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16
원
하람이가 옆에서 자고 있는데 다시 깨우고 싶을 만큼 그 모습이 귀엽다. 코가 살짝 막혀서 들리는 작은 코골이도 또 꿈속에서 뭘 맛있게 먹는지 연신 오물거리는 입술도 앙증맞고 굳이 잘 때 양말을 꼭 신어야 한다며 우겨서 신은 노란색 덧신도 사랑스럽다. 요 근래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하게 나면서 하람이가 기침이 잦아져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배숙을 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면서 맛도 좋았다. 먼저 냉동실에 있던 대추와 약간의 도라지를 깨끗하게 씻어 준비한다. 생강을 추가로 더 넣어도 좋다. 배는 뚜껑으로 덮을 윗부분을 잘라둔 후 안쪽에 씨를 깨끗하게 발라놓고 미리 준비한 대추와 도라지를 알맞은 크기로 채 썰어 주는데 하람이는 대추를 좋아하므로 조금 넉넉하게 양을 잡았다. 재료준비가 다 끝났다면 이제 배의 빈부분에 모든 재료를 채워 넣은 후 마지막으로 꿀을 넉넉하게 넣어 밑 부분이 오목한 접시위에 올려놓고 냄비에서 끓이기만 하면 된다. 끓이면서 배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오목한 접시가 좋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줄이고 1시간 정도만 더 끓여 주면 완성!
어느덧 오목한 접시에는 투명하면서도 진한 배 즙이 우러나 있다. 푹 익은 배와 속 건더기도 함께 먹으면 더욱 맛이 있다. 약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아이 몸에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게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밥을 먹고도 중간 중간 하람이가 출출해 하면 나는 또 군밤이며 가래떡, 고구마 등등 예전엔 귀찮아서 먹지도 않던 간식들을 부지런히 준비한다. 신랑은 가끔 아침을 찬 우유에 씨리얼로 때울 때가 많지만 하람이 에게는 늘 따뜻한 국과 달걀 후라이를 먹이는 게 내 바쁜 아침 일상중의 하나다. 어릴 적에는 매운 국을 먹지 못해 따로 국을 끓이곤 했는데 요즘은 컸다고 우리가 먹는 것도 야금야금 잘 먹는다. 그래서 조금은 편해진 식사시간. 이렇게 하람이는 커가고 있다. 이런 내 정성과 사랑을 과연 아들은 알고나 있을 런지 그저 곤하게 자기만 한다. 문득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이 났다. 호주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여러 사정으로 오랫동안 한국에 가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나또한 한국에 못간지 벌써 3년은 넘은 것 같다. 사랑은 아래로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과연 나는 부모님께 어떤 자식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릴 적 3교대를 하며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사셨던 아버지. 다정하시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분이셨다. 야간 근무를 하고 오시는 날에는 꼭 빵 몇 개와 우유를 집에 가져오셔서 우리 삼형제에게 무심하게 주시곤 하셨는데 아마도 늦은 밤. 근무자들에게 간식으로 나온 것을 굳이 자식들에게 주시려고 출출한 배를 참으시며 챙겨오셨으리라. 그것도 모르고 빵에 팥이 들어가서 싫다 너무 딱딱하다 하며 불평이었던 나. 어머니는 부업을 하며 늘 부지런히 움직이던 주부셨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머니는 분수에 맞게 사는 법을 몸소 보여 주셨고 늘 가계부를 적으시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그렇게 자식3명을 다 대학에 보내고 집도 마련하셨다. 결혼하고 호주로 오는 바람에 부모님께 효도한번 제대로 못한 내가 하람이에게 이렇게 정성을 다할 때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 나도 하람이의 엄마고 부모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기대고 하소연 할 수 있는 부모님이 옆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밤에는 인터넷쇼핑몰에라도 들어가 구정도 다가오고 하니 부모님께 고기라도 보내야 겠다. 내 자신의 삶을 위해 부모님께무심 했던 내 자신. 또 나 혼자 호주에서 한국에서는 비싸다는 망고와 아보카도를 헤프게 먹은 것도 오늘밤에는 죄송하기만 하다. 부모님께 이제껏 받은 사랑만큼 나도 하람이에게 사랑을 흘려 보낸다. 받은 사랑은 이처럼 밑으로 흘러 둥글게 원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