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54)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가서 2
선지자 미가의 고향
선지자 미가의 고향은 블레셋의 성읍 가드의 경계에 있는 모레셋으로 나타난다 (미가 1:1). 가드의 동쪽 11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모레셋 가드는 ‘가드의 소유’(possession)라는 뜻이다.
미가의 사역 시기
미가는 요담이 다스리던 때에 사역을 시작했고 743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던 시대에 예언을 하였을 것이다. 요담이 736년에 죽었고 아하스가 728년까지 다스렸다. 그 다음에는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미가의 예언이 계속되었을까. 이것은 쉽사리 단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히스기야의 치세기간이 728-696년인데 이 모든 기간동안 계속 예언을 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예레미야의 미가에 대한 언급
미가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렘 26:12-24 (특히 18절 및 19절 상반절)에 보면 미가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목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예레미야의 말씀이다 (렘 26:18-19상).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유다 고관들과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그 말씀을 전할 때 핍박을 받아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죽일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여호와 앞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고관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죽일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장로 몇 사람도 선지자 미가와 선지자 우리야의 예를 들면서 말하기를, 과거 히스기야 왕 때 미가 선지자가 심판을 예언하였고 히스기야왕이 회개하자 여호와께서는 심판의 뜻을 돌이키셨다, 여호야김 왕 때 우리야도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는데 여호야김이 우리야 선지자를 죽이려 하자 애굽으로 도망을 갔고 도망갔던 사람을 다시 잡아와서 여호야김이 그 선지자를 죽였다고 말하였다 (렘 26:20-23). 이러한 상황에서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도와서 백성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몇 가지가 생긴다. 즉, 첫째로, 미가 선지자는 미가 1:1이 나타내는 정보외에도 그의 존재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성경의 다른 구절 렘 26:18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전 8세기의 다른 선지자들, 아모스, 이사야, 호세아, 요나 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다. 둘째로, 미가 선지자는 1세기 반 정도 (약 150년) 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유다 지도자들의 뇌리에 남아 있던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에누리 없이전하였고 히스기야 왕이 회개하도록 여호와께 사용된 말씀의 사역자였음을 시사한다. 셋째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어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이 시대마다 많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는 보이지 않으나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 뿐 아니라 우리야와 같이 말씀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이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참 선지자의 말은 살아 있다
따라서,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우리는 8세기 선지자 미가의 전한 말이 예레미야의 심장에 아로새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미가의 전한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참 말씀은 다른 참 말씀을 낳으며, 참 성령의 역사는 진실된 또다른 성령의 역사를 낳는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가 다르다는 것이요, 그 말씀과 그 성령의 역사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미가나 이사야의 말씀을 그 후 시대가 다르지만 예레미야가 전했고, 예레미야의 전한 말씀을 토대로 그 후 시대가 다르지만 다니엘이 그 말씀을 전하였다.
이런 모습은 종교개혁 전후에도 나타난다. 존 위클리프의 말씀을, 그 후 시대가 다르지만 얀 후스가 동일한 말씀을 전했고, 얀 후스의 말씀을 그 후 시대가 다르지만 마틴 루터나 멜란히톤이 전했으며, 또 그 말씀을 쯔빙글리나 불링거가 전했으며, 또 그 말씀을 칼뱅, 파렐, 부처, 낙스가 전하였다. 그리고 시대는 다르지만 그 말씀을 존 웨슬리나 죠지 휫필드가 전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살리는 말씀이었고 생명의 영의 역사를 따라 된 것이었다. 이것은 빛과 생명의 전이요, 더 풍성한 말씀을 낳고, 더 풍성한 열매들을 거둔다. 다만 문제는 이 참 말씀을 받는 이들이 회개하며 그 말씀에 뿌리를 내려 결실하는가이다.
한국의 개신교 역사에 이 원리를 적용한다면, 초기 복음적 선교사들이 전한 말씀이 한국의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뿌려졌고, 이 말씀을 받은 자들이 그 말씀을 전하여 한반도에 불로 떨어졌는데, 이를 그 후의 목회자들과 전도자들이 그대로 받아 다시 전하였다. 이제는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할 일은 무엇인가. 그 순전한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더 풍성한 말씀의 역사를 사모하며 우리가 전하는 일이다. 변함없는 그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여 이 세대가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전하는 일이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yunghun.choi@ac.edu.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