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6월 20일, 프랑스 비평가로 ‘프랑스 자연주의 선구자’ 쥘 드 공쿠르 (Jules Alfred Huot de Goncourt, 1830 ~ 1870) 별세
쥘 알프레드 위오 드 공쿠르 (Jules Alfred Huot de Goncourt, 1830년 12월 17일 ~ 1870년 6월 20일), 프랑스의 비평가로서 형 에드몽 드 공쿠르와 함께 집필 활동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쥘 드 공쿠르 (Jules Alfred Huot de Goncourt)
.출생: 1830년 12월 17일, 프랑스 파리
.사망: 1870년 6월 20일, 프랑스 뇔리-오뙤이-빠씨
.묘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
.학력: Lycée Condorcet
.형제자매: 에드몽 드 공쿠르
.수정된 작품: Geschichte der Marie Antoinette 등
사망하기 전까지 주로 쥘이 글을 쓰고 에드몽은 옆에서 도와 준 것으로 전해지며, 쥘이 형보다 날카로운 비판력을 가졌다고 조르주 상드는 그녀의 일기에서 회고하고 있다.
형인 에드몽 루이 앙투안 휘오 드 공쿠르 (Edmond Louis Antoine Huot de Goncourt, 1822년 5월 26일 ~ 1896년 7월 16일)도 프랑스의 비평가로서 동생 쥘 드 공쿠르와 힘을 합하여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에드몽이 사망한 후 오늘날 프랑스의 가장 값진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공쿠르상이 빛을 보게 되었다.

○ 공쿠르 형제 ; 에드몽 드 공쿠르 (Edmond de Goncourt, 1822∼1896), 쥘 드 공쿠르 (Jules de Goncourt, 1830∼1870)
당시 명문가 출생으로 형 에드몽 (Edmond de Goncourt, 1822 ~ 1896)은 내향적인 공상가였고, 동생 쥘 (Jules de Goncourt, 1830 ~ 1870)은 정열적인 활동가였다.
두 사람 모두 병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이 형제는 동생이 죽을 때까지 합작의 형식으로 작품을 썼고, 주로 형이 작품을 구상하면 동생이 문체를 다듬었다.
그들은 “역사가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현재를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정밀한 찰기록에 입각한 소설을 썼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묘사, 생물학적 접근으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도 평가받으며, 특히 실제 파리 하녀의 삶을 그린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자연주의 문학의 시작을 고하는 서문과 묘사가 인상적이다.
동생이 죽은 후로는 형이 단독으로 집필을 계속하여 소설을 썼다.
동생과 함께 썼던 『일기』는 19세기 후반기의 풍속과 문단에 관한 귀중한 자료이자 일기문학의 걸작이다.
‘공쿠르 상’은 에드몽의 유언에 의한 것으로 그들의 유산으로 1903년에 설립되었다.
매년 12월 파리의 드루앙 (Drouant) 레스토랑에서 ‘공쿠르 상’의 수상자가 발표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50프랑을 수여한다.
2002년부터는 유로화로 바뀌면서 10유로로 결정되었다.
상금은 상징적인 액수에 지나지 않지만, 역대 수상작은 평균 60만 부 이상 팔리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프루스트, 앙드레 말로, 시몬느 드 보부아르, 미셸 투르니에,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프랑스문학의 거장들이 공쿠르상을 수상했거나 공쿠르상 수상을 계기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 공쿠르 형제의 작품들
이들의 처녀작인 소설 《18××년에 (1854)》가 실패했고 저널리스트·극작가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뒤 프랑스 18세기에 관한 문헌과 사료를 섭렵하여 《대혁명기의 프랑스 사회사 (1854)》, 《18세기의 미술 (1859∼75)》 등의 역사연구서를 썼고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전 (1858)》으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또 역사연구의 수법으로 《샤를 듀마이 (1860)》, 《수녀 필로멘 (1861)》 등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제르미니 라세르 (1865)》, 《마네트 살로몽 (1867)》, 《제르베제부인 (1869)》 등 병리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특이한 인물 특히 여성을 다루었고 자연주의의 선구적 수법이라 할 수 있는 관찰과 조사를 구사하였으며 두 사람이 <예술적 문체>라고 자부하는 독특한 문장을 썼다.
동생이 죽은 뒤 에드몽은 《매춘부 엘리자 (1877)》, 《장기노형제 (1879)》 등의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이들이 남긴 《공쿠르일기 (1850∼96)》는 제2제정기 (帝政期)를 포함한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와 문단의 사정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이다.

*Works
- With Edmond de Goncourt:
La Revolution dans les moeurs (1854)
Histoire de la Société Française pendant la Révolution (1854)
Histoire de la Société Française pendant le Directoire (1855)
Une Voiture de Masques (1856)
Les Actrices (Armande) (1856)
Sophie Arnauld (1857)
Portraits Intimes du XVIIIe Siècle (1857-1858)
Histoire de Marie Antoinette (1858)
L’Art du XVIIIe Siècle (1859-1882)
- Novels
Les Hommes de Lettres (1860)
Sœur Philomène (1861)
Renée Mauperin (1864)
Germinie Lacerteux (1865)
Manette Salomon (1867)
Madame Gervaisais (1869)
Journal des Goncourt (published posthumously)
- Plays
Henriette Maréchal (Performed at the Comédie-Française in 1865)
La patrie en danger (Published 1873, performed at the Théâtre Libre in 1889)
- Other
Lettres de Jules de Goncourt (1885) (published posthumously)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