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생명의 본질
아침에 평소처럼 달리기를 하고난뒤에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정원, 잔디 깎는 기계의 소음 속에서 나는 오늘 생명의 경이로운 얼굴을 마주합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지나간 자리, 단정하게 잘려 나간 잔디들을 보며 문득 깨닫습니다. 저들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잘려 나간 그 낮은 자리에서 이미 내일의 푸른 성장을 예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깎이면 깎일수록 더욱 조밀해지고, 밟히면 밟힐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는 잔디의 생명력은 우리에게 ‘살아있음’의 진짜 의미를 묻습니다.
생명의 본질은 정지가 아닌 역동에 있습니다. 생명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활동합니다. 씨앗이 단단한 지표면을 뚫고 올라오는 그 처절한 몸짓부터, 깎여나간 잔디가 다시 싹을 틔우는 그 끈질긴 생명력까지, 모든 생명체는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립니다. 생명에게 있어 성장이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유일한 방식입니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생명은 계속적으로 유지를 하지 못하고 그것은 곧 죽음으로의 퇴행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월의 칼날에 꿈이 꺾이고, 현실의 무게에 마음이 깎여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속성을 가진 자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활동, 상처를 자양분 삼아 더 깊은 내면을 일구는 성장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만듭니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것, 그것이 생명이 무생물과 구별되는 가장 고결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강인한 생명체도 결국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앞에서는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푸른 잔디도 계절이 바뀌면 갈색으로 시들고, 뜨겁게 박동하던 심장도 언젠가는 멈추게 마련입니다. 모든 생물학적 생명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마침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생명이 가진 슬픈 한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모두 모두 행복한 주일 하루 되세요.
이란 땅에 불어올 복음의 바람을 꿈꾸며
최근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며 전 세계가 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철저한 신정일치 사회이자 이슬람의 보루인 이란이 만약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면, 그 땅의 종교적 지형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지정학적 분석을 넘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하는 신앙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인류 역사는 정치적 패권의 이동이 종교의 운명을 바꾼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18세기 식민지 시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 전쟁은 원주민들의 토속 신앙을 걷어내고 남미와 필리핀 등지에 가톨릭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이는 정치적 권력이 종교적 전향을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음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한때 초대 교회의 찬란한 영광이 깃들었던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지역은 오스만 터키라는 이슬람 제국의 부상과 함께 급격히 이슬람화되었습니다. 필자가 성지순례를 통해 목격하는 오늘날 터키의 모습은 정치적 권세가 어떻게 한 지역의 영적 정체성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지를 웅변하는 아픈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권력에 의한 종교적 굴절’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발견됩니다. 일제 강점기 40년의 세월 동안 일본은 천황 숭배와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결국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열린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일본의 압력에 굴복해 ‘신사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닌 국가 의식’이라는 거짓 명분으로 이를 공식 결의한 것은 한국 교회사에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권세는 때로 신앙의 본질을 위협하고 그 지형을 강제로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기 전, 이미 이란 땅에서는 ‘보이지 않는 영적 혁명’이 진행 중입니다. 현재 이란의 지하교회(House Church)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선교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슬람 체제의 엄격한 통제와 박해 속에서도 수많은 무슬림이 꿈과 환상, 그리고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발각되면 투옥과 고문을 면치 못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성장은 인간의 계획이 아닌, 오직 성령의 역사이며, 고난 속에서 정금같이 단련된 이란 성도들의 ‘목숨을 건 신앙’이 만들어낸 열매로 보아집니다.
우리는 지금의 위기를 정치적 갈등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란 지하교회 성도들이 골방에서 흘린 눈물의 기도가 이제 하늘 보좌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이슬람의 멍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복음의 빛을 보게 해달라고 수십 년간 부르짖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국제 정세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통해서라도 그 땅의 빗장을 여실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긴박한 정세는 어쩌면 이란 성도들의 오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란이 항복하거나 체제가 변화된다면, 그 혼란의 시기에 가장 위험에 처할 이들도, 동시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이들도 바로 이란의 지하교회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물리적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체제 전환의 혼란 속에서도 영적인 중심을 잃지 않도록 중보해야 합니다.
전 세계 교회는 이란의 성도들을 영적으로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장차 이란 복음화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그들의 안전과 영적 권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받는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 한 나라를 통째로 변화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9장 39절은 “끝날에 이르러 내가 엘람(고대 이란: 현 이란 남서부(특히 후제스탄 Khuzestan 지역에 해당)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정치적 권력이 종교를 바꾸었던 과거의 역사를 넘어, 이제는 성령의 권능과 성도들의 기도가 한 국가의 영적 운명을 바꾸는 전무후무한 대각성을 목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전운 너머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이란 땅에 수많은 영혼이 집단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 날, 그 ‘하나님의 때’가 도둑같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무릎으로 그 영광스러운 날을 예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란을 위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