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 모더니티
자크 아탈리 / 책담 / 2016.1.25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르틴 루터, 니체, 앤디 워홀까지 역사를 만들어온 그들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가?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의 긴급한 질문
우리는 왜 ‘미래의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하나의 사회를 상상해보자. 미래의 삶을 상상하는 건 점점 덧없는 일이 되어가는 사회. 젊은 세대일수록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사회. 무엇보다 순간의 즐거움이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갖고, 그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산-소비해야만 하는 사회. 아이들은 장래 가능성을 일찌감치 접어두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되며, 반대로 어른들은 자신의 욕구 충족과 권리만 주장하며 어린아이처럼 퇴행하는 사회.
‘헬조선’이 떠오르겠지만 이것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미식 비전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온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은 ‘컨템퍼러리 모더니티’의 특징이다. 지금 우리 세대가 지금의 특징을 갖게 된 건 고대 사회 이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과학적, 문화적 진보가 얽히고설킨 끝에 도달한 결과다. 따라서 점점 더 세계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이 시대에 미래를 추론하고 대비하는 일에는 지엽적 해결책보다 인문학적, 세계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탈리는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에서 인류 초기 사회부터 미래 세계까지 시대별로 한 사회가 이상향으로 추구했던 미래상의 변화를 추적한다. 이를 위해 역사를 일구고 투쟁해온 위대한 인물들과 그들의 사상을 한 줄기 ‘모더니티의 세계관’으로 꿰어낸다. 진보에 대한 열망이 처음 드러난 고대 문명부터 미래 비전이 찰나의 연속으로 사라져버린 컨템퍼러리 시대까지 인류사를 실존, 신앙,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시대로 구분해 삶의 방식과 시대정신의 변화를 살핀다.
이러한 성찰의 목적은 2030년의 세대는 과연 어떤 미래를 지향할지 예상하기 위해서다. ‘미래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얼핏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아탈리는 오늘날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 가치이자 결정적인 성취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이 한순간에 다른 가치들로 대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시대에 들끓는 목소리들을 통해 미래에 가능한 7가지 모더니티를 제시한다. 하이퍼, 민족, 신정정치, 복고, 생태, 비非, 대안적 모더니티가 그것이다. 아탈리는 그중 인류가 유전공학적 인공물로 변화한 끝에 소비재가 되고 마는 ‘하이퍼 모더니티’가 가장 유력하며, 다른 모더니티들도 스스로 갖고 있는 결함 때문에 결국 ‘하이퍼 모더니티’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한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대안적 모더니티’를 향한 좁고 험한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목차
서문
1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의 탄생 ―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 4세기 이전
인류 최초의 혁신 | 유대와 그리스 세계: 실존의 탄생 | 불복종으로부터 시작된 역사 |
신과 같은 자유로움의 모더니티 | 영원한 진보를 꿈꾸는 로마
2 신앙의 지배 속에서 피어난 이성 ―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 4세기―14세기
모데르누스 | 이성에 관대했던 이슬람 | 교회의 군림 | 이성이 이슬람 세계를 가로지를 때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의 귀환 | 기계 기술의 진보 | 여성, 정념, 패션
3 구시대와 모던을 넘어서는 이성 ― 신앙과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투쟁, 15세기―17세기
인쇄술에 대한 교회의 오판 |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유토피아 | 구시대인과 모던한 자의 갈등을 넘어
유행의 등장 | 새로운 세계를 알린 두 전령 | 신구논쟁이 촉발한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어떠한 제한도 없는 진보 | 신모던 인류의 탄생 | 계몽 정신과 빛
4 혁명과 민주주의, 좌파의 삼중주 ―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서곡, 18세기
진화의 혁명 | 음악에서의 모더니티 | 지식과 유통을 통한 진보 | 미국독립혁명: 시장 민주주의의 전조
프랑스혁명: 좌파와 우파의 탄생 | 모던한 국가의 탄생 | 풍습의 모던화
5 시장 민주주의는 새로운 복음인가 ―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승리, 19세기
개인의 독립에 대한 열망 | 모더니티! | 모더니즘: 새로운 것의 전통 |
부르주아식, 프롤레타리아식 모더니티 | 19세기식 신앙고백 | 이 시대의 이상한 아름다움
모던한 세계는 악몽인가 | 새로운 모더니티에 편입되는 여성들 | 이성을 강요하는 서양 사회
6 미래에 대한 모든 비전을 부정하다 ― 포스트모더니티, 19세기 말―1960년
허무주의, 환멸의 모더니티 | 부자들을 위한 폐쇄된 클럽 | 전쟁과 전체주의 | 웃음거리 예술
포스트모더니즘과 과학소설 | 홀로코스트 이후의 미래 | 이성의 회귀 | 유일한 미래 구상으로서의 건축
7 나열된 순간의 연속으로 사라지는 역사 ― 컨템퍼러리, 1960년―현재
미래는 없다 | 어른이 다시 아이가 된 시대 | 영화와 미래학 | 변덕스러운 쾌락과 광고
불안정성에 대한 패션의 저항 | 전 세계의 서양화 | 모더니티를 조롱한 컨템퍼러리 아트
이것은 역사의 한 순간이 아니다
8 2030년에는 어떻게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
하이퍼(인공물) 모더니티 | 비非모더니티 | 복고 지향적 모더니티 | 민족 지향적 모더니티
신정정치神政政治 지향적 모더니티 |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 | 대안적(이타적) 모더니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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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회 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자크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태어나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열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공과대학, 파리고등정치학교, 국립행정학교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소르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계와 정계, 국제기구를 넘나들며 활동하였고 1974년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을 맡아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탈리는 10여 년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직을 거친 후 유럽부흥개발은행을 설립하여 총재직을 맡았다. 현재는 아탈리 자신의 이름을 건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 정치인, 행정관료 등을 두루 거친 아탈리의 탁월한 혜안과 과학적인 분석은 프랑스 지성계를 넘어 전 세계의 방향타가 되었다.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예측을 담은 그의 저서들은 학자로서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주고 있다. 한편 아탈리는 한 인물에 깊게 파고들어 전기傳記를 쓰는 일에 매혹되었는데 이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에 대한 충실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서로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등이 있다.
– 역자 : 양영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제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와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을 지냈다. 옮긴 책으로 『철학자의 식탁』,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혼자가 아니야』,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 『페스트와 콜레라』, 『상뻬의 어린 시절』, 『탐욕의 시대』, 『잠수복과 나비』, 장 지글러의 전작 『탐욕의 시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빼앗긴 대지의 꿈』을 번역했으며 『미래중독자』, 『물의 미래』, 『빈곤한 만찬』, 『식물의 역사와 신화』, 『빨간 수첩의 여자』,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센트럴 파크』, 『잠수종과 나비』, 『공간의 생산』, 『그리스인 이야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또한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옮겨 갈리마르 사에서 출간했다.

○ 책 속으로
“모더니티”라는 용어 자체는 그 뒤에 이어진 세기, 즉 19세기 초 발자크의 펜을 빌어 프랑스어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모더니티는 하나의 시대, 하나의 문명, 미래를 바라보는 하나의 개념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기술과 산업의 진보에 대한 신념 등이 혼재되어 있다. 모더니티란 또한 정복이기도 하다. 정복을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오귀스트 콩트에게는 과학, 생시몽에게는 산업, 마르크스에게는 계급투쟁, 토크빌에게는 사회적 조건의 평등화와 민주주의, 막스 베버에게는 합리화가 각각 그 동력이었다.
19세기 말, 모더니티에 대한 이 같은 새로운 의미에는 또 다시 이의가 제기된다. 제일 먼저 반기를 든 건 사회주의를 주장한 푸리에와 프루동, 마르크스 등이었다. 이들을 필두로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새로운 형태, 즉 소외와 사유재산의 전횡에서 해방된 새로운 부류의 인간을 상상하고 그러한 인간의 탄생을 목적으로 삼는 다양한 형태의 모더니티들이 등장하게 된다.
한편 니체와 더불어 “허무주의”라고 불리는 또 다른 형태의 반발도 시작되었다. 허무주의는 훗날 썩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대체된다. 니체 중심의 반발 움직임은 음악과 회화에서도 관찰된다. 이는 미래의 의미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가올 20세기는 실존, 신앙,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패배를 맛보는 세기가 될 것이라는 직관에 가까웠다. — 「서문」 중에서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 등장한 이슬람은 새로운 일신교 계시로서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형태로 인식된다. 이슬람은 앞서 유대교와 그리스 세계가 그랬듯이, 과학적인 지식을 포함한 모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이 이 새로운 계시와 상반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밀고 나간다.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바라는 바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코란》에서는 지식의 진보를 추구하고 물질적인 삶을 향상시키는 걸 금지하지 않는다. 예언자 자신이 “과학이 궁극적으로 기도보다 유용하다”, “악마에게 대항하는 데 있어서 과학을 하는 단 한 명의 인간이 천 명의 맹신자들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코란》은 우주, 즉 “의미심장한 예술 작품”을 해독하라고 촉구한다. 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발명품인 논리학의 힘을 빌리는 것을 허락한다. 《코란》이 함축하고 있는 보수적인 풍습이라는 제한적인 울타리 안에서나마 인간의 진보가 다시금 미래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 「신앙의 지배 속에서 피어난 이성」 중에서
보들레르에게 모더니티란 자신들이 몸담고 사는 시대를 사랑하고 이를 예찬하려는 의지를 뜻했다. 그는 “전적으로 모던해져야” 하며 근엄하고 신성불가침한 고전주의의 예술 규범으로 이를 비판하지 말고 내가 사는 시대가 표방하는 “이상한bizarre” 아름다움의 신봉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던한 화가라면 더 이상 고대식 복장을 한 인물들을 그리지 말고 현재에 사는 인물들을 보여주어야 하며, 사실 현재라고 해도 화폭에 인물을 담는 순간 그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고 만다고도 말했다. 그는 모더니티에 대한 유대 그리스식 개념을 다시금 인용하면서 “문명이란 원죄의 흔적을 지워가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 「시장 민주주의는 새로운 복음인가」 중에서
모든 것은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독일의 젊은 문헌학 교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니체는 1880년부터 줄곧 고독한 방황 속에서 그가 보기에 서양의 미래라고 짐작되는 것을 비판했다. 그에게 현대 시대가 지닌 실재적인 의미는 곧 그가 “허무주의”라고 이름 붙인 무無에 대한 열망이다. 그에 따르면 이 열망은 특히 서양으로 하여금 신을 이 세계의 지평선에서 제거하도록 이끌었고, 그 결과 모든 가치가 산산조각 났다. 니체는 1882년(그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고,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었다)에 발표한 《즐거운 지식》에서 “우리가, 당신과 내가 그를 죽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살해자다!”라고 외쳤다. 니체가 보기에 서구의 새로운 모더니티, 즉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는 “최후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최후의 인간”은 말하자면 모든 권리를 향유하고자 하나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책임감은 짊어지려 하지 않으며, 물질적인 사실들은 기꺼이 믿으려고 하나 신은 믿지 않는 인간이다. 그런데 신의 시선 안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란 “원한을 품은 인간”으로, 이들은 삶이 주는 고통에 대해 복수하려 들며 과학에서만 희망을 찾는다. 이러한 세속적 모더니티는 세계를 환멸로 몰아간다. — 「미래에 대한 모든 비전을 부정하다」 중에서
컨템퍼러리 모더니티의 완벽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패션은 항상 미친 듯이 새로운 것만 퍼 올리는 양수기처럼 기능한다. 컬렉션 제작 스케줄과 패션쇼 스케줄에 맞춰 경영되는 패션은 몇 주일이나 심지어는 불과 며칠을 단위로 현기증 나게 돌아간다. (…) 모더니티는 스타일이며, 이는 우아함과 혼동될 수 없다. 스타일은 눈에 띄는 것인 반면 우아함은 드러나지 않는 조심스러움이다. 신경증적이며 자살로 몰아갈 듯한 불안정성에 저항하기 위해 패션은 1980년대 중반부터 스스로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패션 박물관들이 앞다투어 문을 여는가 하면, 유명 디자이너 부티크들은 과거 컬렉션 의상들을 사들여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들을 한자리에 수집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신속하게 바뀌는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된 자료들을 수집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홍수가 나기 전에 방주를 준비한 노아처럼. — 「나열된 순간의 연속으로 사라지는 역사」 중에서
미래에는 남들이 자기와 같은 네트워크에 참여해주어야 나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점을 점점 더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행복은 자기가 소유한 물건의 수보다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수에 좌우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타인들, 특히 미래 세대들이 전염병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시장에 나온 상품을 구입할 수 있으려면 가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네트워크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소통을 위해 동일한 수준의 노마드 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모두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 「2030년에는 어떻게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르틴 루터, 니체, 앤디 워홀까지 역사를 만들어온 그들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모더니티는 일반적으로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화를 지칭할 때 쓰이는 ‘모더니즘’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모더니티란 한 사회가 상상하고 지향하는 미래상이다. 모더니티를 표현할 적절한 용어는 없었으나 개념은 분명했던 고대 시대부터, 발자크에 의해 “모더니티”라는 표현이 처음 쓰였던 19세기를 지나, 컨템퍼러리에 의해 모던이 대체된 현재까지 아탈리는 모더니티의 어원과 의미의 변화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문명권과 언어권에서 모더니티가 지녀온 다양한 의미의 굽이를 따라간다는 것은 적재적소에서 인간의 삶을 조건 지어온 비밀들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각각의 인간 집단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애써 물리치고,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어울리는 것은 한껏 고양시키며 기어이 이루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온 방식을 구별해보는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부터 가치관, 이상향, 미학적 관점, 분노를 일으키는 주제들, 진보의 개념, 경제 구조, 기업관, 정치체제, 풍습 등의 변화를 추론하는 것이기도 하다.”(서문 중에서)
모더니티는 한 사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미래상이기에 지금껏 정치적, 예술적, 윤리적 투쟁의 목표가 되어왔다. 투쟁의 주체는 시대와 불화하고 다른 유토피아를 주장함으로써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왔던 위대한 인물들이다.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의 칼 끝이 매서웠던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의 시대에 이성으로 세계를 인식하려 했던 그리스 철학을 복권시켰다.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발명한 것뿐, 진리는 과학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시대를 선언했다. 반면 니체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창의성을 파괴하는 집단본능을 주입했고 그런 시대에 더 나은 미래란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포스트 모더니티 시대를 예고했다. 그리고 지금, 미래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컨템퍼러리 시대에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또 다른 형태로 돌아와 모든 속박과 계약으로부터 해방을 외치는 예술이 넘쳐난다. 1961년 피에로 만초니는 말 그대로 ‘예술가의 똥’을 30그램씩 통조림 깡통에 담아 팔았다.
– 모더니티의 세계관으로 인류사를 꿰어낸 지식의 향연!
이처럼 아탈리가 좇는 모더니티 역사 탐험에 동참하는 것은 ‘세상을 바꾼 인물들’이 역사의 맥락에서 왜, 어떤 중요성을 지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는 지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정치, 경제, 철학, 예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탈리는 미래를 직조해온 인물들과 그들의 저작들, 작품들을 시대를 초월해 연결하고 모더니티라는 인류 진보의 궤적 아래 정렬한다.
자연스레 그들이 주장한 유토피아들이 한데 뭉치고 세력화되어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가령 신구논쟁은 단순히 학구적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지지자 대 교회 옹호 세력의 갈등을 통해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를 촉발시킨 계기였고, 프랑스혁명은 최초로 각각 이성과 신앙에 기반을 둔 좌파와 우파를 탄생시켰으며, 미국독립혁명은 유럽에서 6세기 동안이나 온갖 고초 속에 구축되어오던 정치적 모더니티의 실현이었다.
역사 속 모더니티를 되짚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다. 어떤 윤리적, 철학적 비전도 격변하는 기술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에 인류는 과연 불멸을 향한 욕망을 달성할 것인가?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정녕 파멸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래의 우리가 무엇을 이상향으로 두고 살아갈지를 지금 예측하는 것. 즉 모더니티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 독자의 평 1
‘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p.17
유사이래 인류는 더 이상 반복적인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두 손에 꽉 움켜쥔 채 이를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그 이후 인류가 빠져든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출구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가능하긴 하나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매우 낮다. 예술은 이타적 모더니티가 도래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30년의 세계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는 이제부터 살펴볼 모더니티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그 견해를 지지하는 세력이 벌이는 각축전에 달려 있다. 이 시기에 인류가 2060년을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생산하고 투쟁을 벌이는 방식이 좌우된다는 말이다. p.20

○ 독자의 평 2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을 모더니티라 하며 처음 나타난 것은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다. 즉 지난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시대를 거쳐 기독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신앙적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이어서 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찾기 위한 신흥 부르주아의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중세에 새롭게 대두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혁명을 거치면서 미국이 독립하게 되고 미국의 독립으로 생겨난 시장민주주의가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승리라 한다면 그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티 즉 허무주의 사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때 구세력 유지를 위한 우파와 새로운 변혁을 꾀하는 세력의 좌파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난 상업적 민주주의는 욕망을 부추기는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적이라는 탈을 쓴 찰나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컨템퍼러리 모더니티는 의무라고는 없고 권리만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 사회가 보이는 행태가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아적 모더니티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화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p.17)”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실존지향적 모더니티, 신앙지향적 모더니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이렇게 세 가지 모더니티의 지배를 거치고 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더니티란 서구화와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서구화는 무엇보다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유린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점진적으로 인공물로 변형시킴으로써 이를 ‘상품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공 보철 기구가 모더니티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단계인 ‘하이퍼 모더니티’로 이행하게 만든다.
이렇게 편리함만 추구하여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상황에서 저자는 “오직 한 가지, ‘이타적 모더니티’를 통해서만 인류는 정체성과 창의성, 자유를 동시에 유지해나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매우 좁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좁다.(p.9)”고 주장한다.

○ 독자의 평 3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을 모더니티라 하며 처음 나타난 것은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다. 즉 지난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시대를 거쳐 기독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신앙적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이어서 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찾기 위한 신흥 부르주아의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중세에 새롭게 대두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혁명을 거치면서 미국이 독립하게 되고 미국의 독립으로 생겨난 시장민주주의가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승리라 한다면 그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티 즉 허무주의 사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때 구세력 유지를 위한 우파와 새로운 변혁을 꾀하는 세력의 좌파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난 상업적 민주주의는 욕망을 부추기는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적이라는 탈을 쓴 찰나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컨템퍼러리 모더니티는 의무라고는 없고 권리만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 사회가 보이는 행태가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아적 모더니티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화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p.17)”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실존지향적 모더니티, 신앙지향적 모더니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이렇게 세 가지 모더니티의 지배를 거치고 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더니티란 서구화와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서구화는 무엇보다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유린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점진적으로 인공물로 변형시킴으로써 이를 ‘상품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공 보철 기구가 모더니티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단계인 ‘하이퍼 모더니티’로 이행하게 만든다.
이렇게 편리함만 추구하여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상황에서 저자는 “오직 한 가지, ‘이타적 모더니티’를 통해서만 인류는 정체성과 창의성, 자유를 동시에 유지해나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매우 좁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좁다.(p.9)”고 주장한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당시 10여 년간 특별보좌관직을 맡았으며, 1990년대에는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초대 총재를 지내기도 한 저자는 <미래의 물결>, <세계는 누가 지배 하는가> 등 미래 세계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이 책은 ‘모더니티’라는 개념의 역사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역사의 각 단계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장래를 생각하고 준비해왔는지를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사람들이 모더니티를 대하게 될 방식을 유추해보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