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샴고로드의 재판
엘리 위젤 / 포이에마 / 2014.12.23
- 노벨상 수상작가, 나이트의 저자 엘리 위젤의 문제작

부조리와 고통이 가득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 속, 신의 권능과 선의를 의문에 부치는 현대판 욥기.
17세기 동유럽 어느 마을의 여관을 무대로 펼쳐지는 모의재판을 통해, 세상의 악과 인간의 고통, 신의 침묵과 부재의 문제를 다룬다.
유대인 집단학살의 광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동부 유럽의 샴고로드. 마지막 생존자 베리쉬가 운영하는 여관에 세 명의 음유시인이 찾아온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부림절 공연을 하러 유대인 공동체를 찾아온 것이다.
익살스런 재담과 입씨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관 주인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다시금 학살자들의 칼이 임하리라는 불길한 예감도 깊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여관 주인은 부림절 연극으로 신에 대한 모의재판을 하자고 요구하고 나서는데…
아무도 신의 변호를 맡으려 하지 않는 이 재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과연 전능하고 선한 신은 무죄함을 판결받을 수 있을 것인가?
○ 목차
인물 및 배경 설명
1막
2막
3막
후기_ 매튜 폭스

○ 저자소개 : 엘리 위젤 (Elie Wiesel, 1928 ~ 2016)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 교수, 인권 활동가, 홀로코스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3월,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의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하여 가족들과 함께 게토로 이주했다가 다시 그해 5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이때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 중 90%가 사망했으며,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세 명도 살해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져 가스실에서 죽게 될 운명이었으나,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부헨발트 수용소가 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직전에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그의 왼팔에는 수감자 번호 A-7713이 문신으로 새겨졌다. 종전 후에는 프랑스의 고아원으로 보내진 뒤 1948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문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전쟁 후 10여 년간 홀로코스트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으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설득으로 1958년에 회고록 《밤 La Nuit》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밤》은 1960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된 후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196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1976년부터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세계 각지의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내 메리언과 함께 ‘인류를 위한 엘리 위젤 재단’을 설립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 후로도 남아프리카, 니카라과, 코소보, 수단 등지에서 벌어진 폭력과 집단 학살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등 ‘강력한 인권 옹호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관 설립을 주도하고, 뉴욕 인권 재단의 창립 이사로 일하면서 전 세계 인권 증진을 위해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인”이라고 표현했다. 평소에도 “나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했던 그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가르치는 일을 가장 좋아했으며, 2011년에 은퇴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편을 놓지 않았다. 보스턴 대학은 그를 기리기 위해 ‘엘리 위젤 유대인 연구 센터’를 설립했다. 2016년 7월 2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역자 : 박옥
서울대를 졸업하고 현재 통역사와 번역자로 왕성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파이프라인 우화” “ 백만장자의 비밀 노트” “성격으로 알아보는 속 시원한 대화법”“거절은 나를 다치게 하지 못 한다” “덱스트 예거의 연금술 ” “ 인생의 사계절”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샴고로드의 유대인 여관 주인인 나 베리쉬는 그를 적개심, 학대, 그리고 무관심의 죄로 고발하는 바요!“
- 노벨상 수상작가, 《나이트》의 저자 엘리 위젤의 문제작, 국내 초역 : 신을 피고로 한 사상 초유의 재판이 펼쳐진다!
부조리와 고통이 가득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 속, 신의 권능과 선의를 의문에 부치는 현대판 욥기. 17세기 동유럽 어느 마을의 여관을 무대로 펼쳐지는 모의재판을 통해, 세상의 악과 인간의 고통, 신의 침묵과 부재의 문제를 다룬다.
유대인 집단학살의 광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동부 유럽의 샴고로드. 마지막 생존자 베리쉬가 운영하는 여관에 세 명의 음유시인이 찾아온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부림절 공연을 하러 유대인 공동체를 찾아온 것이다. 익살스런 재담과 입씨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관 주인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다시금 학살자들의 칼이 임하리라는 불길한 예감도 깊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여관 주인은 부림절 연극으로 신에 대한 모의재판을 하자고 요구하고 나서는데… 아무도 신의 변호를 맡으려 하지 않는 이 재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과연 전능하고 선한 신은 무죄함을 판결받을 수 있을 것인가?
“좋아, 재판을 무대로 올립시다! 상대가 누구냐고? 아직도 모르겠소?
우주의 창조주, 최고의 심판자가 상대가 되는 거요.
그래! 신을 피고로 하는 거야!”
- 부조리와 고통이 가득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 속,
신의 권능과 선의를 의문에 부치는 현대판 욥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엘리 위젤의 문제작
자신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록한 《나이트 La Nuit》로 국내에도 유명한 엘리 위젤의 희곡 《샴고로드의 재판》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위젤은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작가다. 1979년에 출간된 이 희곡 역시 그 기원은 아우슈비츠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수용소에서도 탈무드를 공부하던 경건한 유대인이던 위젤은 어느 날 밤, 탈무드 선생을 따라 들어간 막사에서 기이한 경험을 한다. 세 명의 저명한 랍비가 소년 위젤을 증인 삼아 전능한 신을 기소하고서 재판을 벌인 것이다. 며칠간 계속된 이 재판에서 랍비들은 신이 창조세계와 인간에게 가한 범죄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내린다. ‘끝없는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저녁 기도를 할 시간입니다”라는 랍비의 말에 참석자들은 유대인의 저녁 기도를 암송한다.
이때 받은 긴장감과 딜레마를 안고 살아야 했던 위젤은 그 ‘절망적인 엄숙함’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라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 희곡을 완성했다. 1940년대의 아우슈비츠를 그보다 300년 전 유대인 대학살이 이루어졌던 우크라이나 지역 일대로 옮겨놓고, 자신이 목격한 아우슈비츠의 연극을 ‘부림절 연극’으로 재현해낸 것이다.

- 연극 속의 연극, 신을 피고로 한 재판
줄거리는 이렇다. 1649년 2월 25일, 동유럽의 한 마을 ‘샴고로드’의 여관에 세 명의 유대인 음유시인이 찾아온다. 부림절 공연을 하러 유대인 공동체를 찾아온 이들은 여관 주인의 냉대에도 익살스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불과 얼마 전 이 일대에서 벌어진 유대인 대량학살로 인해, 한때 1백 가정이 살았던 이 유대인 마을에 이제 여관 주인과 그의 딸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차 또 한 차례 학살이 벌어지리라는 소식도 들려오는 불길한 분위기 속에서, 여관 주인의 요구에 따라 부림절 연극의 주제가 결정된다. 유대인을 자신의 자녀로 선택하고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도록 허락한 신을 피고로 삼아 모의재판을 벌이자는 것이다. 여관 주인이 검사를 자처해 신을 기소하고 음유시인들이 재판관의 역할을 맡지만, 신을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어 연극은 한동안 시작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의문의 손님이 신의 변호인 역을 맡겠다고 나선다. 검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거칠면서도 날카로운 언어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신의 책임을 따져 묻지만, 재판장들은 신을 옹호하는 나그네의 논리와 신실한 믿음에 서서히 설득당하고 감탄하기 시작한다. 신과 가까운 성자이며 의인인 그에게 부림절의 기적을 베풀어달라고 간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학살자들의 칼이 문앞에 당도한 그때, 나그네가 누구인지가 알려진다.
- 1649년 2월, 부림절
작품은 1648 ~ 1649년 폴란드 남동부와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공동체를 덮친 대재앙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폴란드의 지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폴란드와 가톨릭교회에 불만이 쌓이자 봉기를 일으켰는데, 코사크인과 타타르인의 지원을 받은 하급 귀족 흐멜니츠스키가 앞장선 이 봉기는 곧 유대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게 된다. 가톨릭 신자인 귀족들과 그리스 정교회 신자인 농민들 사이에서 유대인이 중개인, 곧 마름 역할을 했던 터라 농민들의 적대감이 컸던 탓이다. 그리하여 바르, 나롤, 네미리프 등지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이루어졌고, 회당이 불탔다. 유대인 연대기는 300개의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고 1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위젤의 이 희곡은 집단학살이 이루어지던 바로 이때,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날인 부림절은 ‘제비’를 뜻하는 아카드어 ‘부르’에서 온 말로, 구약성서 에스더서에 기록된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크세르크세스 왕) 재위 시 총리였던 하만이 제비를 뽑아 날을 정해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던 음모에서 구제된 날을 기억하며 지키는 날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는데, 에스더서의 영웅인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고 하만의 이름이 나오면 야유를 퍼붓는다. 선물을 교환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즐거운 축제라는 점은 기독교의 성탄절과도 비슷하다. 이날에는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면서 떠들썩하게 보내는 것이 거의 종교적 의무처럼 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도 연극을 하거나 가면축제를 벌이곤 하는데, 독일어로 ‘푸림 슈필Purim Spiel’이라고 하는 부림절 연극을 하는 것이 17세기의 풍습이었다. 《샴고로드의 재판》은 이렇게 부림절에 연극을 하러 찾아온 유랑시인들이 연극 속의 관객들과 더불어 한바탕 벌이는 연극 속의 연극, ‘부림절 연극 속의 부림절 연극’이다.

- 신이 전능하고 선하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두는가?
‘본 희곡은 비극적 익살극으로 공연되어야 한다’고 한 첫머리의 지시문처럼, 이 작품은 무척 희극적이다. 어둡고 불안한 배경에 비해 각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대화는 다소 소란할 정도로 유쾌하다. 하지만 그들이 제기하는 물음은 깊고도 통렬하다. 검사와 변호사들 사이에 오가는 논고와 변론은 신정론(神正論)의 주요한 논변을 두루 다룬다. 그리고 이들 물음, 그리고 대답에 대한 되물음에는 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작가의 실존적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버지가 옆에 서서 자기 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조용히, 말없이 지켜볼 수 있단 말이오? … 그는 끼어들지 않는단 말이오?”(146쪽)
“그는 전능하오, 안 그렇소? 그는 그 힘을 희생자들을 구하는 데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소! 그러니 그가 누구 편이오? 살인자가 그의 은총 없이, 그와 공모하지 않고 죽일 수 있겠소?”(147쪽)
“구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그런데 누가 왔는지 아시오? 구원자? 천만에, 살인자들이었소.”(37쪽)
처음 출간되고서 3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는 여관 주인의 물음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말들에는 나치의 ‘최종해결책’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돌던 때 작가가 경험한 헛된 기대와 끔찍한 현실의 간극이, 또한 오늘 한국 사회의 가망 없는 희망과 차가운 현실의 괴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신에 관한 물음을 다루면서 고통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신을 믿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지만, 그 물음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에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신의 변호를 맡은 나그네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앞서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친구들처럼 신을 옹호하면서 ‘경건한’ 답변을 제시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답변이란 손쉬운 말,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들은 아니었던가. 때문에 신은 오히려 욥의 세 친구들을 꾸짖고, 자신에게 항변하는 욥을 편들어주지 않았던가. 이 작품은 압도적인 악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 현실 앞에서 인간의 신앙이며 경건이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원문은 불어이지만, 작가의 아내로서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마리온 위젤이 번역한 영역본 The Trial of God (Schocken Books, 2013)을 번역대본으로 사용했다. 영역본에 수록된 저명한 성공회 생태신학자 매튜 폭스의 후기를 수록해 이 작품이 제기하는 신학적 물음을 짚었다.

○ 추천평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신앙을 지켜갈 수 있을까? 고통과 눈물과 신음소리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어떤 생의 의미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나치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이 작품에서 대답 없는 침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질문을 던진다. 고통스런 질문 앞에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며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한다. _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부총장 겸 신학대학원장, 구약학)
인간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님을 재판대에 세우고 유죄로 판결하는 것을 불경한 상상력이라 타박만 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극한의 참상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절망적인 신음소리가 담겨 있다. 그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시 22:1)와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시 74:1)라는 절규를 연상케 한다. 이 책이 ‘현대판 욥기’라는 말을 듣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칭호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저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살아남으며 겪었던 신앙적 고뇌를 17세기 연극에 투영해 누구도 쉽게 답해서는 안 될 난제를 제시한다. 거기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참상을 겪고 있는 신앙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배어 있다. 이 책은 세월호와 같은 비극을 겪은 생존자들의 진짜 아픔이 무엇일지 이해할 실마리를 던져준다. _ 신국원 (총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불확실한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현실에서는 풍성하고 신실하게 유지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고통의 문제가 내 문제로 다가올 때 믿음이 작동한다면 참 좋으련만, 고통에 휘말려 정신을 잃기도 합니다. 누군가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계획이 있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또 이 과정이 의미 있을 거라고 말해줘도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이 과정을 겪을 수 있다면, 우리는 나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이런 의미에서 《샴고로드의 재판》은 ‘고통의 문제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서로 어떻게 바라보며 대해주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고, 우리에게 응답―바로 위로와 격려이겠지요―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과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울어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_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