 그대로 한 시대를 인식하자는 것이다.-부르크하르트
드라마와 유혈극, 로맨스와 미학이 뒤얽힌 역사 드라마!
부르크하르트도 말했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인문학과 교양의 가치를, 그것의 불안한 지반에 정비례하여 드높여 옹호하곤 한다. 그러나 15세기와 16세기 초를 살다간 피렌체 사람들처럼 열광적으로 인문주의와 지적 욕구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인정된 곳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예술과 지식이 삶의 윤리이던 시절, 그 중심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윈저 가와 케네디 가 그리고 록펠러 가를 합친 것과도 같았던 부?패션?권력의 왕조 메디치 가. 그들은 3백 년간 유럽을 지도를 구획하고 유럽의 정치, 과학, 예술 심지어는 교황까지도 조정하였다. 그들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의 후원자였으며, 피렌체로부터 전지구적인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갔고, 드디어는 그 모든 것을 잃었다.
전체 4부 24장, 90여 장의 도판, 예술 작품에 대한 상세한 주, 메디치 가 계보도를 수록한 이 책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로부터 근대 전반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15세기부터 3세기 간의 서구 유럽 문명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다재다능한 전기작가인 저자는 실증적인 광범위한 사료와 수십 장의 도판, 저자 특유의 문체를 통해 자아도취와 성적 방종으로부터 자기 파괴로 이어진 메디치 가문의 편력을 대하소설과도 같이 써내려 간다. 그리하여 역사의 소설화를 통해 피렌체 황금 시대 메디치 가문의 내력이 원근법적으로 세밀하게 전개된다.
부자의 도덕률, 인문주의의 계보학, 패션의 체계, 권력의 윤리학, 사건의 논리, 정념의 현상학을 곱씹게 하는 이 책의 문체는 마치 소설 속의 묘사처럼 사실적이고 풍자적이며, 유머러스하다. 메디치 가문의 사치와 음모, 우울과 쾌락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일화나 비상식적인 사건들의 현장을 엿보는 재미는 대단하다. 또한 당대의 중요한 인물, 사회사, 문화사를 모두 망라해 서술한 저자의 박식함과 성실함은 메디치 가의 슬픈 쇠망의 연대기를 넘어 한 시대의 성숙을 그리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다.
-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 : 예술, 표현된 사상.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인간
서력西曆 15세기에서 16세기. 이 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큰 윤곽이 결정되었다. 부르크하르트는 ‘인간과 세계의 발견’을 르네상스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르네상스의 개인주의를 관능주의와 연관짓는데, 그에게는 르네상스의 이념이 중세적인 금욕주의에 대한 반발을 뜻하는 것이었고 르네상스의 인간 발견은 생의 기쁨과 ‘육체의 해방’을 알리는 것이었다. 초도덕주의와 유미주의의 결합. 메디치 가문의 내력은 바로 그것의 증거이다. 항상적(恒常的)인 권력욕의 윤리적 표상화, 반복되는 욕망의 변주, 유형적인 욕망의 표현을 보여주는 이 계보학은 역사 서술의 본원적인 의미라 할 수 있는 ‘인간 이해’를 이끌어낸다.
유럽 자본주의 발전의 서두를 장식했던 이탈리아는 예술에 있어서도 유럽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발전의 시초를 이루었다.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제도로 나아가고 있던 중세적 발전 경향을 합리주의라는 방향으로 심화시켰던 르네상스는 (초기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이탈리아의 운동이었다. 그러한 원리들은 그 당시 노동의 조직화, 교역 기술의 발전, 신용 제도의 정착, 복식 부기의 개발 그리고 통치?외교?전쟁 수행 방법에 이르기까지 관철되고 있던 동일한 정신의 소산이다.
14세기 이탈리아의 도시 공화국들은 길드를 장악한 중산층과 길드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사이에 일어난 수많은 계급투쟁으로 점철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노동자는 피지배자가 되었고, 이 계급국가 속에서 자본은 도덕적 양심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유럽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15세기에 들어 피렌체의 지배권을 장악한 것은 시민계급이 아니라 몇몇의 부유한 집안, 그중에서도 메디치 가는 위력적인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경제적 특권을 누리며 정부권력의 주축을 형성했다. 비록 강요된 평화와 안정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평화와 안정 속에서 피렌체는 새로운 번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자본주의적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영리추구를 위한 노력과 이른바 ‘중산층의 미덕’ 그리고 근면, 절약성과 정직성이라 알려져 왔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서는 이와는 사뭇 다른 행태가 차고 넘쳐 흘렀으니, 그 또한 르네상스의 반면이다.
르네상스의 예술 문화는 너무나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어, 이 예술 문화 운동에서 일률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을 추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르네상스 예술의 기본 경향을 이룬 자연주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차례 방향을 바꾸었지만, 이 경향이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켰다는 점은 여일하다. 이 시기에 비로서 ‘자잘한 진실들’이 합쳐져서 형성된 세계상이라는 ‘긍정적 시간’의 이념이 생겨났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예술사에서 아직껏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문주의자들은 예술가들을 시인과 마찬가지로 신의 총애와 영광을 누리는 존재임을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르네상스의 예술관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천재 개념의 발견이었다. 예술 작품은 개인의 소산이고 개인의 이름은 전통, 이론, 규범은 물론 작품까지도 넘어서서 그 위에 새겨지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자주적?창조적 인격의 소유자는 작품보다 더 풍부하고 심원하며 어떠한 객관적 척도로도 완전히 표현될 수 없다는 이념. 예술이 더이상 객관적인 ‘무엇’이 아니라 주관적인 ‘어떻게’에, 즉 개성의 표현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성의 힘과 개인의 정신적 에너지의 분출, 자기고백과 주관적 표현, 이러한 에너지와 d욕망의 자발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천재는 르네상스의 이상이 되었고 이를 통해 르네상스 사람들은 그러한 태도의 위대한 힘을 인식하였다.
인문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발상지는 처음부터 궁정이나 관청이었지만, 이 운동의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돈 많은 상인들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부를 얻었거나 권력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이 부와 권력의 융합의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메디치 가였던 것이다.

- 이 책의 키워드들 : 현란한 존재의 표현들, 정신과 육체의 향연, 동시대성의 전면적 폭발
중세에서는 인간이 세계의 모방 내지는 축도, 즉 소우주였다. 이제 이 관계가 뒤바뀌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간은 세계의 모형이다’라고 썼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말한다.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지. 재산, 몸……, 그리고 시간이란다’라고. 인간이 시간을 소유하는 방식, 그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가 아닌가. 메디치 가의 역사는 책과 도서관, 예술과 글쓰기, 종교와 혁명, 쾌락과 폭력 등 이 모든 시간과의 싸움의 형식으로 채워져 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로써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천재들의 공간이었다. 토스카나 지방 아르노 강변 구릉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부터 자본주의적 부의 기원과 현대유행의 원형이, 그리고 근대의 정치적, 윤리적, 미학적 자의식이 싹텄다. 어둠과 밝음, 위대함과 수치, 비약과 추락으로 역동했던 이 도시는 현대적 의미의 역사 서술의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그리하여 피렌체의 거리와 건축물과 축제와 기후는 유럽 문명의 근대를 유추하는 역사 지리학의 적소이다. 메디치 가를 중심으로 이 공간에서 벌어진 피와 술과 눈물의 변주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있어 방점을 빠뜨릴 수 없는 역사의 본문이자, 아이러니와 우연과 기이함으로 가득찬 부록이다.
도서관은 보편적인 정신을 향한 하나의 순례 길이라 할 수 있다. 독서와 연구를 위한 서가이기에 앞서 존재로 하여금 무한한 환상을 일으키게 하는 서적의 우주. 이 책들의 집은 대성당이나 수도원, 대학이나 미술관 박물관, 궁전이나 오페라 극장과 더불어 유럽문명의 상징이요, 그 발신지이다. 도서관의 황금기는 15,16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시작되며 메디치 가는 학문과 예술의 애호가로서 혹은 그 후원자로서 예술품을 대하듯 서적을 탐내어 수집했다. 그들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국가’(부르크하르트)의 상징인 미술관과 함께 도서관을 공들여 지었다. 그들은 가문 번영의 기초를 이룬 국부 코지모의 장서를 중심으로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7세에 의해 미켈란젤로의 설계로 도서관을 세웠다. 메디치가 궁전에 출입한 많은 인문주의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이 장서를 통해 고전들이 부활되었다.
회화는 점점 더 지적(知的)으로 변해갔으며, 교훈이나 장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각성과 자아확신의 표현형태로 바뀌었다. 서양미술사에는 본격적인 회화 양식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서서히 미술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향유의 예술, 상징의 예술로 부활하기 시작한다. 천재들은 르네상스 미술이 완전한 미술을 추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완전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에 빠지기도 했다. 원근법을 발명한 마사치오, 세속성과 부드러움을 지닌 마돈나를 그린 필리포 리피 수사, 최초의 ‘성스러운 대화’를 보여준 프라 안젤리코, 원근법의 실행자 파올로 우첼로, 명확하고 합리적인 공간을 요약해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폴라이우올로는 움직이는 근육의 표현을 강조했으며, 보티첼리는 부드럽고 우아한 선의 움직임을 통해 세련된 양식을 창출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페루지노의 스승으로 알려진 베로키오, 프레스코 기법을 피렌체 화가들에게 전해준 기를란다이오, 세밀한 초상화롤 이름을 떨친 바자리, 그 이름 자체가 개념이 되어버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등. 그리고 육체의 아름다움과 그 언어의 순간을 형상화한 조각가와 건축가들의 이름 -니콜로 니콜리, 첼리니, 미켈로찌,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그들의 예술적 기교, 우아함과 유용함에 대한 자기확신과 세련됨, 이상스러운 것에서 느끼는 체감의 즐거움은 미학과 윤리학의 접점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메디치 가는 이 ‘예술가 사전’의 편찬자였다. 이 책은 르네상스 ‘화인열전畵人列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바로 르네상스의 태동과 그것의 문화사적 의미를 결정짓는 배경이 된다. 최초의 메디치 지오반니 데 메디치로부터 마지막 메디치 지안 가스토네에 이르기까지 3백여 년에 걸친 권력의 연대기는 찬란하다 못해 엽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노골적인 쾌락과 넘쳐나는 관능, 선정적인 자기 현시욕과 허영기 가득한 정념의 과도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권력의 한시적인 속성을 알고 있었으며, 권력의 유지와 확장에 필요한 힘의 요소들을 다룰 줄 알았다. 그들은 적들을 대할 때 회유와 협박, 살인과 섬멸, 설득과 치하, 배반과 모략 등 할 수 있을 만큼의 정략을 펼쳤으며, 그에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권좌를 착실히 쌓아나갔다. 그들은 군사력보다는 돈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였으며, 교황을 배출하고, 연회와 축제를 배풀고, 정략 결혼을 발표하고, 예술로써 권력을 착색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중간계층과 하류층의 인기가 필수적임을 깨달았으며,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책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현대 상류층의 기원, 권력의 맨 얼굴, 인간 정념의 그 깊은 속, 정치적 술수의 기법, 괘락과 사치의 인과율이 궁금하다면 그들을 엿보라.
마키아벨리는 1469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가 25세일 때 발생한 프랑스왕 샤를 8세의 피렌체 침공이 그에게 보여준 것은 권력자들의 변동, 왕국의 전복, 농촌의 황폐, 도시의 살육, 잔혹한 살생, 피비린내 나는 전투 양식 등이었다. 외세의 침입으로 겪어야 하는 약소국의 비참함은 현실적인 정치가 마키아벨리가 부정적인 인간학으로 권력의 체계를 기술한 『군주론』의 문제의식을 결정 짓는다. 정치영역을 윤리, 도덕,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한 마키아벨리에게 던져진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와 도덕의 관계’였으며,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정치의 탈도덕화’로 대답하였다. 탈도덕이 또 하나의 도덕이 되어버린 현대에, 마키아벨리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리라.
사보나롤라는 본래 피렌체의 수도원장 출신으로 1494년 샤를8세의 이탈리아 침공을 계기로 메디치가를 추방하고 코뮌을 수립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일종의 신정神政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정을 통해 모든 시민이 기독교 신자다운 생활의 재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철저하게 기독교 정신에 의한 사회개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사보나롤라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중요시했고, 실제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로마교황청과의 불화, 피렌체 내부의 반대파 등장,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파탄 나게 된다. 결국, 1498년 사보나롤라는 화형대에 오르게 되고, 시민들은 죽은 시체에 돌을 던진다. 정치와 구원과의 관계, 사보나롤라의 혁명적인 구원관은 정치적 공포를 풍성하게 했을 뿐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인문주의자들, 용병대장들, 르네상스기의 정치가들, 수집가와 애호가들, 메디치 가의 적대 가문들, 교황과 사제들, 과학자와 발명가들, 사상가와 저술가들 그리고 근대 초기를 살았던 보통사람들이다. 근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감수성은 지금의 우리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 같은 것은 권력과 욕망의 논리이고 다른 것은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몸과 시간을 가지고 웃고 울었다. 그리고 그 몸과 시간이 우리의 지금을 이렇게 규정한다. 몇백 년 전에 벌어진 이야기들은 때로 소설로만 여겨지지도 한다. 메디치 가는 그런 식으로 가계를 연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행운은 여자와 같다’고. 그렇다면 권력은?
- 이 책의 얼개 : 이상주의적인 사치, 비범한 운명, 사건들의 우주, 그 상세한 과정
1부에서는 근대의 목전, 15세기가 되자 ‘천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라 불리운 이 집단적 문예 운동의 중심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화가들과 단테, 마키아벨리 등의 거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정신들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꽃의 도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의 권력 획득 과정을 다룬 1부에서는 지오반니 데 메디치로부터 민중의 지지와 상업 자본의 힘으로 피렌체 공화국의 수장이 된 ‘국부’ 코지모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권력의 탄생 과정을 다룬다. 이 과정은 정략과 돈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뒷받침한 메디치 가는 학문과 예술의 애호가로서 혹은 그 후원자로서 당당하게 등재되었으며, 그들에 의해 문명은 성숙해 졌다. 권력의 성장과 안정기를 다룬 2부에서는 통풍 걸린 피에로로부터 위대한 로렌조의 시대까지 메디치 가 영광의 절정이자 피렌체 황금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권력과 문화의 행복한 동거를 보여주는 그것은 유혈과 약탈, 음모와 배신이 뒤얽힌 위기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3부에서는 메디치 가는 이제 권력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한다. 이제 그들에게 가공할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의 각축장이 된다. 이러한 정세가 된 시발점은 프랑스왕 샤를 8세의 나폴리 정복 작전이었다. 강력한 샤를의 군대에 피렌체를 내준 피에트로 때문에 메디치 가는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하고, 그들의 유산은 몰수당하고 유랑민처럼 살게 된다. 그리고 18년 후 교황 레오 10세를 배출한 메디치 가의 화려한 복귀. 3부에서는 이 추방과 귀환의 드라마틱한 역사가 소설보다 더 사실적으로 소개된다.
4부에서는 아직 메디치 가의 지위는 굳건한 듯 보였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서서히 그 빛의 밝기를 잃어가면서 메디치 가의 쇠락의 기운은 짙어져 갔다. 코지모 1세 이후 메디치 가를 계승한 수장들의 면면은 사치와 우울, 엽기적인 쾌락과 만용, 자의식 과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의 부는 점점 바닥이 드러나 갔으며, 명성은 비난으로, 자부심은 자만으로, 예술에 대한 향수는 허영으로 바뀌어졌다. 1737년 가문의 7대째 수장 지안 가스토네의 죽음 이후 메디치 가문은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실로 장려한 추락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