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 기도

걷는 기도 (23)
고통을 안고
“아케다”산을 오릅니다.
오래전 모리아의 아침처럼
침묵을 등에 지고,
눈물을 가슴에 품고,
말할 수 없는 질문 하나를
하늘을 향해 들고 오릅니다.
산길은 가파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깊을수록
발걸음은 더 무거워집니다.
한 손에는 아들 유골함.
다른 한 손에는
끝내 내려놓지 못한 기억들.
함께 웃던 저녁,
함께 걷던 계절,
한 번만 더 듣고 싶은 목소리.
모두 한 줌의 바람이 되어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유대인들은 왜 이 산을
“희생의 산”
“순종의 산”이라 부르지 않고
“아케다” 곧 “묶임”이라 불렀습니까?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날 묶인 것은 이삭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심장이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미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묶인 것은 내 아들이 아닙니다.
떠나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입니다.
인간은 이상한 존재입니다.
흙으로 지어졌으면서도
영원을 꿈꾸고,
유한한 시간을 살면서도
사랑만은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죽음은 고통입니다.
죽음은
육신이 멈추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움이 계속 숨 쉬기 때문입니다.
산길 중턱에서 산새들과
바람이 나무 사이로 지나갑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만질 수 없지만
분명히 곁에 있는 것들.
어쩌면 당신도, 사랑도,
그리고 떠난 이들의 기억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장사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심긴다”(σπείρω)고 말했습니다.
씨앗은 땅속에 들어갈 때
자신이 끝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흙에 덮이고,
형태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15장)
그러나 농부인 당신은 잘 압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썩음은 소멸이 아니라
변화라는 것을……
오늘 나는
이 작은 유골함을 품고
모리아의 산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별의 길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으러 가는 길입니다.
한 아들의 생애를
하나님의 밭에 맡기러 가는 길입니다.
“아케다”는 묶임의 이야기였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풀림의 이야기였습니다.
(창세기 22장)
칼은 내려졌고,
양은 준비되었고,
생명은 다시 주어졌습니다.
골고다에서도 그랬습니다.
십자가는 묶임이었으나,
부활은 풀림이었습니다.
무덤은 닫힘이었으나,
새벽은 열림이었습니다.
(마가복음15~16장)
그러므로 당신 앞에,
죽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숨기지 않습니다.
상실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참으로 원수이며,
이별은 참으로 아픕니다.
(고린도전서 15:26)
그러나 그 아픔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는 한 음성을 듣습니다.
“심겨진 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사랑은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 이르러
나는 오래도록 침묵합니다.
하늘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한 줄기 빛이 구름 사이를 지나갑니다.
그 순간 문득 깨닫습니다.
믿음이란
모든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임을……
당신의 “아케다”(עֲקֵידָ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아버지의 눈물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든 이별의 자리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든 무덤 곁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묶임이 풀리는 날,
모든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는 날,
모든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는 날,
나는 다시 아들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날까지
나는 이 산길을 기억하겠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던 이 길을……
(시편 126:5-6)
그러나 또한
부활이 이미 새벽빛처럼
저 너머에서 오고 있음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덤을 창고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밭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들을 산에 묻지 않고
“아케다”산에 씨앗 하나를
하나님의 영원 속에 심고 돌아왔습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요한계시록 21:5)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배경음악/ Franck: Panis angelicus,
CFF 208(Re-Orch, Gamley)
20260605
교회 서재에서
匍越의 [걷는 기도] 중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