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방학 후 8월 온라인 모임 시작
김환기 사관의 신간 ‘일터와 강단 사이’와 주기헌 회원의 추천서 ‘가나안에 거하다’ 나눠
다음모임은 8월 26일, 수요 온라인 모임 [8월 앞주간 신간 및 추천서적 전문포함]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지도 구본영 교수)는 중간방학을 마치고 2026년 8월 12일 (수) 온라인 모임에 김환기 사관의 신간 ‘일터와 강단 사이’ (김환기 / 부크크출판사 / 2026년 8월)와 주기헌 회원의 추천서 ‘가나안에 거하다’ (이진희 / 두란노 / 2021년 11월)를 나눴다.

김환기 사관의 신간 ‘일터와 강단 사이 : 이중직 목회자의 갈등과 소명, 그리고 회복’은 김환기 사관의 박사학위논문 「호주 이민교회 이중직 목회자의 건강한 정체성 회복을 위한 현상학적 연구」를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대중서로 다시 구성한 첫 집필본이다.
논문의 연구 결과와 신학적·심리학적 통찰을 유지하되, 연구 방법과 학술 용어는 필요한 만큼만 설명하고 목회 현장의 질문과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냈다.
연구 참여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사용하지 않았다.
원고에 소개된 참여자 진술은 논문에 수록된 익명 진술을 바탕으로 문장과 배열을 다듬었으며, 여러 참여자가 공통으로 말한 경험은 하나의 목소리처럼 묶어 제시하기도 했다.
주기헌 회원의 추천서적 ‘가나안에 거하다 : 광야 인생에게 건네는 가나안 일상’ (두란노)는 『광야를 읽다』와 『광야를 살다』를 통해 성경 속에 나타난 광야를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해석해 주었던 저자 이진희 목사가 마침내 광야를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광야가 십자가라면 가나안은 부활이다. 십자가의 반대가 부활이 아니듯, 광야의 반대도 가나안은 아니다. 광야와 가나안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 서로 이웃하고 있다. 광야 안에도 가나안이 있고, 가나안 안에도 광야가 있다. 광야와 가나안은 십자가와 부활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를 거쳐야만 부활에 이를 수 있듯이, 광야를 거쳐야만 가나안에 이를 수 있다. 십자가가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광야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 안에 은혜와 축복이 담겨 있듯이, 광야 안에도 은혜와 축복이 담겨 있다. 십자가가 실패와 저주 같아도 축복인 것처럼, 광야도 실패와 저주 같지만 실상은 축복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과하셨듯이 우리도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고 프롤로그에서 역설한다.
다음 모임은 8월 26일 (수, 오후 5시) 온라인으로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 (0433 486 425)나 이메일(bonyoungkoo7@gmail.com)로 문의하면 된다.

–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8월 온라인 모임 안내
.모임: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
.일시: 2026년 8월 12일과 26일 (수) 오후 5시
.아래 문의처로 연락주시면 온라인 모임에 합류됩니다.
지도 구본영 교수 (0433 486 425, bonyoungkoo7@gmail.com)
총무 임기호 목사 (0414 228 660, kiholim72@gmail.com)
간사 임운규 목사 (0425 050 013, woon153@hanmail.net)
일터와 강단 사이 : 이중직 목회자의 갈등과 소명, 그리고 회복
김환기 / 부크크출판사 / 2026.8.8
이 원고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호주 이민교회 이중직 목회자의 건강한 정체성 회복을 위한 현상학적 연구」를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대중서로 다시 구성한 첫 집필본이다.
논문의 연구 결과와 신학적·심리학적 통찰을 유지하되, 연구 방법과 학술 용어는 필요한 만큼만 설명하고 목회 현장의 질문과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냈다.
연구 참여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사용하지 않았다. 원고에 소개된 참여자 진술은 논문에 수록된 익명 진술을 바탕으로 문장과 배열을 다듬었으며, 여러 참여자가 공통으로 말한 경험은 하나의 목소리처럼 묶어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완전한 생애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이중직 목회자들이 공유한 경험의 본질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프롤로그: 목사님은 왜 다른 일을 하십니까? 5
제1장 이중직 목회는 실패가 아니다 10
제2장 일터와 강단 사이에 선 사람들 35
제3장 나는 목사인가, 노동자인가 48
제4장 생계의 무게와 소명의 흔들림 64
제5장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 78
제6장 일터에서 다시 발견한 목회 92
제7장 하나의 삶, 하나의 소명 105
제8장 분열된 자아에서 통합된 자아로 117
제9장 이중직 목회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132
제10장 생계를 넘어 선교적 삶으로 146
에필로그 두 개의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부르심이다. 159
인생을 돌아보면 좌충우돌이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종교교육을 전공했으며, 최근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좌충우돌의 인생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호주 구세군 사관으로 사역하고 있다.
1989년 6월에 미국 시카고에서 구세군 사관으로 임관하였다. 청주와 합덕에서 구세군 교회를 섬겼고, 구세군 대한 본영에서 통역관으로 있었다. 1997년 12월에 구세군 시드니 한인교회 담임사관으로 임명을 받았다.
이후 호주 구세군 본영에서 한인 사역을 담당했고, 빌라우드 이민 수용소의 채플린을 역임하였다. 현재 시드니 구세군 Chatswood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크리스찬 리뷰지의 영문 편집장으로 글을 쓰고 있고, Iona Trinity College의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호주 시드니 구세군채스우드교회의 담임사관이자 상담심리학 박사인 김환기 사관의 연구논문 〈호주 이민교회 이중직 목회자의 건강한 정체성 회복을 위한 현상학적 연구〉(2025년)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다.
이 연구는 생계, 선교,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일터와 강단을 오갈 수밖에 없는 ‘이중직 (Bivocational) 목회자’들이 이민교회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마주하는 내면적 갈등을 깊이 있게 짚어내고, 그 안에서 소명을 재정의하며 어떻게 전인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지를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명쾌하게 제시한다.
이중직 목회자들은 두 개의 삶의 영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깊은 심리적·환경적 스트레스를 마주한다.
정체성 혼란: 자신이 ‘목회자’인지 ‘일반 노동자’인지 경계가 모호해질 때 오는 내적 충돌을 겪는다.
죄책감과 자존감 저하: 목회에만 전념하지 못한다는 영적 부담감과, 주변 시선으로 인해 자존감이 위축된다.
시간과 에너지의 고갈: 일터에서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강단에서의 설교 및 목양 준비 시간 부족으로 이어져 영적 소진 (Burnout)을 유발한다.
김환기 사관은 이중직을 단순한 ‘재정적 보완책’이 아닌, 현대 사회에 부합하는 전인적 통합선교 (Holistic Integrated Mission)이자 거룩한 소명으로 바라본다.
제사장직의 확장: 리젠트칼리지 폴 스티븐스 교수의 일터신학처럼, 일터 역시 하나님이 부르신 거룩한 선교의 현장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성도들의 삶에 공감: 목회자가 직접 노동의 현장을 경험함으로써,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과 아픔을 가슴 깊이 이해하는 성육신적 목회가 가능해진다.
연구는 이중직 목회자가 갈등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사역을 이어가기 위한 세 가지 회복의 열쇠를 제안한다.
– 회복의 영역 / 구체적인 실천 내용
.인식의 회복 / 이중직을 ‘부끄러운 겸직’이 아닌 성경적 바울의 ‘자비량(Tentmaking) 사역’이자 시대적 소명으로 당당히 인정하는 태도 변화
.심리적 돌봄 / 상담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내면의 상처, 죄책감, 낮은 자존감을 직면하고 영적·정서적 건강을 돌보는 일
.제도적 지지 / 이민교회와 소속 교단 차원에서 이중직 목회자를 실패한 사역자가 아닌 세상을 향한 파송 선교사로 인정하는 지지 체계 구축
가나안에 거하다 : 광야 인생에게 건네는 가나안 일상
이진희 / 두란노 / 2021.11.24
– 『광야를 읽다』와 『광야를 살다』의 저자, 이진희 목사의 광야 시리즈 완결편! 김영봉, 민영진, 유기성 목사 적극 추천!
『광야를 읽다』와 『광야를 살다』를 통해 우리의 영적 여정에 광야를 품게 해 준 저자는 가나안에 정착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그 땅에서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지고 자라 가야하는 것임을 기억하게 한다. 그 사명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로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갈 길을 제시한다. – 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가나안에 거하다』는 광야와 가나안의 상징을 하나님의 통치에 접목한 작품이다. 그는, 가나안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를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이 가나안이고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며 우리 인생의 여정을 안내한다. –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가나안이 광야보다 더 위험한 곳입니다.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보다 가나안에서 더 쉽게 넘어지고 더 많이 실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에서는 광야를 지날 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더 엎드려 기도하고, 24시간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 유기성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
– 당신이 바라는 가나안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 맞는가?
『광야를 읽다』와 『광야를 살다』를 통해 성경 속에 나타난 광야를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해석해 주었던 저자가 마침내 광야를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 과연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었을까? 나일 강의 풍요를 누렸던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 광야밖에 보이지 않는 가나안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셉은 왜 그토록 자신의 유골이라도 가나안에 가져가 달라고 했을까?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가나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물리적 요소를 초월해 영적 세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광야 시리즈를 완결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마찬가지로 광야 없는 가나안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과하셨듯이 우리는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가나안에 이를 수 있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
1. 우리가 꿈꾸는 그런 가나안은 없다
광야보다 위험한 땅
2. 광야에서보다 더 큰 은혜가 필요하다
광야를 지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땅
3. 광야 길만이 가나안으로 이어진다
광야와 맞닿아 있는 땅
4. 광야 안에 가나안이 있다
정복해도 소유할 수 없는 땅
5. 광야의 믿음으로 가나안을 살라
바알 신앙으로 물든 땅
6. 바알은 소명이 아닌 소원을 묻는다
축복이 저주가 될 수도 있는 땅
7. 다시 광야로 내몰리지 말라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땅
8. 우리도 가나안에 머물기를 원하신다
복이 아니라 사명으로 주신 땅
9. 내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하늘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땅
10. 영원한 가나안에 잇대어 살라
이진희 목사는 성경의 문화와 지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30여 년 동안 성경의 땅을 밟고 다니며 성경을 연구하고 그것을 17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한국 교회에 “광야” 열풍을 불러일으킨 3권의 광야 시리즈 (『광야를 읽다』, 『광야를 살다』, 『가나안에 거하다』)의 저자인 이진희 목사는 광야 전문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광야를 읽다』는 국민 추천 도서로 선정되어 대통령의 서재에 꽂히기도 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미국에서 이민 교회 목회를 했으며, 현재는 Lenox (MA)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미국인 회중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광야를 읽다』, 『광야를 살다』, 『가나안에 거하다』(이상 두란노), 『광야에서 살아가는 양들의 고백, 시편 23편』(CLC), 『유대적 배경에서 본 복음서』(컨콜디아사), 『유대 문화를 통해 본 예수의 비유』, 『유대인과 함께 읽는 창세기』, 『성지에서 본 성서』, 『어, 그게 아니네?』, 『율법? 그건 알아서 뭐해?』, 『천국 패스포트』, 『성령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아침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 『익숙한 성경 낯설게 읽기』, 『성경의 압축 파일을 풀어라』(이상 쿰란출판사) 등이 있다.
모세의 눈에 들어온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암갈색 광야였다. 지난 40년간 눈 뜨면 보였던 그 암갈색 광야가 그대로 모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아니 하나님,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녕 제가 보고 있는 저곳이 가나안이란 말입니까?” 눈앞에 펼쳐진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모세는, 저런 가나안이라면 못 들어가도 그렇게 억울할 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가 꿈꾸는 가나안에는 가뭄과 기근을 모르는, 사시사철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주는 나일 강이 있어야 하고, 애굽에는 요단 강 같은 강밖에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가나안에는 개울보다 조금 큰 요단 강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나안에서는 애굽처럼 강에 의존해서 살 수 없다.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한다. 가나안에서는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천수답 (天水畓)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고, 비를 내려 주지 않으면 광야가 되는 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산다고 기근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탕자처럼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았어도 인생의 기근을 만나게 된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분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도 기근을 만나게 된다. 살다 보면 인생의 흉년이나 기근은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런 것 없는 가나안은 없다. 믿음 가운데 살아도,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살아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도, 기도하며 살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도 인생의 흉년이 찾아올 때가 있고, 인생의 기근을 만날 때가 있다.
가나안에 살아도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광야 같은 삶을 살게 되고, 광야에 살아도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면 가나안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약속의 땅 가나안도 광야에서처럼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이 아닌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 와 있다면 우리는 이미 가나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광야에 와 있다면, 그 광야가 가나안인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광야처럼 느껴져도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라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 여기는 가나안이 아니고 광야인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광야로 보냈노라. 내가 너에게 그 광야를 가나안으로 주었노라. 너에게는 그 광야가 너의 가나안이니라.”
이스라엘도 가나안에 들어가 실패했다. 중세 교회도 가나안에서 실패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시련이 많을 때, 광야를 지날 때보다 평안하고 아무 문제없을 때, 가나안에 살 때가 더 위험하다. 사람들은 광야보다 가나안에서 더 많이 실패한다. 사람들이 넘어지는 곳은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다. 광야에서는 잘 버티다가도 가나안에 들어가면 힘없이 넘어진다.
광야에 들어가면 비우게 된다. 무엇을 더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있는 것에 자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자족하지 않는다.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크게 성공하고 더 많이 누리려고 한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탐욕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바알을 따라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가나안이 광야보다 더 위험하다. 그래서 광야를 지날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가나안에서 살 때는 은혜 위에 은혜가 필요하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라. 하나님과 동행하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라. 만나만 내려 주셔도 감사하라. 장막에서 이슬만 피할 수 있어도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길이 없는 광야에서 길이 되어 주시고, 그늘이 없는 광야에서 그늘이 되어 주시고, 생수가 없는 광야에서 오아시스가 되어 주실 것이다. 광야를 지나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과 함께 광야를 지나면, 우리는 광야에서 승리할 수 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애석해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짜 가나안에 들어가고 있을 때 그는 진짜 가나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짜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힘을 쓰는가? 진짜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짜) 가나안에서는 영원한 하늘의 평안, 천상의 평안, 하나님의 안식, 메누하를 누릴 수 없다. 진정한 메누하는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야 누릴 수 있다.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3천 년 전에는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겼다. 그러나 오늘날은 하나님을 바알로 만들고 있다. 기도 내용을 보라. 다 바알에게 구하는 기도지, 창조주 하나님,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게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다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지, 바르게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좋은 집을 짓고 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입으로는 ‘주님, 주님’ 하지만 속으로는 ‘바알님이시여, 바알님이시여’ 하는 게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불신자들이 읽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우리다.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는 것이다. 아니,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만이 전도가 아니다. 우리는 복음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 줘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습을 눈여겨본다. 복음을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전도 방법이다. 삶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변화된 성도들의 삶이 드러날 때, 교회는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 가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광야를 읽다』로 시작해서 『광야를 살다』를 거쳐 『가나안에 거하다』로 나의 광야 여정이 끝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 40년이 걸렸다. 감사하게도 나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책은 사실 벌써 나왔을 뻔했다. 『광야를 읽다』가 나오자마자 독자들에게서 다음 책에 대한 주문이 쏟아졌다. 가나안에 대한 책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다시 광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광야로 돌아갔듯이,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광야를 읽다』에 이어서 곧 가나안에 대한 책을 쓰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아직 가나안에 대해 말할 때가 아니다. 광야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들어가 『광야를 살다』나왔다. 그리고 이제야 『가나안에 거하다』라는 책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광야가 십자가라면 가나안은 부활이다. 십자가의 반대가 부활이 아니듯, 광야의 반대도 가나안은 아니다. 광야와 가나안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 서로 이웃하고 있다. 광야 안에도 가나안이 있고, 가나안 안에도 광야가 있다. 광야와 가나안은 십자가와 부활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를 거쳐야만 부활에 이를 수 있듯이, 광야를 거쳐야만 가나안에 이를 수 있다. 십자가가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광야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 안에 은혜와 축복이 담겨 있듯이, 광야 안에도 은혜와 축복이 담겨 있다. 십자가가 실패와 저주 같아도 축복인 것처럼, 광야도 실패와 저주 같지만 실상은 축복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과하셨듯이 우리도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광야를 읽다』와 『광야를 살다』를 통해 우리의 영적 여정에 광야를 품게 해 준 저자는 가나안에 정착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그 땅에서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지고 자라 가야하는 것임을 기억하게 한다. 그 사명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로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갈 길을 제시한다. – 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가나안에 거하다』는 광야와 가나안의 상징을 하나님의 통치에 접목한 작품이다. 그는, 가나안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를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이 가나안이고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며 우리 인생의 여정을 안내한다. –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가나안이 광야보다 더 위험한 곳입니다.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보다 가나안에서 더 쉽게 넘어지고 더 많이 실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에서는 광야를 지날 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더 엎드려 기도하고, 24시간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 유기성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