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모라비안 교회 주교, 경건주의 운동가 니콜라우스 폰 친첸도르프 (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 ~ 1760)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모라비안 교회 주교, 경건주의 운동가. 니콜라우스 폰 친첸도르프 (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 ~ 1760)는 1700년 5월 26일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해 별세하여 외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으며 외할머니와 고모 모두 경건주의자였고 경건주의 신학자 필리프 야코프 슈페너가 대부였다. 할레 경건주의 학교에서 수학하며 경건주의 영성과 선교에 깊이 이끌렸으며 이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소명에 충실하고자 법학을 포기했다. 1722년 결혼하여 베르텔스도르프에 영지를 마련했고, 같은 해 모라비아 형제단을 자신의 영지에 받아들여 헤른후트 공동체를 창설했다.

처음에는 헤른후트 공동체를 루터교안의 작은 교회들 ecclesiolae in ecclesia로 유지하려 했으나 형제단이 루터교보다 앞선 독자적 공동체임을 인식하면서 점차 독립 교파로 발전시켰다. 1735년 작센 당국의 비판에 맞서 공동체의 법적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루터교 목사로 안수받았으나 공식 직책은 맡지 않았다. 1737년 모라비안 교회 주교로 서품되었다(모라비안 교회의 주교는 일반 주교제 교회와 달리 교구 행정 권한 없이 서품 집전과 영적 지도만 담당한다). 작센 왕 아우구스투스 3세가 비밀 집회 창설, 이단 교의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추방령을 내려 1747년까지 작센을 떠나야 했다. 망명 기간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며 선교 활동을 이어가다 1760년 5월 9일 헤른후트에서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1457년 보헤미아에서 얀 후스Jan Hus의 추종자들이 창설한 모라비아 형제단을 보호하고 이끌며 독립 교파로 모라비안 교회를 갱신, 재건했으며 당시 어떤 개신교 교파보다도 광범위한 선교 활동을 벌여 근대 개신교 선교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또한 매일 성서 구절을 제비뽑기로 선정하는 『헤른후트 일일 성구집』 Losungen을 1731년 창안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일일 묵상집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한국에는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에서 매년 『말씀, 그리고 하루』라는 제목으로 펴내고 있다). 또한 교리에 대한 앎보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경험과 헌신을 강조하는 ‘마음의 종교’는 존 웨슬리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감리교 운동의 형성에 기여했다.
주요 저술로 설교집 『베를린 설교들』 Berlinische Reden, 『신학적 성찰들』 Theologische und dahin einschlagende Bedencken, 2,000편 이상의 찬송가 등이 있으며 전 6권으로 이루어진 『주요 저작집』 Hauptschriften과 보충편 Ergänzungsbände (전1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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