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소통하는 지도자는 흥하고 불통하는 지도자는 망한다
강정만 / 주류성 출판 / 2017.6.26
- 명나라 역대 황제 16명의 통치시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소통하지 않는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하고 패망한다! 명나라는 홍무 (洪武) 원년 (1368) 명태조 (明太祖) 주원장 (朱元璋)이 건국한 이래, 숭정 (崇禎) 17년 (1644) 숭정제 (崇禎帝) 주유검 (朱由檢)의 자살로 패망할 때까지, 276년 동안 지속된 한족 정권 최후의 봉건 제국이다. 16명의 황제가 통치한 명나라는 제국이 흥망성쇠하는 전형적인 표본이었다. ‘치국의 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한 황제가 통치했을 때는 번영했지만, 무능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황제가 통치했을 때는 어김없이 외우내란이 끊이질 않았다. 제국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황제의 인격과 경륜 그리고 통치 역량에 좌지우지되었다.
고대 중국의 봉건 왕조에서 ‘천명’에 따라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는 ‘천자’의 존재는 국가 권력의 요체였다. 제국의 흥망성쇠는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자는 백성의 행복과 국가의 안녕에 대한 무한 책임이 있었다. ‘제왕의 도’는 모든 백성이 풍요를 누리고 이웃나라와 화친을 이룸으로써 사해만방의 평화를 구가하는 일을 본질로 삼고 있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소통’을 거부한 채 백성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 목차
머리말
제1장 개국황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 떠돌이 승려 중팔(重八): 험난한 세월을 견뎌내다
- 곽자흥(郭子興)의 홍건적(紅巾賊)에 가담하다
- 세력 확장을 도모하다
- 군웅할거를 종식시키고 명나라를 건국하다
- 명태조(明太祖)와 마황후(馬皇后)
- 살인 본능의 폭발: 공신 대학살 사건
제2장 건문제(建文帝) 혜종(惠宗) 주윤문(朱允?)
- 사대부의 고상한 인품을 지닌 황제
- 번왕(藩王)들과의 정치 투쟁
- 혜종(惠宗)의 죽음: 천고의 수수께끼
제3장 영락제(永樂帝) 성조(成祖) 주체(朱?)
- 문무를 겸비한 야심가: 연왕(燕王) 주체(朱?)
- 정난지역(靖難之役):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다
- 영락제(永樂帝)의 치적
- 잔인한 영락제: 삼천궁녀 살해 사건
제4장 홍희제(洪熙帝) 인종(仁宗) 주고치(朱高熾)
- 인자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닌 태자
- 감국(監國): 부친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다
- 황위 계승과 사망 원인
제5장 선덕제(宣德帝) 선종(宣宗) 주첨기(朱瞻基)
- 문무를 겸비한 태자
- 숙부 주고후(朱高煦)의 반란을 평정하다
- 선종(宣宗)의 치적
- 호황후(胡皇后) 폐위 사건
제6장 정통제(正統帝) 영종(英宗) 주기진(朱祁鎭)
- 영종(英宗)의 출생 의혹
- 소년 황제
- 환관 왕진(王振)의 전횡
- 토목지변(土木之變): 황제가 몽골족의 포로로 잡히다
- 영종의 환궁과 유폐
- 탈문지변(奪門之變): 태상황 주기진의 황위 복귀 정변
제7장 경제(景帝) 대종(代宗) 주기옥(朱祁鈺)
- 뜻밖에 황제로 등극하다
- 북경 보위전: 와랄(瓦剌)의 군주, 야선(也先)의 침략을 격퇴하다
- 태자 주견심(朱見深) 폐위와 친아들 주견제(朱見濟)의 태자 책봉
- 왕황후(汪皇后)의 현명한 처신과 대종(代宗)의 비참한 말로

제8장 성화제(成化帝) 헌종(憲宗) 주견심(朱見深)
- 도량이 넓은 말더듬이 황제
- 만귀비(萬貴妃)의 전횡
- 환관 왕직(王直)과 양방(梁芳)의 득세
- 3대 악정: 서창(西廠), 황장(皇莊), 전봉관(傳奉官)
제9장 홍치제(弘治帝) 효종(孝宗) 주우탱(朱佑?)
- 유령 인간처럼 지낸 어린 시절
- 명나라 최고의 성군: 홍치중흥(弘治中興)의 태평성대를 열다
- 일부일처제를 고수한 황제
제10장 정덕제(正德帝) 무종(武宗) 주후조(朱厚照)
- 주후조(朱厚照)의 출생 의혹
- 황음무도한 생활을 마음껏 즐기다
- 환관 유근(劉瑾)의 국정 농단
- 전쟁을 즐긴 황제
제11장 가정제(嘉靖帝) 세종(世宗) 주후총(朱厚?)
- 번왕 주후총이 황위를 계승하게 된 배경
- 대례의(大禮儀) 논쟁
- 도교의 미신에 빠진 황제
- 임인궁변(壬寅宮變): 궁녀들의 황제 시해 음모
- 총신 엄숭(嚴崇)의 득세
- 남왜북로(南倭北虜): 왜구와 몽골의 침략
제12장 융경제(隆慶帝) 목종(穆宗) 주재후(朱載?)
- 이룡불상견(二龍不相見)의 괴설
- 권신 서계(徐階)와 고공(高拱)의 경쟁 관계
- 몽골과 왜구에 대한 회유 정책
- 여색에 빠져 죽다
제13장 만력제(萬曆帝)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鈞)
-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 어린 황제를 대신한 장거정의 개혁 정치
- 친정(親政)에 나선 신종(神宗)의 일탈과 폐정
- 만력삼대정(萬曆三大征)과 살이호(薩爾滸) 전투
제14장 태창제(泰昌帝) 광종(光宗) 주상락(朱常洛)
- 국본(國本)의 논쟁: 태자 책봉에 대한 임금과 신하간의 갈등
- 정격안(?擊案): 태자 피습 사건
- 홍환안(紅丸案): 광종의 급작스런 의문의 죽음
제15장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 주유교(朱由校)
-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과정
- 희대의 간신: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국정 농단
- 희종(熹宗)의 두 여인: 유모 객씨(客氏)와 황후 장언(張?)
제16장 숭정제(崇禎帝) 사종(思宗) 주유검(朱由檢)
-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과정
- 엄당(奄黨)의 몰락과 동림당(東林黨)의 부활
- 끊이질 않는 자연 재해와 농민 반란
- 청태종(淸太宗)의 중원 침략
- 숭정제(崇禎帝)의 자살: 대명제국 최후의 날
○ 저자소개 : 강정만
저자 강정만은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1984)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석사 (1986)와 문학박사 (1996)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영하회족자치구 영하대학교에서 방문학자 (1992)의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중국 하남성 정주경공업대학 초빙교수 (2008), 중국 인민해방군외국어대학 (2010)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남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춘추오패』, 『중국을 통일한 영웅들의 이야기』, 『중국 하남성 명산 등정기』, 『울리자』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황제 16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봄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역사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골동품에 불과하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음으로써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또 명나라 황제들의 공적과 과오를 평가함으로써 오늘날 지도자가 어떠한 덕목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성공 한 황제들은 애민 사상을 실천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사치와 향락을 멀리했으며 동시에 귀를 열고 신하의 간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도량이 있었다. 이와 반면에 역사에 오점을 남긴 어리석은 황제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신하들과 ‘소통’을 거부했다.
황제를 중심으로 기술한 명나라 역사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면 이렇다.
첫째, 유가의 전통 사상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황제는 유가에서 주장하는 ‘제왕의 도’를 실천해야 했으며, 신하는 황제를 보좌하여 치국평천하의 이상을 실현해야 했다.
둘째, 황권은 적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16명의 황제 가운데 유일하게 무종(武宗) 주후 조(朱厚照)만이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 신분으로서 황위를 계승했을 뿐, 다른 황제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황제와 신하들 간의 지루 한 이념 논쟁과 갈등 요소가 되었으며 당파 싸움의 빌미를 제공했다.
셋째, 황권(皇權)과 신권(臣權)의 충돌이다. 대체적으로 황제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신민을 통치하고자 했다. 유가의 대의명분에 충실한 신하들은 황제가 ‘성군의 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황제도 있었지만, 신권이 황권을 능멸한다고 분노한 황제는 피 비린내 나는 살육과 옥사를 끊임없이 벌였다.
넷째, 명 중엽부터 도교의 황당무계한 미신이 성행했다. 황제들은 단약 과 최음제를 상복하여 수명을 단축하고, 혹세무민하는 도사들이 득세했다.
다섯째, 환관들의 국정 농단이 극을 다했다. 천계 (天啓) 연간 (1621∼1627) 희종 (熹宗) 때, 실질적인 황제는 환관 위충현(魏忠賢)이었을 정도로 환관의 전횡이 심각했다. 사실상 명나라가 붕괴한 결정적인 이유는 외침이 아니 라, 황제의 무능과 일탈, 도교의 성행 그리고 환관의 국정 농단이었다.
여섯째, 해금(海禁) 정책이다. 영락제(永樂帝) 때 환관 정화(鄭和)가 어명을 받들 어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지금의 아프리카 소말리아까지 진출하여 통상 을 확대한 적이 있었으나, 영락제 이후에는 해상 무역을 통제하는 정책을 폈다. 이는 결과적으로 동남 해안 일대에서 왜구의 반란을 초래하였고 명나라가 해상으로 진출하지 못한 대륙 국가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명나라 역사는 우리 한민족에게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나라와 조선(朝鮮)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호도 명 태조의 윤허를 받아 결정되었다. 이념적인 면에서는 양국이 유가 사상을 국시(國是)로 삼았으므로 통치 철학과 세계관이 일치했다. 이는 양국의 정 치인과 지식인들이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했다. 명나라가 조선에게 ‘조공 무역’의 형태로 시혜를 베풀고, 임진왜란 때 대군을 파병하여 조선을 구원한 까닭이 이런 사상적 결속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의 유림들도 명나라가 망한 후 연도를 표기할 때,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의 연호인 ‘숭정(崇禎)’을 사용함으로써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이는 그들이 명나라를 맹목적으로 숭상한 게 아니라 이념적 동지애를 강하 게 느꼈으며,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를 마음속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명사 (明史)』 등 명나라와 관련한 사료 분석을 통해 기술했다.

○ 독자의 평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 (강정만)
이 책은 명나라 황제 16명에 대한 평전이다.
각 황제의 출생과 등극과정 그리고 업적과 과실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당대의 충신 혹은 간신들에 대하여서도 언급하였다.
이 책의 특징은 제목처럼 황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민간의 저명한 인물 등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작가가 황제별 역사를 핵심 위주로 정리하면서도 읽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도록 이야기를 잘 풀어놓아서 소설책을 읽듯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명나라는 조선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나라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국하였고, 청나라와의 관계나 일본과의 관계 등과 같이 공동의 관심사도 많았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소위 ‘재조지은’ 때문에 조선 왕실이나 사대부들로부터 엄청난 존경을 받았다.
조선의 명나라에 대한 일편단심은 너무 지나쳐서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편드느라 떠오르는 청나라를 홀대하다가 결국 정묘,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기도 했고, 명나라가 망한 후에도 몰래 명나라의 연호를 쓴다든가, 청나라 눈치를 살펴가며 궁 안에 명나라 황제를 기리는 사당을 유지해오는 등 실질을 버리고 명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명나라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힘이 빠지자 전국 곳곳에서 발흥한 반란세력들이 원 세력을 내몰고 세운 나라이다.
반란세력을 차례로 규합한 주원장이 1368년에 황제에 등극하면서 시작되어 1644년 숭정제가 목메어 자살하기까지 276년 동안 존속하였다.
명나라는 한족이 세운 최후의 왕조이다.
명나라의 앞에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중국을 다스렸고, 뒤로는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중국을 장악했다.
원나라 시절에 한족은 최하급으로 취급받으며 살아야했으므로 명나라를 건국하고나서 그들은 해방의 기분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3백년도 못 채우고 다시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나 개국공신들의 이상은 선명하고 그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창업의 어려움에 비하면 하찮다할 수 있는 수성이지만 그 수성을 담당해야하는 황제나 신료들은 안온함에 젖어 더 이상 창업주들의 날썬 기상을 유지하지 못했고, 당장의 향락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내일을 보살피지 못했다.
당나라 황제들 중 여럿이 도교에 빠져 중금속으로 버무린 단약을 먹고 불로장생을 추구하다가 단명한 삶을 살았다.
이런 내용은 역사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명나라 황제들이 모를 수 없었건만, 또다시 도교가 번성하고 단약을 상복하는 황제가 줄을 이었으니 참 모를 일이다.
단약을 먹고 불로장생한 사람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제명에 죽은 사람조차 제대로 없다시피하는데 왜 허황된 단약에 그렇게 매달렸을까? (인간이란 존재가 본래 그런 허황된 존재인가?)

명나라 황제들의 유별난 점들을 둘러보자.
개국황제 주원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남의 집에 팔려가 목동일을 하기도 하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중이 되었다가 결국 홍건적 무리에 가담하여 재능을 발휘하면서 차츰 성장하였다.
싸움에서 이긴 후에도 관리나 백성들을 잘 보듬어서 세월이 갈수록 세를 키워나가는 포용력으로 성장하였는데, 막상 황위에 오른 후에는 개국공신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제거했다.
호유용, 남옥 등 공신들을 제거할 때는 한 건당 수 만명씩 죽여서 씨를 말렸다.
반면 조강지처인 마황후와는 금실이 좋아서 평생 정답게 지냈고, 마황후가 죽은 후 황후 자리를 비워두는 순애보를 보여주었다.
제3대 황제 성조는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황제 자리를 꿰찬 비정한 삼촌이지만 재위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황위에 오르기 전에 조선의 이방원과 만나 친교를 쌓았는데 두 사람의 이후 행적이 매우 유사하다.
재위기간에 북경으로 천도하였고, 경항대운하를 완공하였으며, 북벌을 통하여 변경을 안정시켰고, 대선단을 꾸려 환관 정화로 하여금 세계 원정을 하게 하였다.
제6대 황제 영종은 유일하게 황위에 두 번 올랐다.
처음 황제 등극 후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친정에 나섰다가 몽골군에 포로가 되어 근 1년 동안 생활하다가 복귀했지만, 이미 동생 대종이 황제로 등극해 있었기에 뒷방신세가 되어 구금상태로 7년이나 지내다가 대종이 병으로 드러눕게되자 다시 권좌를 차지했다.
그래서 유일하게 연호도 ‘정통’과 ‘천순’ 두 개를 사용하였다.
제9대 효종은 평생 일부일처를 고수하여 장황후와 해로하였고 비빈을 전혀 두지 않은 유일한 황제다.
제10대 황제 무종은 명나라 황제 중 유일한 적장자 황제로 15세에 등극한 사춘기 말썽쟁이 황제로 놀이에 탐닉하였다.
별궁을 지어 그 곳에서 황음무도한 생활을 하면서 미소년들을 뽑아 거느렸는데 한 해에 127명이나 양아들을 삼기도 했다.
제11대 세종은 최초의 방계 출신으로 전임 무종이 후사없이 붕어하자 조정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등극하였다.
도교에 빠져 단약을 상복하였고, 불로장생을 위해 아침이슬을 모아 마셨는데 이 일을 하는 궁녀들은 정결하게 물만 먹고 살게했다.
결국 궁녀들이 황제를 죽이기로 모의하여 잠든 황제의 목을 끈으로 졸랐는데 끈이 뒤엉켜서 허둥대는 사이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자금성 안 영수궁 안에 틀어박혀 국정을 포기하고 지냈다.
제 13대 만력제는 임진왜란 때 원군을 파병한 황제로 조선에서는 매우 높이 받들어졌다.
그러나 만력제는 재위기간 동안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행차하는 일도 없고, 종묘재례도 내몰라라하고 대신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없었고, 결재도 전혀 하지 않고 구중궁궐 속에 들어앉아서 태업을 일삼은 특이한 황제다.
제14대 광종은 단약을 상복하여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등극하였고, 불과 한 달을 못 채우고 붕어하였다.
제15대 희종은 교육을 받지 못하여 문맹에 가까웠고, 오로지 귀뚜라미 싸움과 목공예 취미생활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황제 위의 환관’이라는 위충현이 등장하여 나라를 말아먹었다.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참 억울한 황제다.
전임 황제들이 개판 쳐놓은 엉망진창의 나라를 물려받아서 제대로 운영해보고자 근검절약하면서 불철주야 노력하였지만 웃대들이 너무 많이 거덜을 내놓았고, 거기에 더하여 해마다 자연재해가 심하여 전국적인 농민 봉기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자성의 반란군이 궁성으로 밀고 들어오자 황후, 후궁을 죽게 하고, 공주 둘을 칼로 찔러 죽인 후, 자신도 목을 메어 생을 마감했다.
명나라가 망한 내력을 살펴보면 결국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탓임을 알 수 있다.
망한 나라의 망한 황제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했으니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없었다.
우리는 과연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긴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진다.

- 명나라 황제 16명의 등극과정과 재위기간 현황
(대수, 연호, 묘호, 이름, 생애기간, 재위기간, 출신성)
1 홍무제 태조 주원장 1328-1398(71세) 1368-1398(31년) 개국황제
2 건문제 혜종 주윤문 1377-1402(26세) 1398-1402(4년) 태조의 장손
3 영락제 성조 주체 1360-1424(65세) 1402-1424(22년) 태조의 4남
4 홍희제 인종 주고치 1378-1425(48세) 1424-1425(10개월) 성조의 장남
5 선덕제 선종 주첨기 1398-1435(37세) 1425-1435(10년) 인종의 장남
6 정통제 영종 주기진 1427-1464(37세) 1435-1464(20년) 선종의 장남
7 경제 대종 주기옥 1428-1456(30세) 1449-1456(8년) 선종의 차남
8 성화제 헌종 주견심 1447-1487(40세) 1464-1487(23년) 영종의 장남
9 홍치제 효종 주우탱 1470-1505(36세) 1487-1505(18년) 헌종의 3남
10 정덕제 무종 주후조 1491-1521(31세) 1505-1521(15년) 효종의 장남
11 가정제 세종 주후총 1507-1567(61세) 1521-1567(45년) 헌종의 손자
12 융경제 목종 주재후 1537-1572(35세) 1566-1572((7년) 세종의 3자
13 만력제 신종 주익균 1563-1620(58세) 1572-1620(48년) 목종의 3자
14 태창제 광종 주상락 1582-1620(39세) 1620-1620(1개월) 신종의 장남
15 천계제 희종 주유교 1605-1627(22세) 1620-1627(7년) 광종의 장남
16 숭정제 사종 주유검 1610-1644(34세) 1627-1644(17년) 광종의 5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