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의 신학논단 : 천로역정강해 (제4강의)
아폴리온과의 싸움 : 순례자의 길에 나타난 영적 전쟁
1. 아폴리온과의 싸움: 순례자의 길에 나타난 영적 전쟁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 에서 기독도 (Christian)가 경험하는 사건들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신학적으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겸손의 골짜기 (Valley of Humiliation)에서 아폴리온 (Apollyon)과 싸우는 장면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모험 이야기나 상징적 환상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는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기독도는 십자가 앞에서 죄의 짐이 벗겨진 후 새로운 자유와 기쁨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의 순례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부터 진정한 신앙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는 겸손의 골짜기를 지나가던 중 갑자기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무서운 존재를 만나게 된다. 바로 아폴리온이다. 아폴리온이라는 이름은 성경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파괴자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으로, 사탄의 권세를 상징한다.
아폴리온은 기독도를 노려보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원래 나의 나라에 속한 자였다.
너는 나의 종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떠나 다른 왕을 섬기려 하는가?
돌아와라. 그러면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
기독도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담대하게 대답한다.

“나는 전에 당신의 종이었지만
지금은 하늘의 왕을 섬기는 사람이다.
나는 그분의 나라로 가는 길을 떠났다.”
그러자 아폴리온은 기독도의 과거를 들추며 그를 정죄하기 시작한다.
“너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아니냐?
너는 여러 번 넘어지고 실패하지 않았느냐?
그런 사람이 어떻게 천성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기독도는 잠시 흔들리지만 다시 말한다.
“맞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왕은 자비로우신 분이다.
그분은 나를 용서하셨다.”
이 대화는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양심과 믿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적싸움을 상징한다. 결국 아폴리온은 분노하여 공격을 시작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기독도는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검을 붙잡고 끝까지 싸운다.
청교도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적인 영적 싸움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에게 신앙은 단순한 감정이나 종교적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과 죄의 권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제적인 투쟁이었다.
인간의 마음에는 여전히 죄의 욕망이 존재한다. 신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교만, 욕심, 두려움, 불신과 싸워야 한다. 청교도 신학자 John Owen은 이를 “죄를 죽이는 삶”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고전이된 그의 책 The Mortification of Sin (1967 개정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죄를 죽이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너를 죽일 것이다 (p.9).”이 말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가 성화의 과정 속에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지속적인 영적 싸움을 잘 보여준다.
성경도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갈라디아서 5:17)
따라서 성화는 단순한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죄를 죽이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영적 전쟁의 과정이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인간의 의지나 능력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승리의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영적 전쟁에서 사용되는 성령의 검이라고 불린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7)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싸울 때 아폴리온은 결국 물러난다. 이는 번연이 말하려는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인간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할 때 이루어진다.
2. 영적 전쟁의 무기: 하나님의 전신갑주
청교도 신학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순한 종교적 삶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삶으로 이해되었다. 신앙인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죄와 유혹, 그리고 수만은 도전과 맞부디치며 살아간다. 이를 가르켜 청교도신학은 상징적 표현으로 사탄아폴리온의 공격이라고 부른다.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이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영적 무기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이다. 기독도가 아름다운집 교회에 머물 때 힙혀준 갑옷이였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적시한 전신갑주는 천로역정에서는 교회를통하여 받은 선물의 갑옷이였다. 이 일은 끊임없이 교회가 성도들에게 제공해야하는 영적 훈련이였다.
에베소에 기록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는 너희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6:11). 바울은 로마 군인의 갑옷을 비유로 사용하여 신앙인이 가져야 할 영적 무장을 설명한다. 그는 여섯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첫째는 진리의 허리띠이다. 허리띠는 군인의 모든 장비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청교도들은 이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해하였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중심으로 삶을 세워야 한다. 거짓과 혼란이 많은 세상 속에서 진리는 신앙인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이 된다.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이며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며 영생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 요한 11:25) 였다.
둘째는 의의 흉배이다. 흉배는 가슴과 심장을 보호하는 갑옷이다. 청교도 신학에서 의는 인간의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의미한다. 신앙인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보호받는다. 이는 죄책감과 정죄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준다. 신약 신학에서 δικαιοσύνη (dikaiosyne)는 “의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의을 말한다. 청교도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의 (Righteousness of Christ)로 이해하였다. 즉 신앙인은 자신의 의로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보호받는다. 가슴을 타고 들어오는 온갓 의심과 절망 슬품은 우리를 의롭다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질 때 사라지며 사탄은 우리 가슴을 정복하지 못한다.
셋째는 평안의 복음의 신이다. 군인의 신발은 전쟁에서 안정적으로 서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청교도들은 이를 복음에 대한 확신과 평안으로 이해하였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 평안은 평화와 온유 같이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화평하는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되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화를 위하여 부름받은 군인들이다.
넷째는 믿음의 방패이다. 바울은 믿음을 “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는 방패”라고 설명한다. 청교도 신학에서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확신이다. 헬라어 πίστις (pistis)는 믿음을 의미한다. 헬라어에서 pistis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신뢰, 신실함, 의존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이 믿음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보여준 신앙의 태도였다. 아브라함의 신앙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신앙공동체의 첫번 계약관계가 성립되였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의 순례의길과 그 후손을 지켜주시는 방패가 되시였다. 사탄은 의심과 두려움을 통해 신앙인을 공격하지만, 하나님이 그를 믿는 백성을 지켜주시며 그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신다.
다섯째는 구원의 투구이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한다. 청교도들은 이를 구원의 확신으로 이해하였다. 우리의 머리 생각을타고 들어오는 온갓유혹을 구원의 투루를 쓰고 물리쳐야 한다.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고 보호하시며 함께한다는 확신을 가질 때 낙심과 절망은 사라진다.
여섯째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사도 바울은 Epistle to the Ephesians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적 전쟁으로 설명하며 마지막 무기를 이렇게 말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7)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검을 뜻한 마카리아 (μάχαιρα <machaira>)이다. 이 단어는 로마 군인이 사용하던 짧은 칼을 의미한다. 이 칼은 멀리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라 가까운 전투에서 사용하는 무기였다. 바울이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영적 전쟁이 추상적인 싸움이 아니라 신앙인의 마음과 삶 속에서 매우 가까이 일어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유혹, 의심, 두려움, 절망, 죄의 유혹은 모두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또한 바울은 이 검을 성령의 검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퓨뉴마 πνεῦμα (pneuma)는 성령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인간의 지식이나 철학이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어서 이 검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것은 레마 쎄우 ῥῆμα θεοῦ (rhema theou)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울이 로고스 λόγος (logos) 대신 레마 ῥῆμα (rhema)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로고스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의미한다면, 레마는 성령의 계시로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하게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처하여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줄을 모를 때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여 그 말씀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케하는 지혜를 갖게 한다. 이 말씀은 전광석 같은 것으로 성령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곧 레마이다.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의 유혹에 맞서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특수상황 속에서 말씀을 적용하여 사용하시였다.
“기록되었으되…” (마태복음 4장)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마다 이 말씀으로 응답하셨다. 사탄이 성경을 인용하며 예수를 시험했지만, 예수께서는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사탄의 도전을 물리치셨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사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3. 일상생활에서 깨닫게 되는 말씀 : 레마
여기에서 레마라는 말을 오해하지 않도록 다시한번 요약 하려고 한다. 이 말은 비밀 언어가 아니다. 신앙인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보편적 언어이다. 위에 것을 다시 요약하면 성경 전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때 우리는 보통 로고스(λόγος) 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 곧 하나님의 계시 전체를 의미한다. 때로는 로고스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철학적 용어이다 (요한 1장 1절).

즉 레마는 단순히 성경 구절을 기억하는 차원을 넘어, 성령의 역사 속에서 새삼스럽게 마음에 충격과 감동으로 이해되는 말씀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성경 구절이 갑자기 마음 깊이 울려오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말씀이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을 밝히 비추며 큰 힘과 확신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순간이다.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레마, 곧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밝혀 주시는 살아 있는 말씀의 경험 이라고 부른다. 요한복음 14:26에서 “성령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하셨다.
청교도들은 일상생활에서 말씀 연구를 매우 중요시 하였다. 이를 가르켜 건강한 영적 군인의 훈련이라고 한다. 그들은 신앙인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마음에 성찰할 때 성령님이 그 말씀을 사용하시여 우리로 하여금 건강한 영적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다 하였다. 천로역정에서 기독도는 항상손에 성경을 들고 다니는 모습으를 보여준다. 위기 때마다 성경의 가르침이 기독도의 순례여정을 인도하고 있다. 신학적으로 “레마 (ῥῆμα)”는 성경의 어떤 특별한 비밀 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 현재적으로 들려지고 적용되는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Karl Barth가 설교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으로 일어난다 (The Word of God as event)”는 개념과 깊이 연결된다. 바르트에 따르면 성경은 단순한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들려진다. 즉, 말씀은 읽히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현재적으로 말씀하시는 살아 있는 만남의 사건이 된다.
또한 John Calvin은 성경의 권위와 확신을 설명하면서 “성령의 내적 증거 (testimonium Spiritus Sancti)”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칼빈에 따르면 성경은 단순한 외적인 글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실 때 그 말씀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되고 받아들여진다. 즉, 말씀은 눈으로 읽는 텍스트를 넘어, 성령께서 마음을 밝히실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진리로 경험된다. 이러한 바르트와 칼빈의 이해를 종합하면, 레마는 단순히 특정 구절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적용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레마는 성경과 분리된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기록된 말씀 (로고스)이 성령의 역사 속에서 현재적이고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의 경험을 의미한다.
결국 아폴리온과의 전투는 신앙의 현실을 매우 정직하게 보여준다. 신앙인은 여전히 연약하고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싸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순례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순례자는 자신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붙잡고 싸운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이루신 승리를 은혜로 누리는 승리를 전제로한 싸움이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승리의 사실을 알려주시며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위로하시며 확신을 가지게 하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승리 대장되신다. 우리는 이렇게 찬양한다. “ 믿는 사람들은 군병같으니 … 우리 대장 예수 기를 가지고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니다 (찬송 389)”.
그러므로 우리는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승리를 누리며 적과 싸우며 순례하는 기독도이다. 다음 장에서는 허영의 시장 (Vanity Fair)을 통과하는 기독도의 순례 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주에 계속)

이상택 목사
(아오나 콜럼바 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