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의 신학논단 : 천로역정강해 (제12강의)

“순례자가 보여준 절대화와 마법화의 해체”
1. 순례자는 이 땅의 가치관의 절대화를 폭로한다
『The Pilgrim’s Progress』에서 “순례자 (pilgrim)”란 단순히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존 번연에게 순례자는 이 세상을 영원한 본향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멸망의 도시 (City of Destruction)”를 떠나는 순간 순례자가 된다. 번연이 말하려는 것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죄와 자기중심성, 세속적 가치관으로부터의 영적 탈출을 의미한다. 그는 좁은 길을 걸으며 의심의 성, 허영의 시장, 마법의 땅 같은 다양한 시험을 경험한다.
『천로역정』에서 허영의 시장은 단순한 상업 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절대화한 가치들이 거래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돈, 권력, 명예, 쾌락, 성공, 신분, 정치적 영향력 등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기독도와 Faithful은 그것들을 구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이 세상에 정착한 시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허영의 시장에서 Faithful과 기독도가 받은 비난의 핵심은 그들이 시장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가치들을 상대화 하였다. 이 점에서 순례자는 단순히 세상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낸 절대화한 가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하바드 교수였든 Harvey Cox는 그의 책 “세속도시” 『The Secular City』에서 시내산의 계명은 단순히 “다른 종교를 섬기지 말라”는 좁은 의미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이 세상 안에 있는 어떤 가치, 제도, 권력, 이념, 문화도 하나님처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라고 해석하였다 (Cox 2013, 37–44). 시내산의 우상 금지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가치도 절대화될 수 없다는 성경적 선언이다. 그는 이것을 “가치의 탈신성화”라고 설명한다 (Cox 2013, 37). 여기서 문제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는 도덕, 문화, 전통, 국가, 경제, 가족, 제도, 이념과 같은 가치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만이 가지실 수 있는 최종성, 거룩성, 절대성을 차지하려 할 때 우상이 된다. 인간이 종교적 우상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시내산의 계명은 바로 그러한 우상화를 거부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처럼 절대화 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적 가치 체계는 역사와 장소 속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비판과 갱신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허영의 시장은신학적 은유가 된다. 허영의 시장은 단순한 중세 장터가 아니다. 그곳은 오늘날의 소비주의, 시장 자본주의, SNS 문화, 자기 브랜딩, 성공 지상주의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지만, 돈과 성공, 영향력과 이미지를 새로운 신으로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Cox가 말한 세속도시의 역설과 연결된다. 인간은 종교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다시 시장의 권위에 종속되는 것이다.
Faithful과 기독도는 이러한 절대화를 거부한다. 그들은 시장 안에 살지만 시장에 속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지 않지만 도시의 가치에 지배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순례자는 세속도시의 비판자가 된다. 그는 도시를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모든 가치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따라서 허영의 시장을 통과하는 순례자는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절대화한 가치들을 상대화하는 사람이다. 순례자의 존재 자체가 세속도시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이 된다. 그는 돈보다 하나님을, 성공보다 진리를, 소비보다 소명을, 정착보다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천로역정』의 순례자는 현대 세속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신학적 증언자라고 할 수 있다.
2. 순례자는 종교의 마법화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천로역정』에서 순례자의 여정은 단순히 죄에서 구원받아 천국으로 가는 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속박하는 여러 형태의 “마법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서 마법화란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책임적으로 살아가기보다, 보이지 않는 힘이나 운명, 점술, 주술적 권위에 자기 판단을 맡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마법화된 인간은 자유로운 신앙인이 아니라 두려움과 조작의 구조 안에 갇힌 인간이다.

존 번연은 이러한 위험을 『천로역정』의 여러 장면에서 보여준다. 기독도와 Hopeful은 의심의 성 (Doubting Castle)에 갇혀 절망의 거인 (Giant Despair)에게 사로잡힌다. 이 장면은 신앙인이 의심과 절망에 갇히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약속의 열쇠”를 기억하고 탈출한다. 이는 인간을 억압하는 마법적 공포와 절망을 깨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후에 마법의 땅 (Enchanted Ground)을 통과한다. 이곳의 위험은 폭력이나 박해가 아니라 졸음과 무감각이다. 순례자는 깨어 있어야 하지만, 마법의 땅은 그들을 잠들게 만든다. 여기서 잠은 단순한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영적 분별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기독도와 Hopeful은 서로 대화하며 깨어 있으려 한다. 이것은 교회가 말씀과 대화와 공동체적 성찰을 통해 신앙인을 깨어 있게 해야 함을 보여준다.
위에서 다루었던 Harvey Cox의 『The Secular City』을 가지고 이 사건을 성찰할 수 있다. 콕스에 따르면 창조 신앙은 자연을 신성한 힘으로 숭배하지 않게 하는 “자연의 탈주술화”를 가져오고, 출애굽 사건은 정치 권력을 절대적이고 신성한 권위로 보지 않게 하는 “정치의 탈신성화”를 가져오며, 시내산 언약은 인간이 만든 가치와 제도를 우상화하지 못하게 하는 “가치의 탈성별화”를 가져온다 (Cox 2013, 21–45)고 하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천로역정』의 순례는 단순히 개인 영혼이 천성을 향해 가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마법화된 세계를 통과하며 참된 자유를 배워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여러 장소와 인물들은 인간을 사로잡는 힘들을 상징한다. Vanity Fair는 돈, 명예, 권력, 쾌락, 유행, 사회적 인정이 마치 궁극적인 가치처럼 거래되는 장소이다. 그곳에서는 세상의 가치들이 단순한 생활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충성과 욕망을 요구하는 우상처럼 작동한다. 이것이 바로 마법화된 세계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가치들에 묶이고 지배당한다.
마법의 땅 (Enchanted Ground)은 신앙의 감각이 무뎌지고 순례자가 잠들도록 만드는 영적 무감각의 공간이다. 여기서 마법화는 노골적인 박해보다 더 미묘하다. 그것은 순례자를 공격하기보다 잠들게 하고, 싸우게 하기보다 잊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목적지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절망 거인 (Giant Despair)이 의심의 성 (Doubting Castle)에서 순례자를 절망으로 가두는 것처럼, 마법화된 세계는 인간에게 “다른 길은 없다,” “너는 벗어날 수 없다,” “이 현실이 전부다”라고 속삭인다. 이때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아니라 인간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닫힌 세계가 된다.
신학자 콕스의 관점에서 성경 신앙은 바로 이러한 마법화를 깨뜨린다. 창조 신앙은 자연과 세계가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임을 선언한다. 출애굽은 파라오와 제국 권력이 절대자가 아님을 드러낸다. 시내산 언약은 인간이 만든 어떤 가치와 제도도 하나님처럼 숭배될 수 없음을 선포한다. 이러한 성경적 탈마법화의 빛에서 보면, 『천로역정』의 기독도는 마법화된 세계에서 깨어나는 사람이다. 그는 장망성의 안전을 절대화하지 않고, 호화시장의 매혹을 숭배하지 않으며, 절망의 성이 선언하는 운명을 최종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절대화된 가치들을 상대화하고,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
마법화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처럼 보이지만, 정치와 사회 속에는 여전히 점술, 음모론, 무속적 사고, 이단적 권위가 침투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가 공적 이성과 법질서보다 점술적 조언이나 비합리적 권위에 의존할 때, 공공성은 약화되고 공동선은 훼손된다. 한국 정치에서도 무속 논란과 정치 권력의 관계가 공적 논쟁이 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대선 과정에서 무속 관련 의혹이 보도되었고, 대통령 관저 이전과 관련해서도 무속 논란이 언론에 제기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종교와 정치의 건강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종교는 정치 권력을 사유화하거나 개인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무속적 사고나 점술적 판단이 공적 정치 판단을 지배하게 되면, 사회는 합리적 분별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잃게 된다. 정치 권력은 더 이상 공공선을 위한 제도적 책임으로 작동하지 않고, 개인의 불안, 욕망, 자기만족을 충족시키는 사적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그 결과 공공적 질서와 법적 제도는 약화되고,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은 흔들리게 된다.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결정이 공적 토론, 법적 절차, 윤리적 책임이 『천로역정』의 기독도는 이러한 위기의 현실을 통과하는 순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허영의 시장과 같은 유혹의 장소를 지나면서, 세상이 어떻게 욕망과 허영과 권력의 마법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지를 경험한다. 그러나 기독도는 그곳에 머물지 않고, 천성을 향한 길을 계속 걸어간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와 사회에 중요한 경고를 준다. 참된 신앙은 정치 권력을 신비화하거나 사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공공선과 정의와 책임 앞에 세우도록 돕는다. 교회는 세상의 마법에 함께 취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말씀과 분별의 빛으로 현실을 깨우는 순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천로역정』의 순례자는 단순히 종교적 인간이 아니다. 그는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다시 묶어 두는 마법화된 신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사람이다. 참된 신앙은 인간을 비이성적 두려움에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게 하고, 말씀으로 분별하게 하며, 창조세계와 사회를 책임 있게 돌보게 한다.
결국 마법의 땅을 통과하는 기독도와 Hopeful은 현대 교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교회는 사람들을 미신과 공포와 조작의 종교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깨어 있고, 공적 이성을 회복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책임 있게 돌보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순례는 종교적 마법화로부터의 해방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인간으로 형성되어 가는여정이다.
3. 순례자의 아폴리온과의 전쟁은 현대 영적 전쟁이다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아폴리온과 싸우는 장면은 단순한 악마와의 환상적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힘과 신앙인이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현대 사회에서 아폴리온은 중세적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보다 절망, 우울, 자기혐오, 정체성 혼란, 무의미함, 정치적 폭력, 인간 가치의 상실, 그리고 자연 파괴의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인의 영적 전쟁은 먼저 내면에서 시작된다. 아폴리온이 기독도의 과거를 들추며 그를 정죄하듯이, 오늘의 사회도 인간에게 “너는 충분하지 않다”, “너는 더 성공해야 한다”, “너는 더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목소리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라 경쟁과 소비의 대상으로 축소시킨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개인의 내면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의 성서신학 월터 윈크 ( Walter Philip Wink 1935 – 2012)는 악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만 보지 않고, 정치·경제·문화 제도 속에서 작동하는 “권세들 (the Powers)”로 설명하였다. 그는 권세들이 동시에 영적이며 제도적인 현실이라고 보았다 (Wink, 1992, pp. 66–72). 이 관점에서 현대의 아폴리온은 개인의 마음뿐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도 인간성을 파괴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정치가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고, 권력이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며, 법과 정의보다 선동과 혐오가 앞설 때 인간성은 훼손된다. 예수는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2)고 말씀하였고,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9)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순례자의 싸움은 폭력으로 폭력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예수의 평화와 정의를 세우는 용기의 싸움이다.
또한 잘알려진 독일 신학자 몰트만 (Jürgen Moltmann)의 희망의 신학은 절망에 맞서는 신앙의 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몰트만은 기독교 희망을 단순한 미래의 위로가 아니라 현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해하였다 (Moltmann, 1967, pp. 16–22). 기독도는 아폴리온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섰다. 이것은 희망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절망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미래를 붙드는 저항의 힘임을 보여준다.
현대의 영적 전쟁은 창조세계의 파괴와도 연결된다. 미국의 여성신학자 세리 맥히거 (Sallie McFague 1933 – 2019)는 인간이 자연을 단순한 자원으로 보는 태도를 비판하며, 창조세계를 하나님의 생명과 깊이 연결된 현실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McFague, 1993, pp. 149–156). 자연 파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관계망을 파괴하는 영적 문제이다.
따라서 아폴리온과의 전투는 현대적으로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순례자는 인간을 절망하게 하는 내면의 어둠과 싸우고, 폭력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사회 구조와 싸우며, 인간과 자연을 상품화하는 세계관에 맞선다. 그러나 그 싸움은 증오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창조세계의 회복을 세우는 용기의 싸움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영적 전쟁은 인간성의 회복과 사회 정의, 그리고 생태적 책임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순례자의 싸움이다.
4. 신실한 현존 (Faithful Presence)의 신학
허영의 시장 (Vanity Fair)에서 Faithful의 순교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Faithful은 권력을 획득하거나 시장을 장악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허영의 시장이 대표하는 세속적 가치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끝까지 증언하였다. 그 결과 그는 조롱과 박해를 받고 결국 순교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증언은 Hopeful이라는 새로운 순례자를 탄생시켰다. 존 번연은 이를 통해 사회 변혁의 진정한 힘이 권력이나 지배가 아니라 신실한 증언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해석은 현대 공공신학자 볼프 (Miroslav Volf)의 주장과도 연결된다. 볼프는 기독교 신앙이 공적 영역에서 행사해야 할 영향력은 강압적 권력이나 문화적 지배가 아니라, 공동선을 향한 증언과 섬김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교회의 역할을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공적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Volf 2011, 35–38). 따라서 순교했든 신앙이 (Faithful)의 순교는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공적 신앙의 증언이며, 그 증언은 새로운 희망과 변화를 낳는 씨앗이 된다.
미국의 문화 사회학자인 헌터 (James Davison Hunter) 교수의 책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 『To Change the World』는 그리스도인의 공적 사명이 주로 권력을 획득하거나 문화를 통제하는 전략에 있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신실한 현존” (faithful presence)을 실천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Hunter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시도 속에서 정치적 통제, 문화 전쟁, 이념적 투쟁에 의존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비판한다. 그 대신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관계, 일, 제도, 사회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신실하게 구현하도록 부름받았다고 제안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권력 중심 전략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현존이 더 깊은 변화를 만든다는것이다 (Hunter 2010, 214–215, 235, 243–247, 262, 275).
이 주장은 John Bunyan의 『천로역정』과 유익하게 연결될 수 있다. 기독도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천성을 향한 방향을 지키며 세상 속을 통과하는 순례자이다. 그는 장망성을 떠나고, House Beautiful에서 쉼과 형성을 경험하며, Apollyon과 싸우고, Vanity Fair를 통과하며, 기쁨의 산들 (Delectable Mountains)에서 목자들의 안내를 받는다. 이러한 장면들은 순례자가 세상을 완전히 도피하지도 않고, 세상을 정복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는 유혹, 고난, 갈등, 공동체적 형성의 현실을 통과하면서 다른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증언한다.
미국의 기독교 고등교육, 도덕교육, 그리고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연구해 온 교육학자 페리 그랜저 (Perry L. Glanzer)는 기독교 대학의 정체성, 도덕적 형성, 신앙과 학문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전인적 형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성장을 단순한 심리사회적 발달 과정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기독교의 큰 구원 이야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영적 형성으로 해석하도록 돕는다.
인간은 심리학적·사회학적 설명만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다. 물론 심리학과 사회학은 인간의 성장, 관계, 적응,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이 있다. 인간은 죄와 은혜, 회심과 화해, 예배와 소명, 고난과 소망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단순한 심리사회적 성숙 단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개인의 발달 과정만이 아니라 그 삶을 둘러싼 더 큰 이야기, 곧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구원 서사 안에서 인간을 해석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기독교 고전이 중요하다. 참된 고전은 인간을 단순히 심리적 존재나 사회적 존재로만 보지 않는다. 고전은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사로잡히며,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은혜를 경험하며, 어떤 소망을 향해 걸어가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Augustine의 『고백록』이 인간 내면의 죄와 은혜, 기억과 회심을 보여 준다면, John Bunyan의 『천로역정』은 인간이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순례자로 형성되어 가는지를 상징적이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보여 준다.
번연은 『천로역정』을 통해 기독교의 거대 서사가 지닌 형성의 비전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기독교인의 삶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프로젝트도 아니며, 단순한 개인 발달의 과정도 아니다. 그것은 신자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세상 속에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파송되는 구속적 형성의 여정이다. 기독도는 장망성을 떠나고, 자신의 짐을 인식하며, 십자가 앞에서 자유를 얻고, 교회의 환대와 가르침을 통해 다시 길 위에 선다. 그의 순례는 인간이 죄와 은혜, 고난과 유혹, 공동체와 소망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빚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랜저 (Glanzer)의 기독교적 형성 이해는 『천로역정』을 새롭게 읽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준다. 『천로역정』은 단순한 개인 경건서가 아니다. 그것은 순례자가 하나님의 더 큰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해석하고,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형성되어 가는 기독교적 인간 형성의 이야기이다. 이 점에서 『천로역정』은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신학적 고전으로 남아 있다 (다음호에 계속).
References
Bunyan, John. 2003. The Pilgrim’s Progress. Edited by Roger Sharroc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Cox, Harvey. 2013 (first edition 1965). The Secular City: Secularization and Urbanization in Theological Perspectiv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Glanzer, Perry L. 2010. “Moving Beyond Value- or Virtue-Added: Transforming Colleges and Universities for Redemptive Moral Development.” Christian Scholar’s Review 39, no. 4: 379–399.
McFague, Sallie. 1993. The Body of God: An Ecological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Moltmann, Jürgen. 1967. Theology of Hope: On the Ground and the Implications of a Christian Eschatology. London: SCM Press.
Hunter, James Davison. 2010. To Change the World: The Irony, Tragedy, and Possibility of Christianity in the Late Modern Worl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Volf, Miroslav. 2011. A Public Faith: How Followers of Christ Should Serve the Common Good. Grand Rapids, MI: Brazos Press.
Wink, Walter. 1992. Engaging the Powers: Discernment and Resistance in a World of Dominat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이상택 목사
(아이오나 콜럼바 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