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제국의 동방 교회 총대주교이자 신학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티우스 (포티오스, Photius I of Constantinople, 810년경 ~ 893년경)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 교회 총대주교이자 신학자. 815년경 콘스탄티노폴리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재능을 보여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 학술원에서 가르쳤으며 제국 고위 관료직을 맡고 있던 중 총대주교 이그나티우스 Ignatius가 858년 황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자 6일 만에 평신도에서 부제·사제·주교·총대주교로 연속 서품되어 후임 총대주교가 되었다.

교황 니콜라우스 1세 Nicolaus I가 이그나티우스 지지파의 호소를 받아들여 포티우스 임명의 적법성을 부인하자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867년 동방 주교들에게 교서를 보내 필리오케 Filioque 조항을 추가한 서방 교회의 이단성을 비판하고 교황 니콜라우스를 정죄했다. 같은 해 황제가 암살되고 바실리우스 1세 Basilius I가 즉위하면서 추방되었고, 869~87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정죄되었으나 877년 다시 총대주교로 복위했으며, 879 ~ 88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교황 요한 8세 Ioannes VIII의 특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복권되었다. 886년 황제 레오 6세에 의해 다시 퇴위되어 897년경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인으로 공경받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평가가 갈린다.
비잔티움 문예 부흥과 관련해 『저서 평론』 Bibliotheca은 자신이 읽은 280편의 그리스 산문 작품들을 요약·평가한 저작으로 현재 소실된 수많은 고대 그리스 문헌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꼽히며 이후 고대 그리스 문헌 연구의 핵심 자료가 쓰였다. 『성령의 신비에 관한 연설』 Peri tes tou Hagiou Pneumatos mystagogias에서는 필리오케 Filioque 조항, 즉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한다는 서방 교회의 신경 추가가 신학상 잘못되었음을 논증하여 동방 교회의 삼위일체론 입장을 정립했다. 또한 형제 메토디우스 Methodius, 키릴루스 Cyrillus를 지원하여 슬라브족 선교와 글라골 문자 창제를 후원했으며 불가리아, 모라비아, 루스 지역의 그리스도교화를 이끌었다.
주요 저술로 『저서 평론』 Bibliotheca, 『성령의 신비에 관한 연설』, 『암필로키아』 Amphilochia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문은 『그리스 교부 전집』 Patrologia Graeca(PG) 101~104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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