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75)
바람이 분다
일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이들과 야외 활동을 할 때이다. 밖에 나오면 아이들도 신이 나는지 재잘거림도 더 커진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참 행복해진다. 더불어 따뜻하게 비쳐오는 한낮의 햇볕도 좋고 그 덕분에 알차게 자라 오르는 토마토를 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둥글게 말려있던 몸을 쭉 뻗고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리면서 기지개를 켜면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행동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깔깔거리며 따라한다. 어느날은 하늘의 맑음과는 다르게 비를 잔뜩 품은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면 여지없이 잠깐이라도 비가 내린다. 따끈함을 실고 오는 바람은 어떠한가. 마치 가벼운 스웨터를 입은 것 마냥 포근해 진다. 쌀쌀한 날 불어오는 바람은 비록 옷깃을 여미게는 하지만 시린 상쾌함이 있어 좋다.
결혼 전 한국에서 살 때 이다. 일주일 내내 일을 하다가 모처럼 토요일이 되면 늦게 까지 자고 싶은데 엄마는 나를 늘 일어나라며 들볶으셨다. 모처럼 딸과 함께 하는 토요일이니 엄마도 하고 싶은 것이 많으 셨으리라. 같이 장도 보고 쇼핑도 하고 밑에 잘 한다는 팥칼국수 집에서 점심도 먹고 말이다. 서둘러 준비하라 하시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간신히 머리만 감고 앉아 있으면 엄마는 속이 타는지 빨리 머리를 말리라며 드라이기를 들이 미신다. 물론 바쁠때는 드라이기를 사용 하지만 사실 나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잘 말리지 않는 편이다. 베란다의 큰 문을 열고 바람이 잘드는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 손질을 하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 나는 머리를 감고 나서는 항상 앞 마당으로 나가 천천히 왔다갔다 하며 머리를 털어낸다. 바람에 겉만 살짝 말라도 크게 상관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두피에 좋든 안좋든 그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을 쓰는 것을 사치로 생각하며 가만히 바람을 느끼면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고 엄마의 잔소리도 잔잔한 자장가로 바뀌는 고요한 느림이 있다. 그렇게 한없이 밍기적 거리던 나의 손을 잡아 이끄는 엄마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 아파트앞 주차장에는 늘 그렇듯 알뜰시장이 서 있었다. 바람속에 금방 튀겨낸 도넛과 쪄낸 옥수수 냄새가 섞여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또 다시 정지 된 것 마냥 한가롭고 다정해 보인다. 나는 한 손엔 컵 떡볶이를 들고 물건을 사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직 부모님 밑에 살면서 책임감 없이 제 멋대로인 철없는 애어른 시절이다. 그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라니. 세상은 많이 변했고 시간도 많이 흘렀다. 그런데 잠시 스치듯 불어온 바람속에서 신기하게도 나는 예전의 일들을 다시 기억한다.
바람이 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맞으면 지금 불어오는 바람속에 봄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추운 겨울이 사르륵 가고 살며시 봄이 오 듯 나의 작은 바람도 이제는 이루어 질까? 그렇게 소망해 본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